<스틸 앨리스> 줄리언 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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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 앨리스>는 리사 제노바가 쓴 <내 기억의 피아니시모>를 원작으로 한다. 앨리스(줄리언 무어)는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누리는 50세의 여교수다. 남편은 연애 시절처럼 그녀에 대한 애정으로 넘쳐나고 자식 셋은 장성해 제 갈 길을 찾아가는 중이다. 무엇보다 앨리스 자신이 콜롬비아의 언어학 교수로서 학생을 가르치고 연구에 몰두하는 생활에 만족하던 터다. 생의 절정에 맞이한 벼락같은 소식. 너무 이른 나이에 찾아온 조발성 치매 앞에서 그녀는 인정하기 싫은 결과를 받아들이지만, 빠르게 무너진다.

잔잔한 수면 위에 불어 닥친 파문의 연기에 대해서라면 줄리언 무어는 스페셜리스트다. <스틸 앨리스> 이전 그녀는 네 차례나 아카데미 연기상 부문 후보에 올라 모두 낙마한 경험이 있다. 남편이 실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목격하고 무너지는 <파 프롬 헤븐>(2003)의 ‘아내’, 단조로운 일상에 염증을 느껴 자살까지 생각하는 <디 아워스>(2003)의 ‘주부’, (두 영화로 각각 주연과 조연 부문 동시 후보에 올랐다!) 고위직 남편을 찾아온 소설가와 위험한 사랑에 빠지는 <애수>(2000)의 ‘부인’ 등 <부기 나이트>(1999)의 포르노 배우를 제외하면 그녀의 역할은 평범함의 정체성을 벗어난 적이 없다.  

보통의 삶에 찾아온 충격적인 변화 앞에서 줄리언 무어의 연기는 선이 굵은 행동보다 미세한 표정의 결에 의존한다. <사랑에 대한 모든 것>(2014)으로 남우주연상을 받은 에디 레드메인의 경우에서 보듯 아카데미는 전통적으로 기예(?)에 가까운 연기에 높은 점수를 부여해온 것으로 유명하다. 그녀가 뛰어난 연기를 선보이고도 걸맞은 성과를 얻지 못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스틸 앨리스>가 미세한 연기의 연장선에 있으면서도 이전과는 다른 결과를 낸 배경에는 온전히 그녀의 캐릭터에 주목한 영화의 내용에 있다.

<스틸 앨리스>는 앨리스의 치매 증세를 노출한 후 기억을 잃어가는 과정과 그에 대응하는 그녀의 반응에 주목한다. 이의 연출 과정에서 감독이 배우에게 개입할 여지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치매와 같은 장애 연기는 사랑과 같은 일반적인 연기와 달라서 감독은 배우에게 해당 장면의 동선 설명과 연기를 지켜본 후 호오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는 게 전부다. (이 영화를 연출한 리처드 글랫저 감독은 루게릭병으로 투병 중이다!) 배우가 직접 자료를 조사하며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줄리언 무어는 치매로 아내를 잃은 지인을 찾아가 사례를 들으면서 앨리스의 연기를 준비했다.

그야말로 외로운 작업이었던 셈. 이는 극 중 앨리스가 처한 상황이기도 했다. 사랑하는 남편이 있고 병을 걱정하는 자식들이 있지만, 그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건 오로지 앨리스의 몫이다. 언어를 전공했으면서 언어를 잃어가는 기막힌 현실 앞에서 대학교수이자, 아내이자, 엄마로서 마지막 남은 자존심은 극복할 수 있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 하지만 치매 사실을 고백하면서 끝까지 침착한 태도를 유지하지 못해 울음 섞인 목소리로 “어쩜 좋아”라며 찰나의 감정을 드러낼 때 앨리스가 겪는 고통은 고스란히 관객의 가슴으로 전이된다.

이런 연기가 바로 줄리언 무어의 전매특허다. “삶이란 게 늘 똑같은 것 같아도 마음을 흔드는 순간이 있기 마련이다. 이를 포착해 연기로 승화하는 것이 배우의 의무다.” 그녀는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의 여우주연상 수상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고립된다는 느낌을 받고 있을 치매 환자들이 더 많은 관심을 받았으면 좋겠다. 배우에게 이보다 더한 영광은 없다.” 앞으로도 줄리언 무어는 그 자신만의 영광이 아닌 모두를 위한 연기를 선보일 것이다.
 

시사저널
(2015.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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