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리트 킹>(Street Kings)


사용자 삽입 이미지<L.A 컨피덴셜> <블랙달리아>의 원작 소설가로 유명한 제임스 엘로이(James Ellroy)의 작품세계엔 몇 가지 주요한 특징이 존재한다. 고향인 LA가 배경이란 점(그는 1948년 3월 4일 LA에서 출생했다!), 지역 특유의 범죄, 즉 할리우드에서나 발생할 법한 사건을 소재로 한다는 점, 사건의 커넥션을 시 전체로 확장해 LA를 비리의 온상으로 묘사한다는 점(엘로이 소설 속 주인공은 크든 작든 비리를 저지른다), 무엇보다 개인의 비리를 쫓아가면서 결국 거대한 집단의 비리를 적출하는 하드보일드 소설의 구성을 취한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트레이닝 데이> <S.W.A.T 특수기동대> 각본가 출신인 데이빗 에이어 감독이 연출한 <스트리트 킹>은 하드보일드 소설가 제임스 엘로이가 각본으로 참여한 또 한 편의 ‘LA하드보일드’다. 특히 <L.A 컨피덴셜> <블랙달리아> 등 1940~1950년대 배경의 작품만 소개된 국내에서 동시대를 배경으로 한 제임스 엘로이의 작품을 접한다는 건 무척 흥미롭다.

“현재의 LA, 현재의 거리, 현재의 경찰 당국 업무를 이해하고 파악하고 있는 것을 제임스 엘로이는 뛰어난 감각을 통해 지금의 각본으로 완성했다. 특히 내가 주목한 건 어느 날 갑자기 톰에게 발생한 특정한 사건을 거대한 이야기로 구성한 점이다”는 데이빗 에이어 감독의 말처럼, <스트리트 킹>은 시간 배경만 현대일 뿐 제임스 엘로이의 전작들에서 보여준 특징을 그대로 갖고 있다. 비록 할리우드 영화산업의 추악한 이면을 다루지 않지만 극중 인물들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LA경찰국을 할리우드로 치환해도 크게 무리가 없을 정도다. 범인 검거 후 신문기사 1면 헤드라인에 집착하는 이들의 모습은 ‘딴따라’ 배우인지, ‘민중의 지팡이’ 경찰인지 분간하기 힘들다. 요부가 등장하지 않지만 자신의 비리를 감추기 위해 상대가 누구이든 서슴없이 살해하는 모습에서는 치명적인 유혹 앞에 굴복하고 마는 하드보일드 특유의 남성 캐릭터 모습이 중첩된다.

안 그래도 <스트리트 킹>에서 요부 역할을 대신하는(?) 폭력 묘사는 중요하게 다뤄진다. 굉장히 사실적으로 그려지는 폭력은 주인공 톰을 나락의 문턱까지 빠뜨리면서 LA 전체를 비리의 도시로 묘사하는 데 일익을 담당한다. 그런 점에서 데이빗 에이어의 감독 발탁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트레이닝 데이> <S.W.A.T 특수기동대> 모두 공권력의 내부 비리를 액션 장르를 빌어 고발했던 그다. 다시 말해, <스트리트 킹>의 사실적인 폭력은 눈요깃감으로 삼기 위해 동원된 것이 아니다. 데이빗 에이어 감독은 폭력을 특정 인물, 특정 집단의 전유물로 만들지 않고, LA의 시민이라면 누구에게나 있는 필수요소이자 순환구조로 다루는 데 주력한다. 비리가 존재 이유이자 도시 운영의 원천인 곳에서 폭력은 목숨을 날려버릴 수도, 구제할 수도 있는 일종의 생명줄인 셈. 하여 영화는 비리를 막기 위해서는 또 다른 비리가 필요악이라 주장한다. 경찰서장 완더가 톰에게 내뱉는 “우린 하나야, 운명으로 묶였어”라는 대사는 영화의 주제는 물론 현대 하드보일드 서사의 특징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할만하다.

이 같은 구조는 마이클 만이 <마이애미 바이스>를 통해 보여준 것과 흡사하다. 특히 <스트리트 킹>이 LA를 묘사하는 방식은 마이클 만이 마이애미를 그리는 방식과 놀라우리만치 닮았다. <스트리트 킹>의 LA는 우리가 흔히 보아온 LA와 사뭇 다르다. 야자수가 늘어선 화려한 거리는 온데간데없고 네온사인이 발광하는 어두운 뒷골목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빛에서 어둠으로 전락한 LA의 쾌락은 격렬한 힙합 리듬에 맞춰 더러운 돈의 흐름에 따라, 의미 없이 부유할 뿐이다. 이제 LA는 범죄 집단이든, 경찰이든 돈의 쾌락을 좇는 타락한 도시로 변모했다. 그러니 범인 검거를 위해 치밀하게 조직된 경찰 수사망은 갑작스러운 배신으로 구멍이 뚫리고, 이용 가치가 없어진 조직원은 쥐도 새도 모르게 처형된다. 돈을 따라 움직이지만 결과적으로 죽음 외에 아무 것도 얻지 못하는 도시. 마이클 만이 <마이애미 바이스>에서 그랬던 것처럼 데이빗 에이어 역시 도시와 범죄의 상관관계를 그려내고 싶었던 것이다.

<스트리트 킹>은 제임스 엘로이의 각본, 마이클 만, 그리고 <트레이닝 데이>(톰과 워싱턴 커플은 <트레이닝 데이>의 아론조(덴젤 워싱턴)와 제이크(에단 호크) 커플의 변주다)에 많은 것을 빚지고 있는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이들의 아우라에 눌리는 듯한 인상을 주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 물론 영화 진행에 크게 방해가 되는 건 아니지만 하드보일드 스타일이 연출자의 개성에 상당 부분 의지한다는 점에서 감독 데이빗 에이어의 색깔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은 애석하다. 더불어, 제임스 엘로이의 이야기는 워낙 거대한 내용을 다루는 까닭에 브라이언 드 팔마의 <블랙달리아>처럼 충분한 시간이 확보되지 않으면 설명이 불친절해질 수 있는데 <스트리트 킹> 역시 그런 약점을 노출한다. 영화는 꽤 볼만하지만 디테일 면에서 초짜 감독의 딜레마를 드러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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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2.0 383호
(2008.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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