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렉 다크니스>(Star Trek Into Dark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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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 주의! 존 해리슨의 정체가 폭로됩니다.

<스타트렉 다크니스>(이하 ‘<다크니스>’)에서 커크(크리스 파인)와 스팍(재커리 퀸토)이 상대하는 악당은 존 해리슨(베네딕트 컴버배치)이다. 아니, 칸이다. 그러니까 존 해리슨이 칸이다. 그래서 <스타트렉> 시리즈의 열성팬인 ‘트레커’들에게 <다크니스>는 좀 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칸이 처음 모습을 드러낸 건 <스타트렉> TV 시리즈 중 하나인 <스페이스 시드 Space seed>(1967)에서였다. 소개되길, 칸은 유전학적으로 인간보다 훨씬 우월한 종족으로 인간을 파멸시키기 위해 지구를 침공한다. 하지만 이를 저지당한 칸은 냉동된 상태로 우주로 추방당해 미아 상태가 된다. 그리고 300년 후 이를 엔터프라이즈 호가 발견하게 된다. 극장판 <스타트렉2-칸의 분노>(1982, 이하 ‘<칸의 분노>’)는 이 지점에서 다시금 칸을 등장시킨다.

결과는? 깨어난 칸은 커크를 상대로 전쟁을 벌여 결국 패배하지만 그 과정에서 스팍의 목숨을 앗아간다. 이와 관련, <다크니스>에서는 칸에 고전하던 스팍이 미래의 자신에게 결과를 묻는 장면이 등장한다. (<다크니스>는 <칸의 분노>보다 훨씬 과거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래서 <다크니스>의 스팍에게 <칸의 분노>의 스팍은 자신의 미래인 셈이다.) 이에 미래의 스팍은 구체적으로 답변하기를 꺼리는데 바로 이와 같은 사연이 바탕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다크니스>는 <칸의 분노>에 대한 오마주를 넘어 리메이크의 성격이 짙다. 전작 <스타트렉 : 더 비기닝>(2009)에서 기본적인 인물 설정 외에 시리즈의 전통을 따르지 않아 시큰둥했던 트레커들이 열광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 <다크니스>에서 충족된 셈이다. J.J.에이브럼스 감독이 개봉 전까지 존 해리슨의 존재에 대해 함구했던 것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다만 <스페이드 시드>와 <칸의 분노>에서 칸을 연기한 배우가 멕시코 출신의 리카르도 몬탈반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캐스팅은 다소 의외로 비친다. 원래 베니시오 델 토로가 1순위였다가 여의치 않자 영국 출신의 컴버배치로 결정된 것인데 몇몇 트레커들은 이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호감은 가지만 스패니쉬 특유의 거친 인상을 소화하기에는 상대적으로 순해 보인다는 것이다.

외형적인 조건만 따지면 그럴지 몰라도 컴버배치 버전의 칸도 꽤 근사하다. 혈연단신 커크와 스팍에 맞서 압도하는 것은 기본이고 커크를 회유할 정도로 나름의 사연을 갖고 있는 것도 칸의 ‘악당다움’을 배가한다. 특히 칸의 사연이 극 중에서만 유효할 뿐 아니라 지금 미국에 대한 날선 비판이라는 점에서 무시무시하게 다가온다. 구구절절 그 사연을 밝힐 수는 없지만 미국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젊은이들을 전장에서 희생시키는 기성세대의 탐욕이 칸을 통해 폭로되는 것이다.

실제로 에이브람스는 “분노만 가득했던 전작의 악당 네로(에릭 바나)에 비해 업그레이드됐다. 그로 인해 작품의 질이 높아졌다.”고 칸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렇다면 왜 컴버배치였을까. 그의 캐스팅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장면은 칸을 쫓는 커크 일행과 크로노스 행성에서 대립할 때다. 그에 앞서 커크 일행은 사이가 좋지 않은 크링온 종족과 힘에 부치는 전투를 펼치는데 그때 구세주처럼 등장하는 인물이 칸이다. 크로노스 행성에 엔터프라이즈호를 불러들여 커크가 자신의 지도부에 등을 돌리도록 하기 위해 칸이 꾸민 계책이었던 것.

이 장면에서 보이는 칸의 영민함과 행동력은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그 자신의 출세작인 TV시리즈 <셜록>에서 홈즈 역할로 이미 증명했던 것이기도 하다. 만약 셜록 홈즈가 선이 아니라 악의 편에 선다면 그야 말로 존 해리슨, 바로 칸이 아닐까 자연스럽게 매치할 정도로 싱크로율이 뛰어나다. 주류에서 벗어나 있지만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이라면 이보다 더 좋은 악당의 조건이 어디 있을까. <다크니스>가 만족스러운 작품이라면 그 공의 8할은 이 악당에게로 돌아가야 마땅하다.

매거진 M
(2013.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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