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에이트> 괴수는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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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에이트>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발화되는 열차 전복 장면은 꽤 상징적이다. 뤼미에르 형제의 <열차의 도착>(1895)이 영화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한 것처럼 <슈퍼 에이트>의 괴수를 실은 ‘열차의 도착’은 ‘스티븐 스필버그’라는 장르의 본격적인 출현을 예고한다. 지난해만 해도 <황당한 외계인: 폴>의 그렉 모톨라, <리얼 스틸>의 숀 레비 등 스필버그에게 영향받은 ‘스필버그 키드’의 활약은 눈부셨다. 그중 <슈퍼 에이트>의 J. J. 에이브람스는 <미지와의 조우>(1977)와 <E.T.>에 대한 오마주로 <슈퍼 에이트>를 제작, 연출함으로써 좀 더 직접적인 계보를 형성한다. 스필버그 특유의 가족신화를 2010년대 버전으로 갈무리하는 것이다.

에이브람스 버전의 <미지와의 조우> 혹은 <E.T.>

특수 분장에 관심이 많은 조이(조엘 코트니)를 필두로 감독지망생 찰스(라일리 그리피스)와 마틴(가브리엘 비소), 캐리(라이언 리), 프레스턴(작 밀스), 그리고 앨리스(엘르 패닝)는 ‘슈퍼 8’ 카메라를 가지고 좀비영화를 만들어 영화제에서 상을 수상할 생각에 부풀어 있다. 각자 역할을 맡아 밤에 몰래 기차역에서 촬영을 하던 중 선로에 뛰어든 의문의 자동차로 인해 운송열차가 전복되는 사건을 목격한다. 그 사이에 정체불명의 괴수가 탈출하고 이후 마을에는 기이한 일들이 벌어진다. 전기를 발동시키는 전자부품들이 사라져 수시로 정전이 되는가 하면 마을사람들이 하나둘 없어지기까지 한다. 급기야 군인들이 마을을 들쑤시면서 괴수는 정체를 드러내기에 이르고 아이들은 더 큰 위험에 직면한다.

<슈퍼 에이트>는 에이브람스 감독의 자전적인 경험에서부터 출발한다. 10대 초반 슈퍼 8 카메라로 영화를 만들어 영화제에 출품한 경험 말이다. (이는 당시 지역 신문에도 실렸는데 기사를 본 스필버그는 본인의 8mm 영화 편집을 어린 에이브람스에게 맡기기도 했다.) 영화로 사고하고 그러면서 성장한 에이브람스의 무비 키드로서의 삶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실제로 <슈퍼 에이트>는 극 중에서 발생하는 재난현장이 곧 아이들이 찍는 영화의 배경이 되는 구조로 진행이 되는 까닭에 ‘<E.T.>와 <클로버필드>가 만났을 때’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처럼 온갖 시각적 이미지에 익숙해진 우리의 눈을 슈퍼 8 카메라 렌즈에 고정시킨다면 그 속을 채우는 건 스필버그의 초기 외계인 장르의 영화다.

<미지와의 조우> <E.T.>는 외계인 장르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지구의 평화를 위협하는 존재로 등장했던 외계인이 이들 영화에서는 인간에게 전혀 악의를 갖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해체된 미국 중산층 가족의 결합을 돕거나(<미지와의 조우>), 아빠가 부재한 아이들의 대체 부모 역할을 할(<E.T.>) 정도로 친근하게 묘사됐던 것이다. 다만 <슈퍼 에이트>는 조이와 친구들이 외계의 존재, 즉 괴수를 지구로부터 탈출시킨다는 내용 때문에 <미지와의 조우>보다는 <E.T.>의 정서에 더 가깝다. 영화가 시작되면 떠오르는 엠블린 엔터테인먼트의 이티를 태운 자전거가 달을 배경으로 날아가는 장면을 형상화한 로고도 그런 사실을 뒷받침한다.

그 때문에 영화의 배경 역시 <E.T.>가 개봉했던 1980년대를 전후하고 있는데, <슈퍼 에이트>는 두 가지 점에서 차별화된 설정을 보인다. <E.T.>의 엘리엇, 마이클, 거티 남매에게 아버지가 부재했던 것과 달리 <슈퍼 에이트>의 조이는 끔찍한 사고로 엄마를 잃었으며 스필버그의 영화에서 귀엽고 다소 어수룩해 보였던 외계인의 이미지는 에이브람스 버전에서는 끔찍하고 공격적인 괴수로 탈바꿈한 것이다. 이 차이는 영화 내적으로보다 외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E.T.>와 <슈퍼 에이트>가 각각 제작된  시기의 사회적 배경, 특히 가족의 위상과 관련해서 말이다. <E.T.>에서 스필버그는 외계인을 대체 아버지의 위치에 세워두고 해체된 엘리엇 가족의 봉합을 이야기했는데 <슈퍼 에이트>는 그 방법에서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2010년대의 가족 신화

<슈퍼 에이트>가 종국에 내세우는 메시지는 사이가 벌어진 가족의 결합이다. <E.T.>와 비교해 별다른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에 다다르는 과정은 사뭇 다르다. 두 영화가 극 중 비슷한 시간대의 배경을 공유하지만 실제 개봉 시기는 무려 30년 가까운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라 할 만하다. 그동안 스필버그는 가족의 봉합을 넘어 아버지의 지위 복권을 일관되게 전파해왔다. 그러면서 외계인을 바라보는 스필버그의 시선은 완전히 부정적인 쪽으로 기울었다. 예컨대, <우주전쟁>(2005)의 세 발 달린 거대한 괴물체만 하더라도 무차별적 살육으로 인간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그전까지 자식을 돌보는데 무관심했던 레이(톰 크루즈)는 외부의 침입자에 맞서 끝까지 아이들을 보호, 흩어진 가족을 불러 모으며 강인한 아버지의 지위를  획득했다.

그러니까 에이브람스는 변모한 스필버그의 외계인 장르 공식을 가지고 지금 이 시대에 어울릴법한 <E.T.>를 만들었다. 그렇다면 <슈퍼 에이트>의 관건은 하나. 육체는 어른이지만 정신적으로 성장하지 못한 아버지의 지위 복권은 어떻게 이뤄질 것인가. 아닌 게 아니라, 조의 아빠 잭슨(카일 챈들러) 경관은 부인을 잃은 후 사면초가다. 혼자서는 도무지 조를 키울 능력이 떨어져 보인다. 화장실에서 남몰래 눈물을 훔치는가 하면 방학동안에 조를 야구 캠프에 보내 잠시간 짐(?)을 덜어낼 생각까지 한다. 무엇보다 앨리스와 어울려 영화를 찍는 조를 도무지 이해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부인의 죽음에 앨리스의 아빠 루이스(론 엘다드)가 직접적으로 관여되어 있다는 피해의식 때문이다. 잭슨이 아버지로서 성장하기 위해서는 조뿐만 아니라 루이스와도 관계 개선이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이들의 화해를 중간에서 주선해야 하는 것은 실은 엄마의 몫이다. 하지만 조와 앨리스의 엄마는 모두 부재한 상태다. (앨리스의 아빠 왈, “앨리스 너도 엄마처럼 날 떠나버려”) 대신 이들의 관계 개선에 결정적인 다리를 놓아주는 것은 공교롭게도 괴수다. 다시 말해, ‘괴수=엄마’라는 공식이 성립되는 셈인데 얼핏 봐서는 논리에 맞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괴수가 엄마라면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파괴적인 행위를 해서는 안될 것 같기 때문이다. 이유가 있다. 사람들이 괴롭혀서다. 괴수는 공군기지 ‘에어리어 51’에 갇혀 이유 없이 생체 실험을 당하는 고통을 겪으며 인간에 대한 증오가 생겼고, 조의 엄마는 그녀의 죽음으로 조와 앨리스 집안 사이의 분란의 원인을 제공했으니 죽어서도 마음이 편할 리 없다. 어떻게 해서든 조와 앨리스 집안에 생긴 오해를 풀어줘야지만 마음 편하게 이승을 떠날 수 있을 것만 같다.

두 집안 사이의 화해를 이끌어낼 임무를 부여받은 것이 바로 괴수다. 괴수가 마을의 온갖 쇠붙이를 끌어 모아 우주선을 만들어 지구를 떠나려는 행위는 곧 조의 엄마가 그녀로 인해 생긴 현세의 오해를 해결한 후에 하늘나라로 올라가려는 은유의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하여 에이브람스는 괴수의 특정행동들을 엄마의 죽음으로 발생한 오해를 해결하는 일종의 힌트처럼 작용시킨다. 무덤 옆 주차장 공간 지하에 은신처를 마련케 함으로써 괴수를 죽은 조의 엄마의 대리인으로 위치시키고, 괴수에 의해 납치된 앨리스를 이곳에 보관해 놓아 조가 오게끔 유도함으로써 어린 연인의 특별한 인연을 강조하며, 그동안 불화하던 조와 앨리스의 아빠가 자식들을 구하기 위해 서로 힘을 합치도록 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그렇게 괴수=엄마라는 공식이 서서히 무르익을 때 쯤 감질 맛나게 부분적으로 모습을 비추던 괴수는 실체를 드러내게 된다. (크리처 디자이너 네빌 페이지에 따르면, 괴수의 눈은 극 중 조의 엄마의 눈에 가깝게 디자인했다고 전한다.) 그 과정은 잭슨과 루이스 사이에 생긴 불화가 풀어지는 흐름과 어느 정도 일치한다. 그것은 이들의 아버지로서의 정신적 성장과 맞물려 진행된다. 루이스가 공장에 결근한 탓에 대신 출근한 조의 엄마가 사고를 당한 것을 두고두고 원망하던 잭슨은 일련의 소동을 겪으면서 단순한 사고(“accident, just accident”)였다고 인정하며 화를 푸는 것이다. “우린 이해해. 살다 보면 나쁜 일도 생겨. 나쁜 일도 있지만 계속 살아갈 수 있어. 살아갈 수 있다고.” 위기에 빠진 조가 괴수의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던지는 말인데 조와 괴수의 관계뿐 아니라 잭슨과 루이스 사이에서도 유효한 메시지다.

화해의 메시지


J. J. 에이브람스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아버지의 지위 복권에 따른 가족 봉합을 좀 더 넒은 의미로 확장한다. 아버지의 성장 메타포는 받아들이되 가족 화해의 단위를 이웃으로까지 범위를 늘려 화해의 폭을 넓히는 것이다. 스필버그의 가족영화가 온전히 미국 내부의 이야기였던 것과 달리 에이브람스의 영화는 내부를 벗어나려는 의지가 읽힌다. <E.T.> 당시만 하더라도 외부의 침입에 따른 내부 결속이 더 중요했다. 하지만 외부의 문제가 내부에 잔존한 <슈퍼 에이트>의 시대에 절실히 필요한 것은 내부 결속을 넘어선 외부 세계와의 화해다. 화해는 집착을 버리는 지점에서부터 출발한다. 결국 이와 같은 소동이 벌어진 것은 지구에 불시착한 괴수가 자기 별로 돌아가려는 것을 도와주기는커녕 군사적으로 이용해먹으려는 인간의 이기심에서 비롯됐다.  

그런 이기심은 대개 집착을 불러오는 경우가 많다. 지구를 떠나려는 괴수를 포획하려는 어느 군인의 집착, 부모 사이에 생긴 갈등을 자식으로까지 전가하려는 잭슨과 루이스의 집착, 그리고 죽은 엄마에 대한 기억을 놓지 않으려는 조의 집착. 조와 앨리스 집안 사이에서 벌어진 갈등은 조의 엄마를 두고 벌어진 집착으로 빚어진 결과다. (그래서 <슈퍼 에이트>의 오프닝은 엄마의 죽음을 알리는 미장센으로 시작한다.) 조가 웬만해서는 품속에서 꺼내지 않는 엄마의 사진이 든 목걸이는 그런 집착을 상징하는 도구다. 아빠의 성장이 집착을 버리는 것에서 시작했듯이 조의 성장 역시도 엄마와의 옛 기억을 놓을 때 이뤄진다. 우주선의 자성에 이끌려 날아가던 목걸이를 손에서 놓자 괴수는 비로소 지구를 떠날 수 있게 되는데 마치 조가 붙들고 있던 엄마의 기억에 대한 집착을 저 멀리 떠나보내는 모습과 꼭 닮아있다. 새로운 시대는 그렇게 열리는 법이다. 스필버그 키드의 대표주자인 에이브람스가 스필버그의 유산을 현대에 맞게 재해석, 새로운 스필버그 장르를 완성한 것처럼 말이다.



영화관 속 작은 학교사용자 삽입 이미지

(20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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