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호구>(Super Virg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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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생겼다! 말도 안 된다! 못 만들었다! <숫호구>는 스스로 B급… 이 아니라 무려 C급을 자처하는 문제작이다. 제목부터가 그야말로 ‘병맛’이다. ‘호구’라는 지칭부터가 비하적이고 굴욕적인데 거기에 ‘숫’까지 접미되다니! 이 영화는 애초 남자 주인공 잘 생기고, 이야기 논리적이고, 완성도가 높은 작품을 의도적으로 지양한다. 우리가 소위 ‘정상’이라고 부르는 개념의 격을 고의적으로 깎아내리는 데에만 관심 있다.

우리의 주인공 원준(연출자인 백승기 감독이 직접 연기했다!)은 서른 살이 되도록 여자와 한 번도 자본 적이 없는 사정은 차치하고 연애 한 번 못해본 호구 중에서도 상급에 속하는 ‘숫호구 super virgin’이다. 그런 원준을 주목하는 불순세력이 있다. 자칭 생명공학 박사는 원준을 실험 재료 삼아 비밀생체실험에 돌입한다. 이름 하여, 100% 순수 페로몬 스테로이드성 물질. 사랑을 갈구하는 여자들이 겨드랑이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으면 한 방에 넘어오는 이 신비의 물질로 원준은 서른 살에 겨우 한 번 해본 남자가 되려고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  

각본과 연출과 주연을 모두 소화한 백승기 감독은 <숫호구>를 두고 “99%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라는 견해를 밝힌다. 영화 속 원준의 사연만큼이나 뻔뻔한 백승기 감독의 연출의 변(?)은 그 자체로 이 영화의 정서를 대변한다. 예컨대, 원준이 신비의 물질로 여자를 혹하게 하기 위해서는 자신보다 약 23배는 더 잘생긴 아바타로 신체를 갈아타야 한다. 이를 생명공학 박사가 설명하는 과정에서 침대에 누워있던 아바타 역의 배우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려 NG를 내는데 영화는 이를 그대로 사용하는 식이다.

그러니까, 영화 만들기에는 정해진 규칙 같은 것이 없다. 돈이 없으면 저예산으로, 배우가 모자라면 감독이 직접 출연하는 식으로, 세련되게 만들 여건이 되지 않으면 대놓고 못 만든 척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의 대전환을 가져오면 된다. 그래서 <숫호구>와 같은 영화는 미(美)보다 추(醜)가, 오리지널보다는 패러디가, 정상성보다 비정상성이 극 중 세계를 이끄는 작동원리다. 장면을 구성하는 미장센은 허술함 투성이고(방안에 덜렁 침대 두 대와 비커 몇 개를 가져다 두고 실험실이라 우긴다!) 감정을 쌓아가는 방식은 논리적인 이야기보다 배우의 과장된 행동과 표정(이 영화에는 못생긴 남자 배우들의 클로즈업 숏이 유난히 남용된다!)에 상당 부분 의존한다.

이런 식의 ‘울트라캡숑유치뽕짝완전병맛’스러운 영화의 원조 격은 <핑크 플라밍고>(1972) <디바인 대소동>(1974)의 존 워터스와 <식신>(1996) <소림축구>(2001)의 주성치다. 이들의 작품에 비하면 <숫호구>는 엉망진창인 이야기와 연출이 주는 황당함의 정도는 다소 떨어지는 편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백억 원이 넘는 제작비가 투입되고 전국 스크린의 반(半) 수를 먹어 삼킨 영화가 일주일 간격으로 개봉해 관객 싹쓸이를 하는 상황에서 <숫호구>와 같은 작품의 존재는 건강한 영화 생태계를 위해서나 다양성 측면에서도 소중할 수밖에 없다.

사실 이 영화는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코미디로 재미를 주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하지만 연애도, 결혼도, 취업도 마음 먹은 대로 되지 않는 청춘들의 현재 상황을 대변하는 것을 넘어 그 무기력함을 ‘똘끼’ 충만한 도전정신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까지 담아낸다. 그런 영화의 전략에 맞춰 배급 역시 대개봉이 아닌 소개봉으로 소수의 관객층을 겨냥한다. 바로 그와 같은 무모한 태도가 <숫호구>와 같은 C급 영화가 지닌 미덕이라 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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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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