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송강호는 요 몇 년 사이 우는 일이 잦아졌다. 물론 영화에서 이야기다. <사도>는 1,300만 관객을 돌파한 <베테랑>의 후광을 입은 유아인의 사도 연기가 인구에 회자되지만,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 장면은 영조를 연기한 송강호에게서 나왔다.
<사도>에서 영조는 일국의 왕이기 이전 아들에게 매몰찬 아버지였다. 사도가 원한 건 따뜻한 눈길 한 번, 다정한 말 한마디였거늘. 영조는 그림 그리기와 활쏘기 같은 잡기(?)에 한눈을 팔며 학문 수행에 정진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들을 쥐 잡듯 몰아붙였다.
왕과 세자라는 타이틀만 떼놓고 보면 이들 부자 사이의 갈등은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쉬이 목격할 수 있는 광경이다. 영조 왈, “잘하자. 자식이 잘해야 아비가 산다” 그리고 우리네 아버지 왈, “대학에 들어가야 사람대접 받는다” “예술이 밥 먹여 주니? 그 시간에 국·영·수를 한 문제라도 더 풀어라” “입시가 코 앞인데 지금 운동할 시간이 어딨니!”
다시 말해, <사도>의 영조는 우리 시대 아버지상(像)에 가깝다. 송강호는 <괴물>(2006) 때부터 아버지 역할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보였다. 괴물에게 납치된 중학생 딸을 구하기 위해 한강에 뛰어들었다. <우아한 세계>(2007)의 강인구는 주먹들을 이끄는 조직의 이인자였지만, 소통이 잘 안 되는 딸 앞에서는 전전긍긍했다. 또한, <관상>(2013)의 천재 관상가 내경은 한양 입성을 바라는 아들의 미래가 불행으로 끝날 것을 점지하고 품 안에서 놓지 않으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물론 이 외에도 송강호가 아버지로 출연했던 영화는 많았다. 그런데도 <사도>를 필두로 <괴물> <우아한 세계> <관상>을 특별히 언급한 이유는 이들 작품에서 아버지로서 흘리는 눈물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괴물>의 강두는 딸의 영정 앞에서 남은 가족들을 부둥켜안고 오열했다. <우아한 세계>의 인구는 조기 유학을 떠난 딸이 보내온 영상 편지를 보면서 보고 싶은 마음을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관상>의 내경은 역모를 꾀한 수양대군을 막으려다 실패로 끝나자 그 죗값(?)을 자식의 죽음으로 돌려받고는 목메어 울었다.
<사도>의 영조는 왕이 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했다는 이유로 아들 사도에게 등을 돌린 후 뒤주에 가두기까지 피도 눈물도 없는 아버지였다. 아니, 그런 아버지처럼 비췄다. 사도가 뒤주에 갇힌 지 8일째 되던 날 목숨을 잃자 아들의 죽음을 확인한 영조는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얘기한다. “내가 임금이 아니고 네가 임금의 아들이 아니라면 어찌 이런 일이 있겠느냐. 이것이 우리의 운명이다.”
이들 부자의 운명이 최악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왕과 세자 관계였기 때문이다. “네가 실수할 때마다 내 얼마나 가슴 졸였는지 너 아니?” 노론과 소론으로 갈렸던 신하들에게 책(責)잡히지 않기 위해 두 패를 고루 다스려야 했던 영조는 대리청정 시 올바른 말(“그대들은 어찌 조선이 사대부의 나라라면서 국방의 의무는 힘없고 굶주린 백성에게만 짐을 지게 하려는가?”)만 쏟아내는 사도로 인해 나라가 위기에 빠질 것을 염려했다. “내가 죽으면 나라가 망하지만, 네가 죽으면 300년 종사는 유지하느니라.”
이 영화에서 논란이 분분했던 장면, 굳이 소지섭이 연기한 정조를 등장시켜 마지막 장면에 할애함으로써 영조와 사도보다 인상을 더욱 강하게 남겼다는 것. 이는 영조와 사도가 주인공인 영화에 대한 올바른 결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사도가 뒤주에 갇힌 7일째, 영조는 아비의 마음으로 자식과 무언의 대화를 나눈다. ‘나는 자식을 죽인 임금으로 기록될 것이다. 너는 임금을 죽이려 한 역적이 아니라, 미쳐서 아비를 죽이려 한 광인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래야 네 아들이 산다.’
영조가 언급한 ‘네 아들’이란 다름 아닌, 정조. 결국, 사도의 죽음은 결과적으로 그의 아들인 정조를 살린 의미가 있다. 그럼으로써 사도의 마지막 명예를 지켜준 아비 된 자격으로서의 영조의 마음 씀씀이는 아들의 죽음을 확인한 후 회한의 시호를 지어주는 대사에서 잘 드러난다. “세손의 마음을 생각하고, 신하들의 뜻을 헤아려 세자의 지위를 회복하고, 그 시호를 생각할 사(思), 슬퍼할 도(悼), 사도세자라 하라.
그래서 정조가 춤을 추는 마지막 장면은 단순히 아버지 사도를 향한 헌사일 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도를 대신한 정조가 그 자신에게는 할아버지이지만, 사도에게는 아버지인 영조에게 살아생전 드리지 못했던 마지막 인사라는 의미로 확장하고 싶다. <사도>라는 제목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아들 정조로 끝맺음하는 영화의 태도 (혹은 감독의 입장)은 이 작품이 아버지를 기리는 마음으로 제작되었음을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극 중 영조를 연기한 송강호의 울음이 짠하게 다가온 건, 그래서다. 아버지란 존재는 자식에게 미안해서 늘 슬퍼하는 마음, 즉 도(悼)를 마음에 품고 있다. 한없이 퍼주어도 더 해주지 못해, 혹은 가진 게 없어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처지가 한스러워 자식에게는 죄인일 수밖에 없다.
우리 아버지들은 그런 마음을 표현하는 데 있어 서툴다. 바깥에서 경제활동에만 전념한 결과, 가족 안에서 외톨이로 전락했고 은퇴 후에는 가족과 어울리는 법을 몰라 뼈에 사무치는 외로움에 쓸쓸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가족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은 일방통행으로 오해받기 일쑤다. 송강호가 연기한 아버지 캐릭터는 지금 설명한 그대로 한국사회 일반의 아버지상을 반영해 공감을 얻었다.
딸이 좋아하는 고기만두를 사기 위해 분식집에서 30분을 기다리길 마다치 않았던 <우아한 세계>의 인구는 딸의 일기장을 보고는 그만 충격에 휩싸인다. 내가 누구를 위해 조직에 몸담아 죽을 고비를 넘기며 여기까지 왔는데 딸의 일기장에는 아빠가 칼에 찔려 죽었으면 좋겠다는 살벌한 문장이 적혀 있다. 술에 취해 고작 딸에게 한다는 소리는 “너 정말로 아빠 죽었으면 좋겠어?”다.
<사도>의 영조도 마찬가지다. “아비가 자식을 위해 책을 만드는데 자네 같으면 잠이 오겠는가.” 밤을 새워가며 책을 집필하는 모습에 신하가 옥체를 보전해야 하지 않느냐며 걱정을 내비치자 영조가 하는 말이다. 총명한 자식을 위한 아비의 사랑이 이렇게 깊거늘 정작 아들 앞에서는 “자식이 잘해야 아비가 산다.”는 투로 옥죄고 드니 그의 진심을 사도가 알아줄 턱이 없다.
사실 이들 아버지는 자식에게 따뜻한 눈길 한 번, 다정한 말 한마디 건넬 여유가 없다. 배려는 사라지고 경쟁만이 존재하는 이 세상은 타인을 물어뜯지 못해 안달 난 정글이 되었다. 안전망을 구축해야 할 국가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내버린 동안 가족을 지켜야 할 의무는 아버지에로만 전가됐다. 먹고 사는 데 별걱정이 없는 상류층은 그들 각자의 카르텔을 형성해 호의호식하는 동안 이에 속하지 못한 세상의 강두들은 ‘괴물’ 같은 사회 시스템에 인질로 잡힌 아들딸을 구조하기 위해 위험부담을 홀로 감수해야 했다.
한국사회에서의 생존법은 아버지가 되어서야 획득한 것이 아니다. 소시민이었을 적부터 이들은 말단직원 혹은 비정규직으로 회사로부터 부품처럼 이용만 당했고 재난 상태에서는 국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했다. 오히려 나라님의 심기를 거슬리지 않기 위해, 상사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조심, 또 조심하며 가시밭길 같은 한국사회를 간신히 통과해 아버지의 지위를 획득했다.
송강호는 지금처럼 아버지 캐릭터로 주목받기 전 소시민 역할로 관객의 사랑을 받았다. 대표작을 꼽으라면 단연 <반칙왕>(2000)이다. 이 영화에서 그는 어눌하고 소심한 은행원이었다. 지각은 기본이요, 실적은 형편없어 부지점장으로부터 매일 같이 헤드록 괴롭힘을 당했다. 월급쟁이 주제 사표를 낼 수도 없는 노릇. 탈출구는 레슬링이었다. 링에서만큼은 그가 왕이었다.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링 위에서 마음껏 풀며 ‘반칙’이 난무하는 사회에서 즐겁게 살아가는 법을 터득했다.
<반칙왕>을 통해 충무로의 독보적인 주연 배우로 송강호가 주목받던 2000년대 초반은 불의의 공권력에 맞서 놀이로 저항하는, 지금과 비교하면 꽤 낭만적인 시대였다. 당시 개봉작 중 <효자동 이발사>(2004)가 있었다. 각하의 용안에 흠집이라도 생기면 죽음까지 각오해야 했던 1960~70년대가 배경으로 등장한다. 영화는 5.16 군사정변을 묘사한 챕터에서 중고생 삭발령 조치에 주목한다. 정통성 없는 정권에 항의하기 위한 중고생들을 억압하려는 조치였는데 영화는 이를 우회해 이발관이 나날이 번창하는 설정으로 웃음을 자아낸다. 지금의 분위기에서는 제작이 불투명했을 영화에 송강호는 문제의 이발소 주인으로 출연하여 특유의 소시민 연기를 선보였다.
송강호는 그와 같은 시대의 정신을 반영한 캐릭터로 관객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녹록지 않은 시대를 B급 농담과 같은 놀이로, 웃음의 긍정으로 버텼던 송강호의 캐릭터는 이제 아버지가 되었다. 아버지가 된 그에게서 웃음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자식을 향한 근심과 걱정이 가득 채웠다. 그리고 소시민 시절 겪었던 아픔을 대물림하기 싫은 아버지는 자식의 미래를 위해 피도 눈물도 없는 이기적인 캐릭터로 거듭났다.
영조가 사도의 죽음을 확인하고 흘리는 눈물이 관객의 마음을 흔든 건 단순히 송강호의 연기가 뛰어났기 때문만은 아니다. 소시민에서부터 아버지까지, 송강호가 연기한 캐릭터들이 당대의 현실과 호흡하며 함께 성장해 온 까닭에 우리가 그동안 겪은 희로애락의 감정을 고스란히 투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송강호가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로 스크린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이래 <사도>까지 20여 년 동안 롱런할 수 있었던 이유다.
<사도> 이후 그는 차기작으로 김지운 감독의 <밀정>을 선택했다. 192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밀정>은 독립군 의열단과 일본인 밀정 사이에서 벌어지는 충돌을 다룬다. 이 영화에서 송강호는 조선인 일본 경부 이정출을 맡았다. 김지운 감독의 설명에 따르면, 조선에서도, 일본에서도 인정받지 못한 경계인으로 묘사될 예정이라고 한다. 언뜻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에서 국가나 이념에 상관없이 지도에 표시된 보물을 좇던 윤태구(송강호)가 연상된다.
하지만 전혀 다른 캐릭터일 것이다. 그동안 송강호가 연기해 온 캐릭터의 흐름을 복기하면 <밀정>의 이정출은 자식 잃은 아비가 이후 보일 행동 패턴으로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하다. 자식을 앗아간 거대한 시스템에 맞서거나 무기력하게 현실을 연명하며 살아가는 것. 이중 전자일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되는 건 <변호인>(2013)에서의 송강호 캐릭터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변호인>에서 윤택한 삶만이 지상목표였던 송우석은 현실의 불의를 목격하고 이에 맞서는 변호사로 울림을 주었다.
인간은 여러 경험을 통해 삶의 지혜라는 교훈을 얻는다. 그럴 때 진심이 생겨난다. 고난의 소시민 시절을 버틴 송강호의 캐릭터가 자식을 잃었다고 해서 현실에 무릎 꿇을 것 같지는 않다. 이제는 버티고 눈물을 흘리는 대신 거꾸로 돌아가는 세상을 향해 잘못을 꾸짖고 바로 잡을 때다. 그것은 우리와 함께 성장한 송강호의 캐릭터에 투영되기를 바라는 마음이기도 하다. 진심은 언젠가 통하는 법이다.
ARENA HOMME
2015년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