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포비아>(Socialphob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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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에서 가장 창의적이고 흥미로운 영화를 제작하는 곳은 한국영화아카데미(KAFA)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장편제작연구과정에서 배출된 영화로는 <파수꾼>(2010) <밀월도 가는 길>(2011) <잉투기>(2013) 등이 있다. 이들 영화의 특징은 단순 서술형의 이야기 진행 방식을 벗어나 실험적인 형식 도입과 장르 차용에 적극적이고, 무엇보다 인터넷, SNS, 게임 등과 같은 젊은 문화의 이면을 젊은 감독들이 펼쳐 보인다는 데 있다. 홍석재 감독의 장편 데뷔작 <소셜포비아>도 이에 해당한다.

이야기의 발단은 ‘현피’다. 어느 군인의 자살 소식으로 여론이 떠들썩한 가운데 ‘레나’라는 아이디로 죽은 군인을 모욕한 악성 댓글이 실시간 이슈에 오른다. 이에 분노를 느낀 경찰지망생 지웅(변요한)은 친구 용민(이주승)의 권유로 남자들로만 구성된 현피 원정대에 합류한다. 레나를 손봐주겠다며 신상을 털어 보무도 당당히 직접 찾아가는 것. 하지만 그녀는 목을 맨 시체로 발견된다. 비난의 화살은 순식간에 원정대에게로 향하고 지웅은 타살 의혹을 제기한 용민과 함께 직접 범인을 찾아 나선다.

현피, 즉 웹상에서 벌어진 분쟁의 당사자들이 실제로 만나 싸움을 하는 광경은 더는 낯설지 않다. 웹상의 갈등이 온라인에만 머물지 않고 오프라인까지 치고 들어온 건 이미 현실이 되었다. <소셜 포비아>가 다루는 내용도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다. 각본까지 담당한 홍석재 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당시 모 선수가 결승에서 패한 일을 가지고 여자 악성 댓글자가 악성 댓글을 남긴 사건이 있었다. 그 여자의 신상이 털리고 집 근처 PC방에 사람들이 실제로 모여서 찾아가려 한 사건이었다.”

의기투합한 남자들이 자경단이 되어 한 여자를 상대로 일종의 마녀사냥을 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었지만, 지금도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다. 비뚤어진 정의감으로 야기된 현피 문화에 대한 심각성이 우리 사회에 제대로 경종을 울리고 있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관련해 <소셜포비아>에서 흥미로운 장면은 극 중 사건에 대한 경찰의 대응이다. 레나의 자살에는 현피 원정대의 책임이 지대했지만, 관련 법규가 미비해 구속할 수 없다는 말과 함께 지웅에게는 경찰로 취업하기 어렵겠다는 타박뿐이다. 젊은이들의 웹문화에 대한 기성세대의 이해가 얼마나 떨어지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현피에 대한 기성세대 일반의 인식이란 웹상에서 폭주하는 일부 젊은이들의 치기 어린 행동 정도로 치부된다. 큰일 날 일이다. 온라인을 오프라인과 분리된 세계가 아닌 현실의 확장으로 받아들이는 젊은이들이 웹에서 느끼는 감정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소셜포비아>의 제목 작명과 관련한 일화도 이를 잘 드러낸다. 홍석재 감독은 이야기의 성격상 ‘소셜네트워크’와 ‘포비아’를 합쳐 지금의 제목으로 만들었더니 꽤 그럴싸해 보였단다. “내가 만든 신조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미 존재하는 단어였다. 원래 의미는 사회공포증인데 많은 사람 앞에서 수치심을 당해 본 이들이 보이는 증상을 뜻한다.”

‘소설포비아’에 걸리기까지 해당 인물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전개 양상은 꽤 복잡하다. 영화 속 레나의 죽음을 두고 진범을 찾는 과정이 미스터리의 장르 형식을 띠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단 웹상이 익명 공간이라는 점에서 아이디 뒤에 정체를 숨길 수 있고 필요에 따라 제2, 제3의 정체성을 쉽게 만들 수 있다는 것도 상황을 더욱 혼란스럽게 한다. 행여 불미스러운 일로 인해 개인정보가 탄로 날 경우, 다수에 의한 인격 살해로 나아가고 그럼으로써 피해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게 된다. 소셜포비아 증상이 발현한 사회적 배경이라 할 만한데 동명의 영화는 좀 더 극단적인 사례로 우리 사회에 경고를 보낸다.

그동안 우리는 웹상 기반의 소동에 대해 흥미를 느끼되 ‘눈팅’만 하며 방관자로 존재했던 것은 아닐까. 현피 원정대가 레나를 찾아갈 때 그 과정은 극 중 실시간으로 인터넷을 통해 생중계된다. 익명의 다수가 이를 보며 즐거워하고 있음은 스크린을 뒤덮는 SNS 멘션과 RT 이미지로 대체된다. 이 정도를 제외하면 이 영화의 문제의식은 철저히 사건과 당사자들에게로 향한다. 괄호로 남은 방관자의 자리는 <소셜포비아>를 보는 관객이 대체한다. 그것이 홍석재 감독의 의도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 현피처럼 영화가 끝나도 의문을 스크린 밖으로 끌어내 논의를 확장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소셜포비아>는 꽤 긴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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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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