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소녀 그리고 바다>(2つ目の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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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세 나오미 감독은 <소년, 소년 그리고 바다>를 두고 ‘자신의 최고 걸작’이라고 표현했다. 가와세 나오미 감독은 그 전에도 <너를 보내는 숲>(2007)으로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다. <소년, 소녀 그리고 바다>는 거기서 더 나아갔다는 얘기다.

시작이 심상치 않다. 가고시마 현의 아마미 섬을 배경으로 한 영화는 거세게 달려드는 파도의 모습으로 영화의 문을 연다. 마치 3.11 일본 대지진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오프닝은 곧 파도가 잠잠해진 이후 이 섬에 사는 소녀 쿄코와 소년 카이토의 삶에 주목한다. 둘은 서로에게 마음이 있지만 교코는 적극적인 반면 카이토는 미적지근한 행동으로 일관한다. 거친 바다에서 수영을 즐기는 교코와 달리 카이토는 바다가 무섭다며 멀리하려 드는 것이다.  

사실 카이토가 바다를 무서워하는 이유가 있다. 심하게 파도가 치는 날 둥둥 떠다니는 시체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죽음이 두려운 것이다. 그런데 <소년, 소녀 그리고 바다>가 묘사하는 죽음은 끝이 아니다. 가와세 나오미 감독은 <너를 보내는 숲>에서도 그랬지만 죽음을 통해 삶에 대한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 이야기를 천혜의 자연 환경을 통해 보여주기를 즐겼다.

자연이란 게 그렇다. 3.11 대지진처럼 인간의 삶을 무참히 파괴하기도 하지만 다시 살아갈 환경을 마련해주는 것도 바로 자연이다. 그러니까, 생사는 따로 떨어진 개념이 아니라 순환을 이루는 자연의 이치다. 그래서 영화는 죽음으로 시작하지만 교코와 카이토가 어떻게 맺어지는가에 상영 시간의 대부분을 할애한다. 그리고 그 과정은 쿄코의 도움을 얻어 바다를 두려워하는 카이토가 마지막 순간 함께 바다 속에서 헤엄치는 일련의 진행과 정확히 일치한다.

국내 제목은 <소년, 소년 그리고 바다>이지만 원제가 ‘두 번째 창 2つ目の窓’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년과 소녀가 어른으로 성장한다는 건 죽음을 경험하고 성(性)을 알아간다는 것이다. 죽음은 곧 새로운 탄생을 예고하는 것이기에 의문의 변사체를 발견한 카이토와 쿄코가 마지막 순간, 결합하는 과정으로 끝을 맺는 이야기의 구조는 또 하나의 세대의 시작을 알리는 셈이다.  

일반적인 삶의 순환을 표현한 것일 수도 있지만 3.11을 겪은 일본인에게 이는 일종의 희망의 메시지라 할 만하다. 사실 3.11 대지진 이후 일본영화들은 자의든, 타의든 이에서 자유롭지 않은 이야기를 만들어왔다. 가와세 나오미의 경우, <너를 보내는 숲>은 아들 잃은 젊은 여인과 오래 전 부인과 사별한 할아버지가 자연 속에서 상처한 마음을 치유하는 이야기로 자연과 삶이 왜 위대한지 일반론을 펼쳤다.

<소년, 소녀 그리고 바다>는 그와 비슷한 소재와 구조를 취하지만, 3.11 대지진의 악몽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일본인들에게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와 메시지로 희망의 근거를 제시한다. <소년, 소녀 그리고 바다>가 <너를 보내는 숲>에서 좀 더 진화한 결정적인 이유다.

부산일보
(2014.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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