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 홈즈>(Sherlock Hol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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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의 셜록 홈즈(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캐릭터를 두고 말들이 많다. 추리소설의 대표적인 캐릭터이자 추리형 탐정인 그를 액션영웅으로 탈바꿈시켰다는 것이 논란의 요지다. 어느 평자는 ‘이런 농담 같은 영화가 다 있냐’며, 어느 소설가는 ‘홈즈는 성룡이 아니다’라며 셜록 홈즈의 변신(?)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영화는 첫 장면부터 주먹질에 능한 홈즈의 모습을 부각시키는데 주저함이 없다. 왓슨(주드 로)과 짝을 이뤄 젊은 여자를 비밀 종교의식의 제물로 바치는 연쇄살인마 블랙 우드(마크 스트롱)를 말 그대로 때려눕히는 것. 블랙 우드는 곧바로 사형이 집행되지만 얼마 되지 않아 무덤에서 되살아나며(?) 홈즈와 왓슨은 괴이한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여기에 홈즈가 평생에 걸쳐 유일하게 사랑했던 여인 아이린(레이첼 맥아담스)이 가담하면서 일은 점점 더 꼬여만 간다.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 <스내치> 등으로 유명한 가이 리치 감독은 코난 도일이 쓴 소설 속 그대로의 셜록 홈즈를 재현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 시대가 한참 변한 만큼, 또한 영화가 블록버스터를 지향하는 만큼 셜록 홈즈 역시 현대적인 캐릭터에 걸맞은 위용을 뽐낸다. 액션영웅의 면모는 밝힌바 그대로고 홈즈와 왓슨의 관계 역시 우리가 알던 주인공과 조력자 간의 전통적인 관계를 넘어서 게이 커플이 아닐까 의심을 살만큼 동등한 관계로 급진전을 이뤘다. (왓슨이 홈즈에게 주먹을 날리기까지 한다!)

이는 셜록 홈즈 세계에서 그리 낯선 광경은 아니다. 셜록 홈즈는 소위 패러디라 불리는 안작(贋作)소설이 가장 발달한 시리즈다. 홈즈를 사랑하는 작가들이, 팬들이 그들 각자의 셜록 홈즈 소설을 완성한 것. 역사가 아주 깊어서 최초의 셜록 홈즈 안작소설은 이미 코난 도일이 살아생전이던 1892년에 발표된 <페그람의 수수께끼>이다. 그 후 코난 도일이 1893년에 발표한 <최후의 사건>에서 홈즈가 목숨을 잃자 (이때 함께 라이헨바흐 폭포에 뛰어들었던 모리아티 교수는 영화 <셜록 홈즈> 2편의 악당으로 예정된 상태다!) 그 충격에게 헤어나기 위해 팬들이 직접 안작소설을 ‘마구잡이’로 발표하기 시작했다. 그 인기가 지금까지 이어져 셜록 홈즈 소설의 하위 장르가 된 것이다.

<Y의 비극>의 앨러리 퀸은 서른 두 편의 안작소설을 모아 <셜록 홈즈 앤솔로지>를 편집했고 최근 들어 국내 출판계에도 미치 컬린의 <셜록 홈즈의 마지막 날들>, 칼렙 카의 <셜록 홈즈 이탈리아인 비서관> 등 홈즈 안작소설이 활발하게 번역, 출간되는 실정이다. 이들 작품의 특징은 셜록 홈즈 캐릭터의 기본 설정은 갖추되 기존 이미지에 구애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변주를 꾀한다는 것이다. 공포소설에 가까운 작품이 있는가 하면(<셜록 홈즈의 유언장>) 홈즈가 93세라는 노령의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하며(<셜록 홈즈 마지막 날들>) 심지어 홈즈와 왓슨이 게이 커플로 등장하는 팬픽도 있을 정도다.

그러니까 가이 리치의 <셜록 홈즈> 역시 전혀 말이 안 되는 영화가 아니다. <셜록 홈즈>는 가이 리치의 셜록 홈즈 안작인 셈이다. 오히려 가이 리치가 이야기의 변주는 꾀하였을지언정 홈즈 캐릭터의 기본 설정에는 굉장히 충실한 편이다. 4편의 장편과 53편의 단편에 등장하는 요소들이 대부분 영화 속에 포함되어 있을뿐더러 (개인적으로 베이커가 특공대의 모습을 볼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주먹질에 능한 모습만 하더라도 실제로 홈즈는 수준급의 복싱 실력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코난 도일의 작품 속에 묘사되고 있다. 더군다나 가이 리치는 홈즈의 액션도 사실은 추리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노골적으로 암시한다. 홈즈가 극중 권투경기를 치르면서 주먹을 날리기 전 상대의 움직임을 예상하고 어디를 가격할지 머릿속으로 미리 계산하는 장면이 나오는 것. 다만 셜록 홈즈라고 하면 추리 능력이 더 부각될 것이라는 기대감과 달리 액션 영웅적 면모가 더 강조되는 까닭에 일부 홈즈 팬들의 불만을 불러온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오히려 개인적으로 느끼는 <셜록 홈즈>의 불만은 굳이 가이 리치여야 했나는 점이다. 이왕 홈즈 소설의 변주를 꾀할 생각이었으면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나 <스내치> 버전으로 갔어도 좋을 듯 했다. 물론 극중 홈즈의 복싱 장면처럼 의도적인 시간 비틀기를 통한 가이 리치만의 장기를 드러내는 부분이 있지만 일부에 그칠 뿐이다. 특유의 베베 꼬인 스토리에 발맞춘 MTV적인 현란한 편집이 더욱 강조됐다면 더 완벽한 가이 리치만의 셜록 홈즈 안작영화가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찌됐든 홈즈는 홈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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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30)

4 thoughts on “<셜록 홈즈>(Sherlock Holmes)”

  1. 다들 안좋은 이야기들만 해서 흥미가 떨어졌었는데, 이런 설명을 보니 또 관심이 생기긴 하는군요. 더불어 ‘안작 소설’이라는 용어도 배웠습니다. ^^

    1. 저도 개봉 전 평들이 안 좋아서 크게 기대 안했는데 의외로 재미있더라고요. ^^ 보면서 홈즈는 뭐 주먹질 좀 잘 하면 안되나 이런 생각도 하고. ^^; 근데 안작이란 용어가 정확한지는 잘 모르겠어요. 따로 용어가 있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찾을 수가 없어서 무리 없이 안작이라고 사용했어요.

  2. 패션쪽 필자들은 영화 속 의상에 대해서도 많은 흥미를 보이더라고요. 왓슨과 홈즈의 의상도 성격따라 다르고 활동성에 따라 재질도 다르다는 식의 논의들. 저도 저런 정장 한 벌 사고 싶을 정도로 깔끔하고 멋스럽던데요. ㅎ 외전 식으로 영화와 만나는 변주를 상상한다면 < 프럼 헬>의 조니뎁과 수사 경쟁을 벌여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ㅋ

    1. 역시 패션 피플들! 근데 저는 < 프롬 헬>보다는 < 홈즈 vs 뤼팽>이 더 끌려요. 만약 셜록 홈즈가 시리즈가 된다면 2편은 어차피 모리아티 교수가 나오니까 3탄에 홈즈랑 뤼팽이랑 라이벌 전이 성사되지 않을까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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