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 베네딕트 컴버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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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셜록. 1854년에 태어났지만 나는 여전히 살아있다. 현재 나이로 치면 160세. 그것이 가능하냐고? 나에 대한 얘기를 들은 사람들이라면 잘 알 것이다. 내 특기 중 하나가 죽었다 다시 살아 돌아오기라는 것을 말이다. 라이헨바흐 폭포에서 죽다 살아난 나의 이력을 잊지는 않았겠지.

중요한 건 나의 불사(不死) 여부가 아니다. 얼마 전 나는 독특한 의뢰 한 건을 받게 됐다. 내게 오는 의뢰란 것이 대개는 범죄와 연관되어 있기 마련인데 이번에는 어떤 인물에 대한 조사였다. 그 인물은 놀랍게도 나의 행세를 하고 돌아다닌다는 ‘베네딕트 컴버배치’였다. 문의한 쪽에서는 참고가 될 거라며 DVD 몇 장을 놓고 갔는데 다름 아닌 <셜록>이었다. 제목을 보는 순간 간파했다. 문의한 쪽에서 원하는 건 조사가 아니었다. 컴버배치에 대한 나의 인상이었다.

DVD 커버를 보는 순간 놀랐다는 사실을 고백해야겠다. 천하를 품은 것 같은 이마 위를 살포시 가린 헤어스타일, 날카로운 눈매, 굳게 다문 입술을 호리병에 담아 넣은 듯한 인상은 영락없는 나, 바로 셜록이었다! 짙은 눈썹 아래 깊게 패인 눈매는 세상에 대한 왕성한 호기심을 나타내고 (실제로 그는 대학에서 미술을 공부한 후 티베트에서 영어를 가르치다가 다시 돌아와 연기에 입문했다. 다 아는 사실 아닌가?) 날렵한 코선 옆에 두툼히 자리 잡은 살점들은 묘한 퇴폐미를 자극한다. 그게 바로 나다. 나처럼 살인사건에서 만족을 얻고 고독하게 바이올린을 켜는 사람에게는 아이러니한 매력이 존재한다.

안 그래도 <셜록>의 마크 개티스와 스티븐 모팻 작가가 소녀를 유혹하는 변태 성향의 귀족 청년을 연기한 <어톤먼트>(2007)의 컴버배치를 보고 셜록 역에 낙점했다는 일화를 알게 됐다. 사람들은 나의 매력이 치밀한 추리 능력에 있다고 보는 데 반은 틀린 얘기다. 그 정도로는 2세기 가깝게 팬들의 사랑을 받기는 어렵다. 지성과 퇴폐(?)를 오가는 인간적인 면모 덕에 지금껏 장수하는 캐릭터가 된 사실을 사람들은 간과하고는 한다. (“그놈의 잘난 척은”이라고 비아냥거리는 존 왓슨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군.)

그런데 시즌 3의 1부 ‘빈 영구차’는 너무 나와 왓슨의 브로맨스에 초점을 맞춰 시리즈의 본질을 흐린 경향이 강하다. 요즘 젊은 여성들에게 브로맨스가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걸 모르는 바 아니지만 (컴버배치를 좋아하는 여성들은 그런 자신을 일러 ‘컴버비치 Cumberbitches’라고 부른다고? 오~ 세상에!) 탐정으로서의 추리 능력을 희생하면서 셜록과 존의 러브라인을 부각한 건 지나친 처사였다. 사랑은 내가 잘 모르는 영역이지만 뭐, 그 심정 모르는 바 아니다. 나의 아버지 코난 도일도 라이헨바흐 폭포에서 죽은 나를 다시 살려내기 위해 좀 억지스러운 설정을 가져왔으니 그에 비하면 그리 실망스러운 수준은 아닐 수도 있겠다.

오히려 더 멋진 결말을 이끌어낼 거라 본다. ‘빈 영구차’에 대한 팬들의 시들한 반응을 보고 컴버배치가 남긴 말이 있다. “다시 살아온 배경이 흐릿하다고 해서 미리 실망할 필요는 없다. 그와 관련해 멋진 에피소드가 기다리고 있다. 나와 (존 왓슨을 연기한) 마틴 프리먼이 어서 빨리 2부와 3부가 공개되길 원하는 이유다.” 그의 말은 내가 보장한다. 컴버배치처럼 소신 있는 사람은 거짓말을 하는 법이 없다. “내 사진을 찍을 시간에 더 중요한 걸 세상에 알리라”며 파파라치에게 일갈한 그가 아닌가. 같은 상황이었다면 나 또한 그렇게 했을 거다. 그처럼 나와 컴버배치는 닮은 점이 많다.

난 하루라도 사건이 없으면 입에 가시가, 아니 폐가 독성 강한 니코틴을 부를 만큼 범죄가 고픈 사건중독자다. 컴버배치는 지독한 일중독자다. <셜록> 시즌 1으로 전 세계적인 인기를 모은 후 그는 지금까지 쉬어본 적이 없다. <셜록> 이후 <워호스>와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와 대니 보일의 연극 <프랑켄슈타인>에, <셜록> 시즌 2에 이어 TV미니시리즈 <파라다이스 엔드>와 <스타트렉 다크니스>와 <호빗: 스마우그의 폐허>에, <셜록> 시즌 3를 마치고는 <노예 12년>과 <제5계급>에 연이어 출연해온 그다.

우리 같은 중독자들의 특징은 일만 많이 맡는 게 아니라 모두가 만족하는 인상적인 결과물을 내놓는다는 데 있다. 나에게 해결 못할 사건이 없는 것처럼 (앗! 또 다시 왓슨의 목소리가…) 컴버배치 역시 맡은 캐릭터에서 모두 인상적인 연기를 펼쳐보였다. 사람들은 내가 태어날 때부터 천부적인 추리력을 타고난 것으로 알고 있지만 나의 능력은 후천적으로 부단히 노력한 결과다. 컴버배치의 ‘셜록의 재림’ 외모야 타고난 것이겠지만 내가 워낙 복잡한 성격을 가진 캐릭터라 자세히 연구하지 않으면 연기하기 결코 쉬운 배역이 아니지 않나.

다행히 12살 때 내가 등장하는 소설을 읽고는 홀딱 빠져들었다지. 셜록 배역에 확정된 뒤에도 장편 4편과 단편 56편을 모두 섭렵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눈에 띄게 몸무게를 감량(“수영과 요가로 살을 빼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봤다.”)했다는 일화는 컴버배치가 소설을 단순히 읽기만 한 게 아니라 나에 대해 어느 정도 조사했음을 말해준다. 소설 <주홍색 연구>에서 존은 나에 대한 첫 인상을 이렇게 묘사했다. ‘그는 키가 1미터 80센티미터가 넘었는데 너무나 깡말라서 훨씬 더 커보였다.’ 나 같이 매일 사건을 추리해야 하는 탐정은 직업의 성격상 몸이 둔해서는 곤란하다. 최대한 군살을 없애야 생각을 빨리할 수 있고 사건 현장에 신속하게 달려갈 수 있기 때문이다.

정신과 육체는 떼어놓고 설명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그건 내가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시하는 것이다. 연기도 마찬가지일 터. 컴버배치 이런 얘기를 한 사실을 알고 있다. “셜록을 연기하면서 가장 크게 세운 목표는 천재적인 추리 능력에 더불어 그에 걸맞은 신체 조건까지 완벽한 홈즈를 완성하는 것이었다.” 나는 컴버배치가 <셜록>에 대해 한 말 중 이게 가장 맘에 든다. 물론 홈즈라고 표현한 부분이 실망스럽기도 하다. 홈즈라는 성(性)이 내 개성을 죽이는 것 같아 이렇게 불리기 싫어한다는 걸 컴버배치가 간과한 것 같아서 말이다.

그 정도만 빼면 난 컴버배치가 연기하는 셜록이 성격 구현부터 외양 재현까지 거의 완벽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컴버배치도 나처럼 불사의 존재로 오랫동안 팬들의 사랑을 받을 거라고 확신한다. 죽지 않고 산다는 것? 꼭 살아있어야만 사는 건가. 내가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팬들이 계속해서 나를 소환하기 때문이 아닌가. 이미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셜록이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자신의 대표적인 캐릭터를 만들었다. 배우가 대표 캐릭터를 만든다는 건 결코 쉬운 게 아니다. 그런 점에서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나만큼은 아니겠지만 오랫동안 기억될 배우인 것은 확실하다.

맥스무비 매거진
2014년 2월호

2 thoughts on “<셜록> 베네딕트 컴버배치”

    1. 와~ 버디 형 ^^ 오랜만예요, 잘 지내시죠? 저 셜로키언이잖아요 ㅋㅋ 농담이고요. 뭐, 이 정도는 다들 쓸 수 있는 글이잖아요. 전혀 새로운 내용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형은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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