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세이션과 논쟁, 그리고 미국에서의 흥행돌풍 – <보랏>


<보랏:카자흐스탄 킹카의 미국 문화 빨아들이기>(이하 보랏)는 카자흐스탄 출신 방송국 리포터 보랏(사샤 바론 코헨)이 선진문화를 배우러 미국 뉴욕에 왔다 벌이는 엽기적인 소동을 다룬다. 그런데 그 소동이라는 것이 인종차별, 여성혐오주의 등과 같은 인권무시의 문제다보니 <보랏>은 영화의 시작부터 크고 작은 소동에 휩싸였다. 


도망치거나 혹은 체포당하거나

<오스틴 파워>(97)<미트 페어런츠>(01)로 유명한 제이 로치 감독이 <보랏>의 제작을 결심하게 된 건 <Da Ali G TV Show> 때문이다. <Da Ali G TV Show>는 사샤 바론 코헨이 창조하고 직접 연기한 캐릭터 – 마약에 찌든 런던 출신의 자메이카 비보이, 오스트리아 출신의 동성애자 패션모델 그리고 보랏 등 – 가 등장, 이를 실제로 착각한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불쾌한 질문과 상황을 만들어 웃음을 자아내는 프로그램.

제이 로치는 이 리얼리티 토크쇼를 보며 등장인물과 상황은 허구지만 일반인들은 이를 실제로 믿게 하는, 전통적인 할리우드 스타일의 코미디와는 다른 점에 감명을 받았다. 특히 사샤의 연기가 혁명적이라고 생각한 그는 카자흐스탄 출신의 방송국 리포터 보랏을 메인 캐릭터 삼아 <Da Ali G TV Show>의 형식을 그대로 차용한 영화를 만드니 바로 <보랏>이었다.

이를 위해 사샤 바론 코헨을 포함 총 8명으로 구성된 <보랏> 팀은 아이스크림 트럭을 동원, 뉴욕에서부터 캘리포니아까지 이르는 긴 여정을 시작했다. 그래서 총제작을 맡은 모니카 레빈슨은 이 영화가 게릴라 스타일로 접근한 필름 메이킹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하지만 이들의 ‘치고 빠지는’ 식의 게릴라 영화 만들기 수법은 실제상황으로 착각한 이들에 의해 많은 위험을 수반했다. 극중 보랏이 머문 호텔에서는 시끄러운 소동과 파손된 집기가 문제가 되어 경찰에 체포당하는 불상사를 겪기도 했다. 레빈슨은 심문을 당했고, 조감독 데일 스턴은 나머지 멤버를 보호하기 위해 영화에 관한 상세 정보가 적힌 문서를 먹어치우기도 했다.

극중 보랏을 맡은 코헨은 극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그 정도가 심했다. 촬영기간 동안 경찰로부터 모두 91회에 걸쳐 제지를 당했는데 뉴욕에서는 체포 명령장이 나왔고, 테러리스트로 오인한 FBI의 심문에 동료의 차를 이용, 줄행랑을 친 적도 있다. 버지니아의 로데오 경기장에서는 더욱 아찔한 경험을 했다. 미국 국가 연주에 카자흐스탄 국가를 불러 이에 격노한 카우보이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할 위기에 몰린 것.

이렇게 위험한 곤경에 빠질수록 사샤는 자신을 더욱 고립된 상황으로 밀고 갔고 그로 인해 영화의 허구적인 상황은 실제보다 더욱 실제적인 리얼리티를 확보할 수 있었다. 2006년 11월 4일 미국 개봉시 <보랏>은 선정적인 내용 탓에 고작 837개의 극장에서 개봉했지만 3,500개의 스크린으로 밀어붙인 <산타클로스3:면책조항>을 제치며 당당히 1위로 데뷔했다.


환호하거나 혹은 비난하거나

<보랏>의 돌풍은 비단 선정적인 내용과 실험적인 형식 뿐 아니라 개봉 전부터 끊이지 않고 제기되어온 민감한 논쟁들이 흥행에 호재로 작용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특히 카자흐스탄을 미개한 나라로 비하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이 <보랏>의 상영금지를 위해 부시 대통령에게 전격 면담을 요청했다는 사실은 영화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다행히도 영화의 허구성을 인정한 카자흐스탄 대통령이 <보랏>은 코미디일 뿐이라며 이전의 입장을 번복해 소동은 일단락되는 듯하였다. 하지만 개봉 이후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화제를 모으자 <보랏>은 더 많은 논쟁의 회오리 속으로 빠져들었다.

가장 먼저 소식이 날아든 것은 루마니아에서였다. 극중 보랏의 고향으로 묘사된 카자흐스탄의 작은 마을은 실제로 루마니아의 글도드에서 촬영되었는데 이 지역 주민들이 자신의 동네를 근친상간과 매춘부가 들끓는 마을로 묘사했다 하여 <보랏>을 상대로 집단소송을 벌인 것. 하루 뒤인 11월 10일에는 러시아로부터 상영금지조치를 당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특정인종(카자흐스탄인)과 종교(이슬람교와 유대교)를 폄하하고 러시아 관객들을 문화적으로 비하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카자흐스탄 역시 빠질 수 없다. <보랏>을 향해 공격적이고 거짓말로 가득 찬 영화라며 카자흐스탄의 가장 큰 극장 체인인 오타우 시네마는 이 영화의 상영을 자체적으로 금지했다.

부정적인 소식이 연일 계속되자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던 파멜라 앤더슨은 극중에서처럼 신변이 위협당할 수 있다는 이유로 경호를 강화하는 해프닝을 벌였다. 그로부터 9일 후 그녀는 영화를 본 남편 키드 록과 심한 말다툼을 벌인 끝에 4개월 동안의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어 <보랏>은 또 한 번 도마 위에 오르기도 하였다.  

그러나 논쟁의 정도는 흥행의 성적과 비례하는 것일까. <보랏>이 논쟁의 한복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수록 영화의 흥행은 그에 발맞춰 높아만 갔다. 개봉 2주차에 접어들어 관객의 입소문을 타고 전주보다 세 배가 늘어난 2,566개 스크린에서 영화 상영이 이루어졌고 2천 9백만 달러를 벌어들여 개봉 첫 주의 2천 6백만 달러를 가뿐히 앞질렀다. 그뿐인가, 64회 골든 글러브 뮤지컬/코미디 부문 작품상과 남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 된 것은 물론 미국영화연구소 선정 ‘올해의 10대 영화’ 및 타임지 선정 ‘2006년 주요 인물 26인’에 뽑히는 영광까지 안았다.


(2007. 1. 8 <스크린>)

2 thoughts on “센세이션과 논쟁, 그리고 미국에서의 흥행돌풍 – <보랏>”

  1. 책이 또 왔습니다 -0-; 또 보내주신거에요??
    역시 웹에서 보는 글이랑 책에서 보는 글이랑은 느낌이 다르네요.
    책좀 봐야할텐데.. 음.
    그건 그렇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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