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얼간이>(3-Idio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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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정식으로 개봉된 인도영화는 <블랙>(2005)과 <내 이름은 칸>(2010) 등 손에 꼽히지만 그 전부터 팬들 사이에서는 한국과 할리우드 영화의 인기를 훨씬 능가할 정도다. 라지쿠마르 히라니 감독의 <세 얼간이>(2009)가 대표적으로, 국내 인터넷 리뷰만 2만 개 이상이 오르자 전격적으로 개봉이 결정된 경우다. <세 얼간이>는 제목과 달리 진짜 얼간이들의 얘기가 아니다. 비인간적인 경쟁과 오로지 취업만이 대학 사회의 최우선 가치가 된 상황에서 우정과 사랑과 꿈과 같은 고리타분한(?) 가치를 외치는 이들의 활약상을 담고 있는 것이다.

임페리얼 공대는 인도에서 수재들만 모이는 곳으로 유명하다. 파르한(마르하반)은 사진에 재능이 있지만 아버지의 성화에 못 이겨 공대에 입학한 케이스다. 라주(셔만 조쉬)는 병든 아버지와 가난한 집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대기업에 취직할 목적으로 임페리얼에 들어왔다. 하지만 괴짜로 통하는 란초(아미르 칸, 실제 나이는 47세로 20세의 대학생 역할을 소화하기 위해 촬영동안 우유와 바나나로 식사를 대신했다고 한다)를 만나면서 이들은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한다. 경쟁에 휩쓸리지 않고 하고자 하는 일에 열정을 바치는 란초의 주관에, 친구를 위해서 자신의 꿈을 잠시 접을 줄 아는 희생정신에 파르한과 라주는 삶의 가치를 다시금 생각하는 것이다.

<세 얼간이>는 이미 자국에서 역대 인도영화 흥행 1위를 차지할 만큼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그것은 단순한 재미뿐 아니라 인도인들의 의식 속에 잊혔던 어떤 감정을 건드린 것으로 풀이된다. 급작스러운 산업화와 그에 따른 경쟁의식, 그리고 출세와 돈만이 성공의 척도로 인정받는 사회에서 순수를 불러일으키는 감정에의 호소는 <세 얼간이>의 진가다. 특히 그런 인도사회의 축소판으로 엘리트들이 집결한 대학(극중 임페리얼 공대는 가상의 학교다)을 배경으로 삼은 점은 의미심장하다. “2등은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다”는 총장의 폭력적인 교육관 앞에서 이를 거부하듯 ‘알 이즈 웰'(All is Well의 인도식 발음), 즉 “모두 괜찮을 거야” 외치는 란초의 주문은 돈보다, 출세보다, 성공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되살리려는 의지처럼 들린다.

묵직한 메시지를 품고 있지만 <세 얼간이>가 이를 풀어가는 전략은 코미디다. 대중영화로써 더 많은 관객에게 어필하기 위한 상업적인 선택이기도 하지만 순수의 회복을 지향하는 란초의 행위가 지금 인도의 사회적 기준으로 판단컨대 ‘바보'(idiot)스럽게 비춰지는 것을 상징하는 반어의 형식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세 얼간이>는 한국의 <써니>(2011)처럼 실질적으로 판타지다. 예컨대, <써니>는 불치병에 걸린 주인공이 자신의 부를 이용해 현실의 무게에 기를 펴지 못하는 고교동창생을 구원한다는 내용이다. 비현실적이지만 영화적인 해피엔딩으로 관객들에게 잠시간의 위안을 주며 흥행에 성공했다. 그와 마찬가지로 <세 얼간이> 역시 란초로 대변되는 인간적인 가치의 순수함이 많은 관객에게 감동을 선사한다. 다만 여전히 스크린 밖 현실에서는 세속적인 가치가 인간성을 압도하는 상황에서 판타지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세 얼간이>는 그 자체로 재미있을 뿐더러 인도의 상황을 엿볼 수 있는 프리즘과 같은 작품이다. 그런데 어쩜 그렇게 한국 사회와도 닮았는지! 이는 국내 영화수입사가 인도영화를 소비하는 방식에서도 확인된다. 원래 170분에 달하는 <세 얼간이>는 국내에 소개되면서 141분으로 축소되었다. 인도영화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상당수의 뮤지컬 장면을 삭제한 까닭이다. 물론 두 개의 뮤지컬 장면이 살아있지만 국내 관객의 정서를 이유로 온전한 형태의 작품을 볼 수 없는 것은 인도영화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저해하는 폭력처럼 비친다. 영화는 그 어느 때보다 현실에 가깝게 다가서려 애쓰지만 현실은 영화를 상품의 일종으로 규격화하며 허구(혹은 판타지)의 영역에 가둬놓으려 한다. 영화 안팎으로 <세 얼간이>는 한국 사회의 리트머스 시험지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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