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열차> 봉준호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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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에 쏠린 관심은 한국을 넘어 전 세계적이다. 대개는 한국 매체 들로 북적이는 언론시사회에 ‘스크린데일리’, ‘버라이어티’ 등과 같은 해외 유수 언론의 기자들까지 참여했다. <살인의 추억>(2003) <괴물>(2006) <마더>(2009) 등으로 세계적인 감독의 반열에 오른 봉준호 감독의 4년만의 신작인 까닭이다.

스케일부터가 남다르다. 제작비가 한국영화 사상 최고액인 450억 원이고 참여한 배우의 면면도 입이 쩍 벌어질 정도다. <퍼스트 어벤저>(2011)의 크리스 에반스, <케빈에 대하여>(2011)의 틸다 스윈튼,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2011)의 존 허트, <빌리 엘리어트>(2000)의 제이미 벨, <더 록>(1996)의 에드 해리스, 그리고 <헬프>(2011)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옥타비아 스펜서까지, 할리우드에서도 모으기 힘든 이 쟁쟁한 배우들이 한국의 송강호, 고아성과 함께 <설국열차>에 동승한 것이다.

프랑스 만화를 원작으로 한 <설국열차>는 기상이변으로 모든 것이 얼어붙은 빙하기를 맞아 생존자를 태운 채 끝없이 궤도를 달리는 열차가 배경이다. 근데 이 열차, 계급 피라미드를 수평으로 늘어뜨린 것 마냥 사람들의 신분이 칸으로 정확히 구분되어 있다. 맨 뒤쪽의 꼬리 칸이 배고프고 돈 없는 이 들로 바글대는 빈민굴이라면 앞쪽 칸으로 갈수록 호화로워지는 객실은 선택받은 사람들의 세상이다. 이에 불만을 느낀 꼬리 칸의 젊은 지도자 커티스(크리스 에반스)는 맨 앞쪽의 엔진 칸으로 전진하기 위한 폭동을 도모한다.  

봉준호 감독이 <설국열차>의 영화화를 결심한 건 2004년 겨울. 홍대 앞의 단골 중고 만화 책방을 들렀다가 <설국열차>를 발견, 그 자리에서 다 읽고는 영화로 만들 생각을 굳힌 것이었다. “최초의 매혹은 ‘기차’라는 독특한 영화적 공간이었다. 그 안에서 꿈틀거리는 인간들의 모습이 내 마음을 뒤흔들었다. 그런데 거기에서 더 나아가, 인간들은 서로 싸우고 있었다. 최후의 생존자들을 태운 노아의 방주에서조차 인간들은 칸과 칸으로 계급이 나위어진 채 서로 평등하지 못했던 것이다.”

<살인의 추억>의 참혹한 연쇄살인, <괴물>의 한강에 나타난 괴물, <마더>의 미쳐가는 엄마 등 봉준호 감독은 늘 극단적인 상황에 처한 인간의 본성을 파헤치는 데 집중했다. 더 정확히는, 약자의 위치를 점한 이들이 시스템에 저항하며 발버둥치는 모습으로 우리 사회의 진짜 모습을 고발하길 즐겨왔다. 다시 말해, 꼬리 칸의 해방을 이야기의 엔진으로 삼은 <설국열차>는 봉준호 감독의 작가적 세계가 기차라는 소우주 속에 이식된 영화라 할 만하다.

다르다면, 전작들이 지극히 한국적인 상황과 정서를 바탕으로 독특함을 획득한 것에 반해  <설국열차>는 전 세계를 무대로 한 영화이니만큼 (이미 개봉 전 167개국 판매를 완료했다.) ‘해방’하면 떠오르는 레퍼런스가 꽤 된다는 것. 예컨대, 선택받은 리더, 베일에 쌓인 절대자, 어둠이 지배하는 내부와 이를 뚫고 나가면 대면할 수 있는 밝은 외부 세계 등을 감안하면 <설국열차>는 기차 버전의 <매트릭스>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우리가 봉준호의 영화를 떠올렸을 때 기대할 법한 새로운 이야기는 아닌 셈이다.

실제로 <설국열차>에는 봉준호 영화 특유의 유머가 거의 실종됐다. 열차의 보안설계자 남궁민수 역을 맡은 송강호가 <살인의 추억>에서 보여준 예의 그 말장난 식의 개그를 선보이지만 영어권 배우들과 대화의 합을 맞추지 못해 적중률이 현저히 떨어진다. 언어의 뉘앙스가 이야기를 전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것을 감안하면 다국적 배우와 스태프가 참여한 <설국열차>는 애당초 봉준호 감독의 개성이 많이 죽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단 하나, <설국열차>에서 즐길 수 있는 봉준호 감독의 주특기는 바로 장르 비틀기다. <살인의 추억>으로 범인이 잡히지 않는 범죄영화를 만들었고 <마더>로 중년의 아줌마가 주인공인 작품을 연출했던 것처럼 해방을 주제로 삼은 이번 영화에서는 미국 중심의 사고(思考)를 벗어난 새로운 시각을 선보인다. 스포일러라 정확히 밝힐 수는 없지만 세계의 리더로 앞장서거나 활동했던 건 늘 미국이었고 백인이었는데 봉준호 감독은 이와 같은 시각에 균열을 가하는 것이다.

흔히 SF는 그 특성상 스케일이 큰 경우가 많아 할리우드가 가장 독보적인 만듦새를 과시해온 장르다. 아무리 <설국열차>에 한국 영화 최고액의 제작비가 투입됐다고는 해도 ‘때깔’면에 있어서 할리우드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그래서 봉준호 감독은 이번 영화의 제작 과정을 회고하며 이렇게 얘기했다. “한국에서는 최고 제작비지만 미국에서는 중저예산 작품으로 분류가 된다. 큰 예산을 쓰긴 했지만 내 연출작 중 가장 허리띠를 졸라매며 계획에 맞춰 찍으려고 노력한 작품이다.”  

<설국열차>는 SF라는 기차의 꼬리 칸에 위치한 봉준호 감독이 맨 앞쪽의 할리우드를 향해 던지는 선전포고에 비견할 만하다. 그렇다면 봉준호의 반란(?)은 성공적인가? ‘스크린데일리’는 ‘사회적 계급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전혀 지루하지 않은 전개를 보여준다.’고 호평했다. ‘버라이어티’는 ‘천재 감독의 야심찬 미래 서사시로, 제임스 카메론, 크리스토퍼 놀란, 기예르모 델 토로 같은 유수의 감독들이 연출한 작품을 제외하고는 매우 찾아보기 힘든 특성’이라며 극찬했다. 봉준호는 이미 맨 앞쪽 칸의 사람들을 매료시킨 것이다.  

시사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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