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The Bi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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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레드 히치콕에게 <새>(1963)는 그 자신의 경력에서 가장 스케일이 큰 도전이었다. 몇 번의 TV 출연을 제외하면 연기 경험이 아주 없었던 무명 여배우와의 작업, 살아있는 새와 애니메이션 새를 혼합해 실제처럼 보이게 만들어야 하는 특수효과, 식별 가능한 음악 없이 오로지 새의 음산한 울음소리로만 구성한 사운드 트랙, 그리고 그의 연출작 중에서 최고의 제작비에 해당하는 330만 달러까지, 줄곧 작업해 오던 파라마운트를 떠나 유니버설로 회사를 옮겨 처음 작업하는 <새>는 여러 모에서 히치콕에게는 도전이라 할만 했다.

하지만 <현기증>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싸이코> 등으로 경력의 정점을 찍은 그에게 <새>의 여러 불리한 조건들은 완성도를 방해할만한 위험 요소가 전혀 아니었다. “처음부터 특수효과의 난제들을 맞닥뜨리는 것에 절대로 겁을 집어먹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 영화는 결코 만들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나는 임기응변으로 일을 처리해 나갔습니다.” 심지어 <자마이카 인>(1939) <레베카>(1940)에 이어 <새>까지, 세 번째로 작업하게 되는 다프네 뒤 모리에의 원작소설이었지만 그 사실에도 예민한 반응을 보였을 정도다. “나는 그 소설을 딱 한 번 읽었습니다. 지금도 그게 무슨 내용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히치콕이 뒤 모리에의 소설 <새>를 떠올린 것은 수천 마리의 바닷새들이 지상으로 내려와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렸다는 신문 기사를 보고난 뒤였다. 당시 그레이스 켈리의 <마니>(1964) 캐스팅에 난항을 겪고 있던 (모나코의 왕세자비였던 켈리는 국민들의 저항에 끝내 출연을 거절하고 말았다.) 히치콕은 주저하지 않고 <새>의 시나리오 작업에 착수했다. 새들이 아무 이유 없이 사람을 공격한다는 원작 소설의 설정과 새들에게 눈동자를 쪼여 죽은 시체를 발견하는 장면, 새들의 최후의 공격에 대비해 집안에 바리케이드를 치는 등의 특정 장면을 그대로 취하는 한편 히치콕은 영화의 배경이 되는 보데가 만을 직접 찾아 원형의 호수와 초등학교 건물을 목격하고는 이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적극 활용하여 이야기에 사실성을 부여했다.  

멜라니 다니엘스(티피 헤드런, 히치콕은 헤드런의 딸 멜라니 그리피스의 이름을 따와 캐릭터 이름을 지었다.)는 신문 사주의 딸이지만 제 멋대로인 성격으로 유명하다. 그런 그녀가 샌프란시스코의 새 가게에서 젊은 변호사 미치 브레너(로드 테일러)를 만나 매력을 느낀다. 미치와의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 멜라니는 잉꼬 한 쌍을 선물로 준비해 그가 사는 보데가 만으로 향한다. 미치가 없는 동안 그의 집에 잠입해 잉꼬를 두고 오는데 성공하지만 돌아가는 모터보트 안에서 멜라니는 갈매기의 공격을 받고 이마를 다치는 사고를 당한다. 선착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미치는 멜라니의 상처를 치료해주고 그 둘은 서로에게 호감을 느낀다. 다음날 미치의 어린 여동생의 생일을 기념하는 야외 파티장에서 새들이 아이들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많은 평론가들이 히치콕의 영화를 일러 ‘스크루볼 코미디’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확실히 히치콕의 영화는 스릴러 혹은 미스터리와 같은 장르적 구조를 취하고 있지만 남녀의 결합을 이어주는 과정에서 두드러지는 까닭에 이야기의 측면에서는 스크루볼 코미디인 경우가 대다수다. 하여 히치콕의 라이벌로 평가받는 프랑스의 앙리 조르주 클루조 영화와 비교해도 히치콕의 서스펜스는 거실의 벽난로처럼 온기 있는 영화로 인식된다. 다만 <새>의 경우는 멜라니와 미치 간의 스크루볼 코미디로 시작해 새가 사람을 공격하는 공포로 발전한다는 점에서 다소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예컨대, 새의 소리를 제외하고 음악이 부재되어 있는 연출은 (크레딧에 올라 있는 버나드 허먼의 역할은 ‘music by’가 아닌 ‘sound consult’이다.) 관객들로 하여금 영화 전체적으로 을씨년스러운 기운을 체험토록 한다.

평화로운 일상에 새의 소리로 급작스럽게 균열을 가하는 음악적 모티브는 극중 새들의 공격에 설명 가능한 이유가 없다는 데서 비롯된다. 실제로 히치콕이 <새>의 시나리오 작업에서 끝까지 신경을 썼던 부분이 바로 새의 공격 이유에 대한 확실한 설명보다는 불친절한 모호함이었다. 대신 히치콕은 새와 사람의 관계를 역전시킨 설정을 통해 마음의 철창(새장)에 갇힌 인간관계의 묘사를 강화하는데 더 신경을 썼다. 특히 미치를 가운데 두고 ‘소유’에 대한 집착을 강하게 보여주는 미치의 어머니 리디아(제시카 탠디)와 애니 헤이워스(수잔 플레셔트), 멜라니의 신경전은 극 중 이야기의 중요한 한 축을 이룬다. (흥미롭게도 미치는 사람을 철창으로 보내는 변호사를 직업으로 삼고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극 중 인물들의 감정 상태는 다름 아닌 ‘결핍’이다. 리디아는 남편을 잃고 아들에게 의지하는 과부 신세이고, 멜라니는 자신의 어머니가 아버지를 버리고 다른 남자와 결혼하여 그녀를 떠난 지 오래다. 애니도 예외는 아니어서 미치와는 한때 연인 사이였지만 리디아의 질투로 지금은 멀찍이서 미치를 바라보는 상태다. 다시 말해, 그런 결핍이 더욱 소유에 대한 욕구를 강하게 부채질하고 있다는 점을 영화는 강조한다. 그럼으로써 히치콕은 새가 사람을 공격하는 이유에 대해 은근히 암시한다. 새장 속에 새를 가두는 행위로 상징되는 인간관계의 결핍에서 비롯된 소유욕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새>는 후에 수많은 영화에서 인용되고 패러디 되었다. 그 중 조지 로메로의 <살아난 시체들의 밤>(1968)이나 나이트 M.샤말란의 <싸인>(2002)은 <새>의 설정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면을 가장 잘 활용한 영화로 평가 받는다. 집안에 갇힌 주인공들이 각각 좀비와 외계인의 공격을 받는다는 설정 외에도 ‘결핍’의 테마, 흑인을 좀비 취급하는 백인의 우월주의(<살아난 시체들의 밤>), 부인의 죽음 이후 세상에 대한 희망을 잃은 신부 캐릭터 (<싸인>) 등 창조적으로 <새>를 계승한 것이다. 그렇게 히치콕의 모험적인 프로젝트였던 <새>는 개봉 당시 흥행 성공은 물론 후대 영화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며 고전의 지위에 올랐다.   

* 본문에 언급된 히치콕의 말은 패트릭 맥길리건이 쓰고 윤철희가 옮긴 을유문화사의 <히치콕>에서 인용한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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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시네바캉스 서울
(2011.7.28~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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