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 박정범 감독

지난 5월 23일 인디스페이스에서 <산다>의 GV를 진행하였습니다. 영화를 연출한 박정범 감독님은 물론 <스물>의 이병헌 감독님도 응원차 함께 해주셨습니다. 그날의 대화 내용이 인디스페이스 블로그에 올라와 있더라고요. 이를 여기에 옮깁니다.

허남웅 평론가(이하 ‘허’) 이병헌 감독님은 <산다> 어떻게 보셨나요?
이병헌 감독(이하 ‘이’) 이번에 2번째 보는 거고요. 시사회 때 보고 지금 또 봤습니다. <산다>라는 제목 자체가 <무산일기> 영화에 갖다 붙여도 무관할 것 같아요. 살아낸다는 것에 대해서 치열한 감정을 느꼈고 영화를 보고 나서 온 몸에 상처가 난 듯한 느낌이었어요. 보기만 해도 춥잖아요.

 <산다>라는 제목이 참 간략하지만 관객 분들은 앞뒤에 뭔가 덧붙이고 싶을 거예요. 처음부터 <산다>라는 제목을 생각하신 건지, 그리고 이 시나리오가 50고까지 갔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어떤 부분에서 그렇게 길게 갈 수 밖에 없었는지 설명 부탁 드립니다.
박정범 감독(이하 ‘박’)  같이 사는 배우 친구가 자살을 하고 나서 그 친구를 어떻게 떠나 보내야 하는지 생각했어요. 그 때 공황장애가 와서, 왜 그렇게 된 건지 스스로 찾는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해서 만든 거예요. 원래 이야기는 자살하려고 하는 형을 말리는 동생의 이야기였습니다. 쓰다 보니 계속 바뀌는 거죠. ‘산다는 게 뭐지’라는 생각으로 가서 <산다>가 됐고요. 정확하게 50고는 아닌데 50번 정도 고쳤어요. 제목도 바뀌고. 그런데 주제는 비슷했어요. ‘산다’는 게 뭔지 생각해보는. 그러다 보니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으려고 해서 이렇게 길어진 것 같아요.

 이 영화가 지난 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했을 때는 3시간 15분이었잖아요, 지금은 줄어든 버전이죠. 물리적 시간이 중요할 수밖에 없는 게, ‘산다’는 것이 이 영화에서 나왔듯이 고통의 시간이 아닐까 하거든요. 감독님 입장에서는 상영 시간이 중요했을 것 같아요. 어떻게 줄이는데 초점을 맞추셨는지 궁금합니다.
 영화를 찍기 전에 이미 쓴 시나리오가 너무 긴 이야기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이게 만들어지는 게 가능할까 생각했어요. 몇 년간 기다린 이유는 투자사가 없어서고요. 다행히 전주 영화제에서 만들 수 있게 해주었어요. 그 기간 동안 계속 고친 거죠. 그렇다고 시간을 줄여서 고치겠다는 생각은 안 했어요. 왜냐면 앞으로 이렇게 영화를 찍을 기회가 없다는 걸 저 역시 알고 있었어요. 원 영화는 5시간 정도 나오는데 그 정도 길이 영화를 평생 한 번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몇 년간 고치면서 인물이 각자 살아남고 살아가려고 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 거죠. 이 욕심이 사실 잘못된 거였어요. 아, 이게 과유불급이구나, 10년 후 감독판 DVD로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합니다.

이병헌 감독님은 연출자 입장에서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나요?
 박정범 감독님 영화에는 워낙 그런 장면들이 많으니까요. 저는 가볍게 엔딩 부분에 대해 말씀을 듣고 싶어요. 두 가지 설정이 있었던 것 같아요. 가로등하고 문을 마지막에 달아두는 부분이요. 저는 가로등에서 감독님이 어떤 이야기로 마무리를 지으려고 하는지 대충은 알겠는데 문은 자기 돈 받았으니까 영화적으로 사건을 마무리하려고 하신 건지, 그 지점이 궁금했어요.
  많은 사람들이 가로등에서 끝내지 왜 또 에필로그를 달아줬냐는 얘기를 꽤 하셨어요. 문을 다는 것을 앞으로 보내는 편집을 얘기하기도 하셨고요. 3시간 버전에서의 앞뒤 구조는 누군가의 문을 떼서 자기의 행복을 찾으려고 하지만 남의 행복을 빼앗아서 자신의 행복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이 이 남자의 며칠간의 기록이라고 생각했고 그 사이에 ‘산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가로등은 사람을 위해 다는 거잖아요. 빛을 달아 길이 보이게 하는 것이 저에겐 은유적인 느낌이었고, 그 길에 빛을 비추고 나서 깨달은 거죠. 내가 하나를 지켜주기 위해서 이런 일을 하다 보니 반성을 하게 되는 겁니다. 자기가 문을 뗀 기억이 난 거죠. ‘그 친구는 죽겠구나’라는 생각을 해서 문을 달아주게 되는 거죠. 저는 그런 순간이 기적이라고 생각해요. 스스로가 잘못을 반성하는 것. 그 지점이 아주 중요하고 이 영화의 에필로그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 영화가 주인공이 정철이지만 명훈이나 수연이라든지 보면서 마음 아파하고 감정 이입할 수 있는 캐릭터가 많아 보이는데요, 어떤 부분에서 눈물이 났고 어떤 인물에게 감정이입이 됐는지 이병헌 감독님께 궁금하네요.
 저는 익숙한 감정이 하나에게 있었어요. 아빠라고 잘못 알고 찾아가는 지점에서 정철이와 하나의 뒷모습. 그리고 ‘삼촌 가자’ 했을 때의 목소리가 연기가 아닌 것 같았고 저 감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제가 딸이 있어서 그런지 영화를 두 번 보면서 그 장면에서 다 울었어요.

 그리고 하나에게 귀를 막으라고 계속 하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철이 욕하는 목소리가 들렸을 것 같은데, 현장에서는 하나를 연기한 배우를 어떻게 설득했는지 궁금합니다.
 대본에는 귀 막으라는 대사가 없었는데, 촬영하면서 이 친구가 이 영화를 알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아이가 연기를 하지만 정신적으로 상처를 받을까봐. 그래서 영화 내용은 설명 안하고, ‘지금 너의 아버지가 아프다고 생각해봐’ 하면서 다른 내용으로 장면을 연기하게 시켰어요. 폭력적인 장면에서도 귀를 막으라고 하는 게 툭 튀어나온 말이었어요. 귀 막으라는 건 제가 조카가 다섯 있는데 안 좋은 것은 안 보여주고 싶잖아요. 그런 감정이었죠.

 <산다> 대부분의 배우들이 눈에 익지 않은 반면 상대적으로 박희본 배우는 익숙한 배우에요. 튄다는 느낌인데 어떤 목적으로 박희본 배우님을 캐스팅하신 건지 궁금하네요.
 박희본 배우하고 이은우 배우는 많은 연기 경험이 있는 분이죠. 외에 배우 분들도 독립영화에 많이 출연했던 분들입니다. 오디션을 안 보고 뽑는 분들은 그 분들의 작품을 다 봤기 때문인 거죠. ‘이 영화에 맞겠다’해서 뽑았어요. 그리고 희본 씨가 사실은 시트콤 류의 연기들을 많이 했는데 그렇지 않은 모습이 있어요. 제가 생각하는 희본 씨의 이미지는 차가움이었어요. 차가움과 발랄함의 이중성이 이 영화에 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아버지와의 관계에 있어서. 현장에서도 편안하게 연기하셔서 NG가 안 난 배우들 중 한 분이었어요.

 NG는 주로 어느 부분에서 나나요?
 감독의 욕심이죠. 제 머릿속으로 그린 그림이 있잖아요. 현장 가면 그 그림대로 나오는 경우는 없고 그 갭을 줄여나가는데 어느 선에서 포기해야 할지 모르는 거죠. 근접한 것이 이건가 하고 테이크를 많이 가게 돼요. 사실 그렇게 한 20-30테이크 정도 가다 보면 모두가 쓰러질 것 같은 순간이 와요. 그것을 극복하면 이상한 게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거기까지 갔던 컷들이 몇 개 있어요. 진심으로 죄송하고 감사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영화 끝나고 생각을 해보니 이런 분들을 다시 못 만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모든 감독님들이 영화를 찍고 나서 드는 감정인 것 같아요. 이병헌 감독님이 보기에 박정범 감독님의 연기는 어떤가요?
 저는 배우로서도 감독님을 굉장히 좋아하는데요. 곡괭이질과 도끼질을 너무 잘하시잖아요. 뭐죠? (웃음) 밝혀주세요.
 단편 영화를 혼자 찍을 때, 아시겠지만 독립영화는 혼자 다해야 하잖아요. 적으면 1-2달, 길면 3-4달 막노동을 많이 했어요. 처음에 기술이 없으니까 닥치는 대로 가서 하는 거예요. 어느 날은 하루 종일 청소만 하고 짐만 나르고 이러면서 배우는 거죠. 문짝 들고 가는 건 자신 있는 게 주상복합 아파트들은 콘크리트가 아니라 갖다가 끼우는 거거든요. 그 일을 꽤 했었어요. 그래서 지고 걷는 것을 잘 할 줄 압니다. (웃음)
 그런 것들에 있어서 영화의 깊이가 달라지는 것 같아요. 직접 경험해 보시고 찍어서 영화의 깊이 차이가 나는 것 같아요.

감독님은 직접 연기를 하면서 본인이 출연한 매 장면을 판단하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현장에서 객관화할 수 있는 과정이 있었나요?
  제가 ‘OK’를 말로 하긴 하지만 이미 현장의 스태프와 배우들이 직관적으로 그 장면이 찍히는 걸 보면 어느 정도 수준에서 OK가 나오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암묵적 동의가 계속 이뤄지는 거죠. 제가 연기하면서 OK가 아닌데 너무 힘들어서 OK를 주고 넘어간 게 몇 개 있어요. 부화기 던지고 알을 깨는 장면 있잖아요. 보시면 제가 대사를 잘못해요. 버벅거리면서 말을 돌리는데 다시 할 자신이 없었어요. 그리고 때릴 때는 진짜 때리잖아요. 연기를 하고 나면 컷하고 나서 심장이 막 뛰어요, 너무 힘들어서. 그 장면이랑 누나를 방에 가두는 장면. 이 두 장면들이 테이크를 3-4번 밖에 못 갔어요. 다른 장면들은 20번 정도 갔거든요. 이미 ‘컷’하고 촬영감독을 봤는데 정직한 표정으로 날 보고 있으면 다시 가라는 얘깁니다. (웃음) 그리고 씩 웃고 있으면 정말 좋구나, 그런 거죠. 스태프들도 알아요. 배우들도 자기가 모자라면 다시 가자고 하고, 그런 가족적인 분위기의 현장이었습니다.

관객 강사장 캐릭터를 실제 아버님께서 연기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여기 나오는 캐릭터들이 다들 복합적인 감정을 가졌는데 강사장도 마찬가지로 비전문배우가 연기하기엔 어려운 감정들을 표현해야 했던 것 같아요. 아버지를 캐스팅할 때 어떤 계기로 캐스팅하셨고 디렉팅을 어떻게 하셨는지 궁금해요.
 제 단편영화 때부터 같이 하셨어요. <무산일기> 때도요. 저희 아버지가 강원도 된장공장에서 혼자 일을 해요. 전문 배우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외모가 영화적으로 맞겠다고 생각해서 같이했습니다. <산다>에서는 의도적으로 분량이 많은 것을 해보고 싶었어요. 왜냐면 현장에 아버지가 있으면 여러모로 심리적인 안정감이 있거든요. 그리고 아버지랑 같이 영화를 만드는 게 소중하고 가치 있는 기록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앞으로도 짧은 연기라도 같이 연기하는 장면을 넣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병헌 감독님은 배우들을 캐스팅할 때 연기와 이미지 중에 어떤 점을 더 우선에 두시나요? <스물>이나 <힘내세요 병헌씨>에서는 어땠나요?
 <힘내세요 병헌씨>와 <스물>은 좀 달랐던 것 같아요. <힘내세요 병헌씨> 때는 제가 뭘 몰라서 다 만들 수 있을 거라는 이상한 자신감 때문에, 연기 말고 이미지만 봤던 것 같아요. ‘되게 개성 있다, 저 인물을 모셔다가 내가 원하는 연기 톤은 내가 입히면 되니까’ 라는 어리석은 생각으로 접근을 했다가 고생한 기억이 있어요. (웃음) <스물> 때는 완전히 연기 쪽으로 오디션을 많이 봤어요. 정치적으로 엮인 것도 있긴 있었지만. (웃음) 변해가는 것 같아요, 작품 할 때마다.

 이병헌 감독님, 본인의 영화는 아니지만 좋아하는 감독의 영화를 이야기를 함께 하셨는데 이 시간 어떠셨나요?
 저는 관객과의 대화에서 관객의 역할이었어요. (웃음) 그 뒤에 한 시간 반짜리 영화가 속편으로 개봉하면 어떨까, 기대가 됩니다. 여러분들이 이 영화 많이 봐주시면 빨리 개봉할 수 있을 거예요.

 이 영화 관련해서 GV, 인터뷰 등으로 바쁘게 보내고 계신데 촬영 당시보다 3kg 찌셨대요. 지금이 영화 찍을 때보다는 상대적으로 편할 수 있는, 그렇지만 예민한 시기인 것도 같고요. 앞으로의 계획은 어떠신가요?
 글 쓰는 작업을 시작하고 있고요. 매년 새로운 영화로 찾아 뵀으면 좋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 있습니다. 근데 그렇게 생각하면 4-5년 걸리더라고요. (웃음) 저는 우울한 사회 문제를 다루는 것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에요. 이게 직업이니까 꾸준히 열심히 잘 찍겠습니다.

<산다> GV
(2015.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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