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재기의 사회학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재기로 출판계가 시끄럽다. 대형 출판사 중 한 곳인 ‘자음과 모음’의 사재기가 사실로 확인되면서 그 후폭풍이 거세게 일고 있는 것이다. 사실 사재기 행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책에 대한 독자의 관심이 줄어들고 출판사는 많아지면서 사재기를 통해 베스트셀러 만드는 건 그 어느 때보다 정교하고 조직적으로 이뤄지는 추세다. 모 시사 프로그램이 고발해 이슈가 됐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일부 출판사들의 사재기 행태가 완전히 뿌리 뽑힐 것으로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재기를 통한 판매 효과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사재기의 1차 목적은 순위 끌어올리기에 있다. 오프라인 대형 서점과 온라인 대형 서점이 타깃이다. 순위에 오르는 순간, 일정 정도 판매량이 보장된다. 흔히 이 순위를 보고 독자가 책을 구입한다고 알고 있지만 그 독자층은 단순히 개인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동네 서점과 같은 중소형 서점이나 지방의 서점이 온·오프 대형 서점의 베스트셀러 순위를 보고 물량을 주문하는 경우가 많다. 그뿐인가. 요즘에는 사원의 문화 역량을 높이겠다며 대기업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을 단체로 주문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시장의 파이가 의외로 크다.

이는 책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채널이 베스트셀러 순위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결과다. 물론 신문, 잡지와 같은 저널의 도서 면에서도 신작 정보를 얻을 수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들 매체가 다루는 신작 정보의 수준은 베스트셀러 순위와 비교해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신작 중에서도 해외 베스트셀러와 같이 크게 화제를 모을 만한 작품, 누구나 알 만한 유명인의 자서전 혹은 에세이, 시류에 편승한 얄팍한 자기 계발서 등 다양한 소재나 취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의미 부여에만 집착한 소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브라운관에서 도서 관련 프로그램이 전멸한 이유 또한 이와 무관치 않다. 혹자는 수많은 채널을 보유한 TV에서 책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단 한 편도 없다는 사실에 개탄한다. 역으로 보자면 그만큼 시청자를 끌어들일 만한 구성을 하지 못했다는 얘기도 된다. 얼마 전 종영한 <TV, 책을 말하다>(KBS1)의 경우, 이슈가 되는 (혹은 될 만한) 책을 골라 전문가들이 이야기하는 방식은 신선하지만 너무 책의 선정을 교양에만 초점을 맞추었고, 토론하는 방식이 무겁다 보니 시청자들을 폭넓게 아우르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는 책이 반드시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사람들의 편견을 반영한다. 그러다보니 예비 독자 들이 책을 펼치는 데 방해로 작용하는 것인데 책은 교양이기 이전 오락이다. 바로 그와 같은 재미가 책을 선정하고 평가하는 기준에서 배제되거나 뒤로 밀려나 있다 보니 특정 계층만이 향유하는 문화처럼 왜곡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TV, 책을 말하다>의 종영이 정당하다는 논리로 받아들이지는 마시길. 다만 책과 관련한 모든 프로그램이 이처럼 경직된 방식이다 보니, 심지어는 예능을 앞세워 책을 소개한 <달빛 프린스>(KBS2)마저 조기 종영하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보는 것이다. 오히려 책의 선정이 다채롭고 작가와의 인터뷰가 격의 없이 진행되는 <이동진의 빨간 책방>(팟캐스트)이 큰 인기를 모으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는 예사롭지 않다(관계자의 전언에 따르면, 여기서 소개되는 책의 경우, 판매 부수가 기본적으로 1천 부 정도는 증가한다고 한다).

출판사나 독자가 베스트셀러 순위에 목을 매는 현상은 이와 같은 환경에서 기인한다. 채널이 한정되다 보니 소개하는 책 역시 적을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출판사 간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힐 수밖에 없다. 자연스럽게 규모가 큰 출판사가 소개할 기회를 더 잡게 되고 그것이 판매 부수의 증가로, 베스트셀러의 순위 진입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이런 과정 속에서 사재기는 횡행할 수밖에 없고 일부 출판사들은 그것이 문제인 줄 뻔히 알면서도 유혹을 뿌리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그러니 여기에 ‘취향’이라고 할 만한 것이 들어갈 자리는 그 어디에도 없다. 이와 관련해서 출판사 ‘북스피어’의 김홍민 대표에게서 꽤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담론에서 소외되길 두려워해 남들이 찾는 책을 사는 것 역시 취향”이라는 거다. “예전에는 취향 없는 독자가 생각 없이 책을 구입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사재기 사태를 보니, 다른 사람이 사는 책을 나도 사고 싶다는 바람도 취향에서 발현한 결과다.” 다만, “그 취향이 대단히 공허하다는 점에서 놀랐다”고 덧붙여 말한다.

흔히 ‘마음의 양식’이라고 부르는 책을 이제는 유행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베스트셀러 위주로 소비해 실속이 없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그래서 사재기는 일차적으로 출판사의 문제이지만 취향의 획일화로 사재기에 방관(?)하는 독자도 일부 책임을 면할 길이 없어 보인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이 아무리 널리 퍼져 있어도 하루에 1백여 종 이상씩 쏟아지는 신작의 정보와 내용을 100% 담을 수는 없는 법. 그럴진대 조금의 관심과 발품이 귀찮아 베스트셀러 순위에만 목을 매는 현상이 그리 올바르게 보이지 않는 것이다.  

사실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르는 작품들이 모두 영양가가 있는 것은 아니다. 베스트셀러 순위에 단골처럼 오르는 자기 계발서나 실용서 중 상당수는 시류에 편승한 것들이 많아 독자가 책의 진가를 확인하기에는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 베스트셀러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책 중 가장 우수한 것들의 모둠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 취향대로 책을 고르고 오랜 독자로 남는 것이 이상적인 형태의 독서 문화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리고 그런 독자가 실제로 존재하기도 한다.

다양한 매체의 발달로 책을 읽는 사람이 줄어들어 출판 시장이 불황이라지만 여전히 새로 문을 여는 출판사가 존재하거니와 개중에는 주력 분야에 집중하는 곳들도 많아져 책의 종류는 그만큼 다양해지고 있다. 하지만 최근 보도를 보면 3만5천여 개 출판사 가운데 90% 이상이 단 한 권의 책도 발행하지 못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지난해부터 신작 발행 부수가 감소하고 있다는 건 그만큼 독서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전제한다. 그 때문에 베스트셀러 순위는 더욱 압도적인 위력을 갖게 되고 그럼으로써 출판사가 사재기를 끊을 수 없는 배경이 된다.

그렇다고 베스트셀러가 온전히 좋은 책을 담보하는 것도 아니다. 도리어 순위만 믿고 책을 구입했다가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 그다음부터 아예 책을 찾지 않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 출판사 관계자의 분석이다. 이는 베스트셀러 순위를 보고 책을 구입한 독자가 일회성으로 소비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그렇기 때문에 베스트셀러 순위를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그것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그렇게 높아 보이지 않는다. 일례로, 모 대형 서점은 이번 사재기 여파로 분야별로 나뉘어 있던 순위를 1위부터 20위까지 통합하는 형태로 운영할지에 대해 논의한다는 것이다.

사재기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그에 대한 해결방안을 모색한다는 것,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것조차 잘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의 발 빠른 사후 대책은 그 자체로 환영할 만하다. 하지만 이 대형서점의 사재기 파동 이후의 후속 조치는 표적을 잘못 정한 채 활시위를 당기고 있다는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다. 언급한 통합 베스트셀러 순위는 책의 다양성을 훼손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가령, 문학이 힘을 받지 못하는 작금에 처세술서의 판매량과 소설의 판매량은 그 차이가 클 수밖에 없다. 소설 판매 순위 3위가 처세술서 10위의 책의 판매량에도 미치지 못한다면 안 그래도 베스트셀러 순위에 목을 매는 지금의 출판 현실에서 문학은 더욱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번 사재기 파동에 대한 해결책 중 하나가 바로 출판사들의 자정 노력이다. 다만 사재기가 일부 출판사의 행태임을 감안할 때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기보다는 두루뭉술한 수사에 더 가깝다. 관계자의 얘기를 들어보면, 그보다는 베스트셀러 분야 순위는 몰라도 종합 순위 같은 경우는 판매량 외에는 별 의미가 없어 폐지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 외에 책의 좋고 나쁨에 대한 평가가 자유로운 채널의 등장, 출판사와 독자 간의 더욱 공고한 커뮤니티의 확립 등 독자가 책을 선택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될 만한 방법은 많다.

이런 개선 방안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취향’이다. 독자가 자신의 취향을 발견하고 이에 따라 책을 고를 수 있을 때 만족도도 올라가고 비로소 우리의 출판 환경은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있다. 베스트셀러 순위와 같은 유행에 편승하는 건 사람들의 취향마저 획일화한다. 사재기의 가장 큰 부작용이 이와 같은 교양의 획일화가 아니던가. 사람이 책을 만들고 책이 사람을 만들 듯이 취향이 독서 환경을 만들고 독서 환경이 취향을 좌우한다. 이번 사재기 사태는 베스트셀러에 목을 매는 욕망의 실체가 얼마나 공허한지 잘 보여준 사건이었다. 취향이 살아야 우리의 독서 환경 역시 살아날 수 있다.

(이 글은 북스피어 김홍민 대표의 도움을 얻어 작성하였습니다.)

ARENA
2013년 8월호

답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