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비> 믿습니까,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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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상호 감독은 <사이비>로 벌써부터 뿌듯한 감정을 경험했다. 시체스국제영화제에서 애니메이션 부문의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 영화제에 직접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트로피는 전달받아 <돼지의 왕>(2011) 당시 수상했던 트로피 옆에 놓아둔 것이다.

그처럼 <사이비>는 국내 개봉 전 해외영화제 수상으로 먼저 관심을 모았다. 토론토영화제에서 소개됐고 시체스영화제에서는 히데아키 아노의 <에반게리온 Q>와 마사히로 히로다의 <드래곤볼Z> 등 쟁쟁한 작품들과의 경쟁에서 상을 수상했으며 미국 최고 권위의 영화연구소에서 주최하는 AFI영화제의 경쟁 섹션인 New Auteur 부문에서 9편의 작품 중 애니메이션으로는 유일하게 초청되기도 했다.

<사이비>의 어떤 점이 해외 영화제 관계자들의 마음을 움직인 걸까. 아직은 해외에 본격적으로 소개가 된 것이 아니기에 소수의 반응만 살필 수 있지만 연상호 감독의 말로는 국내에서 쏟아지는 의견과 해외에서 받는 평이 “거의 차이가 없다.”고 한다. 장편 데뷔작인 <돼지의 왕>에서도 증명된 바, 한국에서 벌어지는 부조리한 상황을 가져오되 그 안에서 두문불출하고 결국에 폭발하는 인간들의 극단적인 감정과 행동이 보편으로 수렴되기에 해외에서도 주목하는 것일 테다.

우리 시대의 초상?  

극소수의 반응 중 연상호 감독이 가장 인상 깊게 본 평가 중 하나는 <사이비>의 오프닝에 대한 것이다. 목사 성철우(오정세)가 꼬리를 흔들며 자신에게 다가온 개를 쓰다듬어주고 있는데 장로 최경석(권해효)이 몽둥이로 개의 머리를 쳐 죽이는 장면이다. 그때 성철우는 충격을 받지만 이에 대해 아무런 항의도 못하다. 도리어 어깨동무를 하는 최경석을 따라 그의 얘기를 들으며 앞선 사건을 방관하는 양 구는 것이다.  

트위치 필름의 피어스 콘란은 이 오프닝을 자세히 묘사하며 “이 영화가 보여줄 이야기의 성격을 간단하지만 직접적이면서 매섭고 신랄하게 압축한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덧붙이길, “극 중 인물들은 그들 주변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사건에 맞서거나 그에 대한 책임감을 보여주는 대신 무관심으로 일관한다. 우리 또한 그런 잘못을 저지르고는 하는데 <사이비>의 오프닝은 그런 사실을 강렬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피어스 콘란의 의견에 동의하지만 오프닝 이후 펼쳐지는 극 중 이야기는 한국인인 우리에게는 좀 더 낯익을 수밖에 없는 상대적인 특수성을 갖는다. 오프닝에서 보이듯 최경석은 장로가 아니다. 그는 수몰예정지역인 마을에 교회를 차려 주민들이 받은 거액의 보상금을 헌금 명목으로 가로챌 속셈이다. 그러니까, 최경석은 그냥 사기꾼일 뿐이다. 물과 관련한 대형공사로 예정된 참극(4대강의 비극?), 그 뒤에서 이를 조정하는 ‘사이비’ 장로(서울을 하느님께 봉헌하겠습니다!)를 일련의 키워드로 삼으면 어렵지 않게 지난 5년간의 우리, 아니 그(들)의 초상이 그려진다.

하지만 <사이비>는 단순히 종교를 비판하고 전직 대통령의 특정 행각을 고발하려는 게 아니다. 그에 대한 비판의식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영화가 겨냥하는 지점은 좀 더 거시적이다. <사이비>는 그들(의 행동)이 아니라 그들의 거짓에 동조했던 이들이 보여준 기이할 정도의 믿음, 그들의 비상식에 동조했던 것은 아니지만 반대하는 것 그 자체만으로 선이라 믿었던 이들의 종교적일 정도의 신념을 모두 포함한 우리 모두에 대한 아주 잔인한 보고서다. 그래서 <사이비>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 믿는 것은 진짜입니까?’    

믿습니까, 여러분?

<창>(2012)의 개봉 당시 연상호 감독을 만나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연상호 감독은 <사이비> 작업에 한창이었는데 영화의 주제에 대해 이런 얘기를 들려줬다. “‘믿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얘기다. 한국에서는 사회 현상이나 자기만의 사회 정의에 대한 모든 믿음을 종교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럼 믿음을 깰 수 있는 이야기다. 당신이 믿고 있는 게 사이비 종교를 믿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에 대해 말하는 작품이다.”  

그의 얘기를 가이드 삼는다면, <사이비>에서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할 인물은 김민철(양익준)이다. 김민철은 이 마을에서 유일하게 최경석의 실체를 알고 있는 인물이다. 술에 취해 최경석에게 시비를 걸었다가 몽둥이로 머리를 얻어맞은 개처럼 김민철 역시 일격을 당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의 비극에 누구 하나 주목하지 않았던 것처럼 최경석의 악행에 대한 김민철의 고발에도 마을 주민, 심지어 경찰도 꿈쩍하지 않는다. 가족에게 폭력을 일삼고 심지어 딸의 대학등록금을 도박으로 탕진하는 등 아무리 그가 진실을 말한다고 해도 믿으려 들지 않는 건 그가 인간 말종인 까닭이다.

이를 두고, 시네마 엑시스(www.cinemaaxis.com)의 코트니 스몰은 “애니메이션 버전의 <온리 갓 포기브스>(2013)라 할 만하다. 두 작품 속 영웅들은 실제로 영웅적이지는 않다. 의심의 여지없이 그들은 주변 모두에게 그저 비열한일 뿐이다.” 토론토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인 지오바나 풀비는 여기서 좀 더 나아간 해석을 보여준다. “진실을 추구할수록 그 자신의 비참한 최후를 재촉하는 김민철의 초상일 뿐 아니라 영화는 이를 통해 통렬한 사회적 논쟁을 유발한다.”

최경석도 그렇지만 김민철도 악 그 자체다. 그런데 악이 발현되는 환경에는 한국이라는 특수성이 반영되어 있다. 툭하면 폭력을 앞세우는 김민철의 성향은 그의 회개를 바라는 부인과 딸로 하여금 기적을 부르짖는 최경석의 사이비 놀음에 쉽게 넘어가게 만드는 환경을 제공한다. 여기에는 이성과 논리가 들어갈 자리가 없다. 고통이 워낙 크기에 어떻게 해서든 그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바람만이 일방적으로 발현된다. 최경석은 그런 심리를 이용해 쉽게 잇속을 챙길 뿐. 그러니 최경석이 악이라는 진실을 김민철이 폭로한다고 한들 그것이 정의로 귀결될 수는 없다.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 김민철이 부르짖는 진실은 맹목적으로 매달리는 종교와 다르지 않아서 당신이 믿는 게 진짜냐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애니메이션의 왕?

<사이비>는 각자의 믿음을 종교화하는 이들이 부딪히는 괴물과 괴물의 싸움을 전시하면서 결국 이것이 계속해서 괴물을 낳는 환경을 만든다고 말한다. 이는 <돼지의 왕>에서 연상호 감독이 보여줬던 사회적인 문제의식이 좀 더 근원으로 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에 대해 지오바나 풀바는 “데뷔작에서 타협하지 않는 이야기를 선보였던 연상호 감독은 두 번째 작품에서 좀 더 성숙한 감독의 위치에 올랐음을 증명한다.”고 극찬했다.

이번 부산영화제에서 <사이비>를 관람한 HAPS(www.busanhaps.com)의 옌 소탐 역시 최상급의 수식으로 연상호 감독에게 지지를 보낸다. “믿음을 종교화하는 인간 감정에 도발을 가한다.”고 이 영화에 대해 전제한 후 “그는 계속해서 독특한 스타일과 자기 목소리를 개척한다. 이와 같은 재능은 정말 보기 드문 것이다. 관객들이 자신들이 보고 있는 게 애니메이션이라는 사실을 잊게 만든다.”고 호평을 쏟아낸 것이다.  

확실히 연상호 감독은 우리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애니메이션에 대한 선입견을 완전히 깨부순다. 애니메이션이라고 하면 의례히 픽사나 미야자키 하야오의 지브리를 즉각적으로 떠올리는 영화 팬들에게 애니메이션은 그저 순수한 이야기만 하는 매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해 보인다. <돼지의 왕> 당시 한국 최초의 ‘잔혹’ 애니메이션으로 악명(?)을 높였던 그의 명성은 <사이비>에서도 여전하다.

선이 굵은 작화와 의도적으로 분위기를 어둡게 가져가는 채색은 폭력 구조가 빚은 사회의 폐해를 표현하기에 안성맞춤은 형태다. 그와 같은 프레임 안에서 연상호 감독은 서로 아귀다툼을 벌이는 이 사회의 고착화된 비극을 갈무리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우리가 사는 이 세계 자체가 지옥에 다름 아님을 설득해낸다. 특히나 인정하고 싶지 않은 우리의 치부를 대놓고 응시하며 관객을 도발하고 불편하게 만드는 감독의 시선은 애니메이션사(史)를 훑어봐도 드문 사례다. 그의 작품이 한국에서만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유수의 영화제에서 연일 수상 소식을 전해오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얼마 전 연상호 감독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사이비>가 86회 미국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 부문 예비후보의 19편 중 한 편으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알렸다. 최종 후보작에 오르기 위해서는 약 4:1의 경쟁률을 뚫어야 하지만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 2> <슈퍼배드2> <몬스터 대학> <바람이 분다> <모모와 다락방의 수상한 요괴들> 등과 함께 예비후보에 올랐다는 사실만으로도 <사이비>에 대한 해외의 평가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정말 최종 후보에 오를 가능성은 있는 걸까? 최종 후보에 오른다면 수상의 기록도 세울 수 있는 걸까?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아카데미와 같은 이벤트 성의 시상식은 영화의 완성도에 더해 소위 ‘플러스알파’라는 운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이비>가 아카데미 최종 후보에 올라도 이변으로 보일 것 같지는 않다. 이미 그의 오스카 수상을 예상(?)하는 이가 있기 때문이다. 영화사이트 ‘위 드링크 유어 밀크셰이크'(www.wdyms.com)는 <사이비>의 오스카 수상에 대해 이렇게 예측했다. “믿음과 이성과 심지어 사랑에까지 문제 제기를 하는 이 영화는 오스카 애니메이션 부문의 강력한 수상 후보작으로 손색이 없다.” 공신력의 유무를 떠나 그만큼 <사이비>가 남긴 충격은 대단하다.

맥스무비 매거진
2013년 12월호

2 thoughts on “<사이비> 믿습니까, 여러분?”

    1. 안녕하세요 감독님 ^^ 직접 블로그도 방문해주시고 감사합니다. 고생은요 ^^; 그럼요, 링크해도 괜찮습니다. 다음에 뵙게 되면 인사드리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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