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10가지 조건> 제프 대니엘스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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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 대니엘스라는 다큐멘터리 감독이 있다. 이제 고작 <사랑의 10가지 조건>(The 10 Conditions of Love)이라는 단 한 편의 작품을 발표한 그는 초청되는 영화제마다 유명세를 치르는 중이다. 영화적인 완성도가 뛰어나서? <사랑의 10가지 조건>은 잘 만든 영화지만 영화사에 등재될 만큼 뛰어난 완성도를 자랑하는 작품은 아니다. 그렇다면 왜?

<사랑의 10가지 조건>이 세계 최초로 상영된 건 지난 7월 호주 멜버른국제영화제(이하 ‘멜버른영화제’)에서였다. 하지만 이 영화는 상영도 되기 전에 전 세계 뉴스의 중심에 섰다. <사랑의 10가지 조건>이 위구르의 인권운동가 레비야 카디르를 다룬 것으로 알려지자 안 그래도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주장하며 거리투쟁에 나선 위구르에 대해 안 좋은 감정을 품고 있던 중국이 대대적인 방해공작에 나섰기 때문이다.

우선 <사랑의 10가지 조건>을 초청한 멜버른영화제에 앙심을 품은 대규모의 중국 해커 ‘훙커'(紅客)들이 영화제 홈페이지를 공격했다. 해킹을 통해 영화티켓이 모두 매진된 것으로 조작한 것은 물론 메인 화면에 중국 오성홍기를 걸어놓은 것. 또한 멜버른영화제 측이 레비야 카디르를 공식초청하자 영화제에 출품된 중국 감독들까지 나서 보이콧을 선언하며 중국영화가 모두 상영 취소되는 소동까지 벌어졌다.

바로 그 문제의 작품을 만든 제프 대니엘스 감독이 한국을 찾았다. 10월 22일 파주에서 개막한 1회 DMZ다큐멘터리영화제(이하 ‘DMZ영화제’)에 게스트 자격으로 초청된 그를 본지가 단독으로 만났다. 본의 아니게 독점 인터뷰가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한국의 대다수 언론이 제프 대니엘스에 대해 무관심했거나 아예 어떤 인물인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DMZ영화제 측에서 초청되는 영화제마다 중국 정부와 문제(?)를 일으키는 <사랑의 10가지 조건>의 상영을 두고 행여 말썽이 벌어지지 않을까 지나치게 몸을 사려 그의 방한을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은 까닭이다.

인터뷰는 10월 25일 파주출판단지에 위치한 모 호텔의 로비에서 1시간 30분 동안 이뤄졌다. 통역을 거치며 진행된 인터뷰라 많은 대화가 오가지 못했지만 제프 대니엘스는 <사랑의 10가지 조건>을 두고 벌어진 일련의 소동에 대해 성심성의껏 답변에 응해줬다.


허남웅 기자(이하 ‘허’) DMZ영화제에 <사랑의 10가지 조건>이 초청받아 한국에 오게 됐다. 한국 방문은 처음인가?
제프 대니엘스(이하 제프) 한 번도 와 본 적이 없다. 하지만 항상 대도시에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한국의 역사에도 관심이 많다. 오래된 고궁이나 유적을 좋아해 서울의 많은 장소를 돌아봤다. 그중 남대문은 화재로 소실되어 새로 지어진 것이라 아쉬웠다. 나는 뉴욕에서 태어났고 십년 전에 호주로 옮겨 갔는데 호주보다 한국이, 특히 서울 같은 대도시가 내 고향처럼 느껴져 더 편안했다. (웃음)

DMZ영화제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한국의 가장 상징적인 공간에서 열리는 영화제다. <사랑의 10가지 조건> 역시 중국과 위구르의 분쟁을 간접적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이곳에서 상영되는 의미가 남다르다.
제프 실제로 DMZ에도 다녀왔다. 세계적으로 굉장히 드문 장소인데 남한과 북한의 국경지대가 관광지로 변화한 것이 흥미로웠다. 왜 DMZ영화제를 이곳에서 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가 됐다. 그런 맥락에서 내 영화가 여기서 상영된다는 것이 영광스럽고 한국의 관객에게 보여주는 과정에서 경험했던 일련의 일들을 앞으로도 잊지 못할 것 같다.


<사랑의 10가지 조건>은 어떤 영화?


<사랑의 10가지 조건>은 레비야 카디르의 평생에 걸친 여정을 따라가는 영화다. 어떻게 가난을 극복하고 중국에서 일곱 번째로 돈이 많은 부자가 되었는지, 그런 레비야 카디르가 어떻게 중국 정부를 맹렬히 비난하는 위구르의 인권운동가가 되었는지를 기록한다.

위구르는 중국의 서쪽에 위치한 신장 지역을 지칭한다. 이곳에는 엄청난 양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되어 있어 중국이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지역이기도 하다. 바로 이 때문에 레비야 카디르는 위구르인들이 자신들의 땅에서 실업자로 전락했고 문화 또한 박해받고 있다며 전면에 나서 위구르의 인권을 보장해줄 것을 중국 정부에 요청한다.

특히 그녀는 비폭력을 주창하며 위구르의 인권 신장을 위해 노력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평화상 후보에 두 차례나 올랐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중국 감옥에서 6년 동안 수감되기도 했다. 하여 <사랑의 10가지 조건>이 기록하는 레비야 카디르의 파란만장한 삶은 곧 위구르의 자유를 억압하는 중국정부에 대한 투쟁의 역사에 다름 아니다.  

한국 관객들이 제프 대니엘스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는 많지 않다. <사랑의 10가지 조건>의 감독이란 사실과 이 작품으로 인해 멜버른영화제에서 중국과 소동이 있었다는 정도다. 
제프 나는 현재 호주에서 비디오 프로덕션을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고등학교에서 호주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 영화 연출을 하면서 내가 머릿속에 가지고 있었던 생각들이 편집 과정 중에 스크린에 구현되는 것을 보면서 너무 감동을 받았다. 내가 받은 감동을 그대로 똑같이 아이들이 받을 수 있도록 영화연출도 틈틈이 가르치는 중이다. <사랑의 10가지 조건>을 만들면서 내가 느낀 벅찬 감동을 관객에게 전해주기까지 7년이 걸렸는데 학생들을 가르칠 때는 하루면 되니까 그게 너무 좋다.

무언가를 알려준다는 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과 다큐멘터리를 연출하는 것 사이에 어떤 공통점이 존재하는 것 같다.
제프 선생님과 다큐멘터리 감독의 역할 모두 내가 가진 생각과 정보를 남에게 제공해서 감동을 느끼게 만드는 시스템 자체가 동일하다. 그런 이유로 내가 선생님과 다큐멘터리 감독이라는 두 가지 일을 병행하는데 도움이 된다.

<사랑의 10가지 조건>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제프 친구 중 한 명이 중국에 무슬림이 있다고 알려줘서 깜짝 놀랐다. 그 얘기를 듣고 개인적인 호기심에서 조사를 한 4년 정도 했다. 그 과정에서 소수민족인 위구르에 대해 알게 됐는데 마침 9.11이 터져서 무슬림이 적이 되는 상황이었다. 미국 사람들은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전후 상황을 따지지도 않고 어떤 놈이 이런 일을 저질렀는지에만 초점을 맞춰 무슬림을 적으로 돌렸다. 나 역시도 그랬다. 그래서 미국 정부는 사건의 배후로 지목된 오사마 빈 라덴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됐었다. 그때 중국 정부에서 빈 라덴이 중국에 숨어있다는 식으로 정보를 흘렸다. 말이 안 되는 이야기지만 당시 미국이 처한 상황이 극단적이었기 때문에 나 역시도 왜 빈 라덴이 중국에 있을까 의문을 품지 않고 그냥 믿었다.

그게 레비야 카디르 문제를 중국에 유리하게 가져가기 위한 중국 정부의 노림수였나?
제프 정확한 지적이다. <사랑의 10가지 조건>에도 나오지만 중국이 슬쩍 미국에게 테러는 너희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문제도 된다. 우리도 위구르라고 무슬림이 있다. 거기에 오사마 빈 라덴이 있는 것 같다. 이런 식으로 진행이 된 거다. 9.11이 훨씬 지난 후에야 내가 왜 이걸 믿었어야 했나, 왜 한 번도 여기에 대해서 의문을 품지 않았나 하는 회의가 생겼다. 사실 위구르족이 큰 걸 원하는 것도 아니고 다만 최소한의 인권과 독립된 국가로서의 권리를 원하는 건데 중국 정부에게는 위협으로 받아들여진 거다. 그게 미국 정부가 느끼는 테러 위협과 맞먹을 정도였던 거다. 그것이 바로 중국 정부가 9.11을 이용하려 했던 이유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 역시 이용당한 느낌을 받아서 다른 사람들도 이 사실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위구르 문제를 좀 깊이 조사하게 된 거다.

위구르의 실상을 알리기 위한 많은 소재가 있었을 텐데 왜 레비야 카디르를 선택했나?
제프 우리가 위구르에 대해 습득하는 정보의 대부분은 중국의 입장을 대변한 것이다. 중국 정부의 입장이 아니라 위구르의 입장을 대변하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레비야 카디르야 말로 위구르를 대표할만한 가장 적합한 인물이었다.

레비야 카디르를 어떻게 만났나?
제프 영화로 만들기로 결정한 후 4년 동안 미국에서 활동하는 위구르 사람들의 신임을 얻어야 했다. 왜냐면, 보통 그런 식으로 접근했던 사람들이 대개 중국 스파이였기 때문에 나는 그들과 전혀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계속 노력을 했고 결국 위구르인들의 신임을 얻기에 이렀다. 그러다가 레비야 카디르가 중국에서 수감 중 병을 치료하기 위해 가석방 되어 미국에 오게 됐다. 그래서 워싱턴에서 그녀를 직접 만날 수 있었다. 

레비야 카디르는 <사랑의 10가지 조건>의 촬영에 흔쾌히 응했나?
제프 흔쾌히 하겠다고 했다. 레비야 카디르는 굉장히 강한 사람이다. 중국 정부에게, 위구르사람들에게, 숨길 게 없으니 당당하다. 왜 아니겠는가, 레비야 카디르가 하는 일은 올바르다. 그녀의 성격 자체가 숨기거나 돌려 말하지 않고 직선적이다. 다만 레비야 카디르가 나를 믿을까 하는 게 제일 큰 걱정이었다. 레비야 카디르를 대변하면서 어떻게 하면 이 사람을 가장 진실하게 그대로 보여줄 수 있을까, 그게 가장 큰 문제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위구르를 잘 알지 못할뿐더러 아는 것도 중국 정부에서 흘린 정보였기 때문에 나는 사명감을 갖고 이 프로젝트에 임했다.

영화를 보면 미국에 살고 있는 레비야 카디르의 딸 레이는 엄마의 입장에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한다. 딸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은 레비야 카디르의 입장에서는 이를 공개적으로 드러내기가 힘들었을 것 같은데?
제프 그렇다. 가족에 관한 인터뷰를 하면서 가장 힘들어했다. 그녀가 가장 걱정했던 것도 가족의 인터뷰였다. 딸 레이가 엄마의 입장에 동의를 하지 않아서다. 레비야 카디르는 중국에 다섯 명, 미국에 여섯 명의 가족이 있다. 하지만 중국에 있는 그녀의 가족은 아마도 중국의 감옥에 수감된 채 고문을 당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딸 레이는 가족을, 자식을 희생해가면서까지 조국을 위해 투쟁하는 엄마가 이해가 되지 않는 거다. 그런 점 때문에 레비야 카디르는 가족 문제가 공개되는 것에 대해 강하게 반대했다. 그 자신이 위구르를 대표하는데 정작 가족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면 문제가 되지 않을까 염려했다. 

어떻게 설득했나?
제프 인권 활동만 보여주면 안 되겠느냐고 주장한 레비야 카디르에 맞서 당신의 정치적인 활동을 비롯해 인간적인 모습까지 모두 보여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치적인 다큐멘터리 밖에 되지 않는다, 나는 당신을 인간으로 보여주고 싶다, 라고 이야기했다. 당신이 하고 있는 활동에 대해 더 많은 사람이 동의하게 하려면 당신과 어떤 유대감을 가질 수 있어야 하는데 딸과의 관계를 보여주면 사람들이 더 가깝게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영화 끝까지 싸웠다. 관객에게 당신이 굉장한 인물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사실을 보여줘야 위구르 문제에 대해 더 심도 있게 접근할 수 있다고 설득했다. 결국 러프 컷을 보여준 후에야 그녀의 동의를 받아낼 수 있었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위구르를 조사한 지 4년, 레비야 카디르를 만나 영화를 촬영한 지 3년, 결국 <사랑의 10가지 조건>을 만드는데 무려 7년이나 걸렸다. 하지만 영화는 불과 53분에 불과하다. 무슨 문제가 있었나? 혹시 중국 정부로부터 위협을 받은 건 아닌가?
제프 가장 큰 문제는 돈이었다. 특히 <사랑의 10가지 조건>이 첫 번째 작품이어서 제작비를 유치하는 게 가장 어려웠다. 내가 영화 만드는 것에 대해 사람들이 관심도 없었고 방송 관련한 사람들 중에는 괄시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래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번 돈으로 제작비를 충당해 영화를 만들어야 했다. 그 과정에서 호주 정부에 영화 제작비 관련 펀딩 신청을 했는데 TV프로그램 펀딩만 가능하다고 해서 TV로 방영할 수 있는 길이로 만들 수밖에 없었다. 다만 곧 출시되는 DVD는 원래 의도대로 2시간 버전으로 담았다.

극장용 영화와는 어떻게 다른가?
제프 위구르 상황을 보여주는 장면을 1시간 정도 더 추가했다. 그리고 제목의 ‘사랑의 10가지 조건’에 대한 설명도 더 자세하게 이뤄져 있다. 사실 10시간짜리 영화로 만들어진다고 해서 위구르 사람들이 겪고 있는 상황과 고통을 전부 다 설명할 수가 없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는 것 자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작은 프로젝트라고 생각을 했는데 이렇게 DMZ영화제에도 초청을 받고 나름 이슈가 될 거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 정도만으로도 성공적이라고 본다.

<사랑의 10가지 조건>이 위구르의 사태를 바꾸지 못하겠지만 많은 사람에게 알리기 위한 목적에는 부합하는 결과를 얻은 것 같다. 다만 영화보다 TV가 파급력이 더 센데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제프 단순히 예산 문제였지 어떤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나는 이 영화가 TV든, 인터넷이든, 극장이든 어떻게 해서든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줬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중국 정부가 집요하게 방해하는 이유는?


위구르의 독립투쟁이 세계적인 이슈로 부각한 지금 <사랑의 10가지 조건>이 의미하는 바는 심상치 않다. 레비야 카디르의 표현에 따르면, 자신의 행동은 중국으로부터 위구르의 독립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인간의 권리와 민주주의를 위해서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단순히 위구르에 한정된 이야기랄 수 없다. 이 세상에는 여전히 인권이 유린당하고 민주주의가 날개를 펴지 못한 곳이 많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랑의 10가지 조건>을 두고 벌어지는 일련의 소동이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영화가 상영되는 어느 영화제건 중국 정부는 사사건건 문제 제기를 하고 있고 이는 곧바로 영화제의 존폐 여부를 넘어 국제적인 문제로 비화되기도 한다. 따라서 이에 대한 대처방식은 곧 그 나라의 민주주의와 인권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바로미터로 기능하기도 한다. 어느 영화제에서는 중국 정부의 집요할 정도의 방해공작에도 아랑곳없이 상영을 강행하고 또 어느 영화제에서는 위원장이 자신의 자리를 걸고 상영을 지켜낸다. 그리고 어느 영화제에서는 중국 정부와의 마찰이 두려워 <사랑의 10가지 조건>의 상영이 조용히 넘어가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멜버른영화제에서의 소동이 주요 뉴스로 보도가 됐다. 이 사실을 알고 있나?
제프 조선일보에서 보도한 건 알고 있지만 방송국에서 방영한 건 잘 모른다. 그렇게 관심을 가져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조선일보? 조선일보는 한국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신문 중에 하나다. 아니 자신들의 뜻과 맞지 않으면 거짓말도 일삼는 신문이다. 이에 대한 사실은 알고 있나?
제프 그런가? 참으로 흥미롭고 동시에 아이러니한 일이다. 혹시 나와 갖는 인터뷰 기사 때문에 심의에 회부되는 건 아닌가?

그렇지는 않다. 그런 의문을 갖는 건 왜인가?
제프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이 민주주의를 표방하지만 실은 뒤에서 안 좋은 일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지 않나. 조선일보에 대한 설명을 들으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그렇지 않다니 다행이다.

멜버른영화제에서의 소동을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줄 수 있나?
제프 7월 5일에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 우르무치에서 유혈시위가 벌어졌다. 그 때 한족이 200명 정도 죽었다. 그게 실은 한족과 위구르족 간에 60년 동안 쌓였던 인종적인 대립이 폭발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근데 중국 정부는 그런 역사적인 사실에 대한 언급 없이 그 다음 날 바로 레비야 카디르와 위구르를 강한 어조로 비난했다. 이들 때문에 한족이 죽었다고 말이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따져보지 않고 누가 그랬는지 책임 소재만 따지는 상황이 9.11과 유사했다. 그 뒤로 7월 24일 멜버른영화제가 개최됐는데 <사랑의 10가지 조건>이 상영되고 레비야 카디르가 초청되어 연설을 한다고 하니 중국 정부는 물론이고 중국 사람들까지 국가적인 차원에서 들고 일어난 거다.

그중에는 중국의 세계적인 감독 지아장커(<스틸 라이프><소무>)도 포함돼있었다. 그 역시 영화제 보이콧 선언을 하며 왜 레비야 카디르를 초청했냐며 멜버른영화제 측을 강한 어조로 비난했다. 한국 관객의 입장에서는 지아장커를 진보주의자로 생각했는데 그렇게 적극적으로 중국의 입장을 대변하는 걸 보고 적잖이 놀랐다.
제프 지아장커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의 신념이 어떻고 그의 이념이 무엇이든지 간에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작품의 펀딩을 받기 위해서는 중국 정부가 필요하니까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할 수 없었을 거다.

지아장커가 중국 정부의 눈치를 봤다는 얘기인가?
제프 만약 중국정부에서, 특히 영화를 관장하는 기관에서 지아장커에게 전화를 걸어, 멜버른영화제에서 <사랑의 10가지 조건>이란 영화가 상영을 한다, 레비야 카디르도 초청을 받았다는 식으로 언질을 줬다면 그의 입장에서 소신을 밝히기가 쉽지 않았을 거란 의미다.

뉴스 보도를 통해 본 지아장커의 어조는 상당히 격양돼 있었다. 그는 실제로 레비야 카디르와 위구르족을 비난하는 것 같았다.
제프 그래도 나는 지아장커의 입장을 이해한다. 하지만 내가 지아장커이었다면 절대 그렇게 하지 않았을 거다. 내가 중국 감독이고 위구르 관련한 영화를 만들 예정인데 중국 정부에서 이해를 하지 않으면 난 다른 곳에 가서 영화를 만들었을 거다.

나 역시 지아장커가 그렇게 행동할 줄 알았다. 아니 은연중에 그렇게 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고 기대했다. 물론 세계관과 작품관이 반드시 일치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지아장커의 영화를 보고 그를 인식해온 나에겐 그의 행동이 의아했던 게 사실이다. 앞으로 지아장커의 영화를 어떻게 봐야 할지 난감해하는 영화팬들도 꽤 된다.
제프 어떻든지 간에 지아장커는 중요한 감독이다. 그 사람 입장에서 계속 영화를 하려면 어느 정도의 희생이나 타협은 필요했을 거라고 본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랑의 10가지 조건>은 멜버른영화제에서 최초 공개였나?
제프 그렇다. 월드프리미어였다.

오히려 중국에서 조용히 지나갔으면 별 일 없었을 텐데 괜히 일을 크게 키워 세계 여론을 불리하게 만들었다.
제프 나 역시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중국 정부는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는 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 자국민들에게 선전을 하기 위해 문제를 더 크게 키우는 거다. 우리가 볼 때 위구르 문제는 민족 간의 대립이고, 전쟁인데 유일하게 중국만 위구르의 테러 행위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레비야 카디르가 있다.

중국 민을 하나로 뭉치기 위한 중국 정부의 의도적인 제스처다?
제프 세계가 알까봐 두려워하지 않는다. 되레 전 세계가 위구르 문제에 대해 알게 됨으로써 중국 정부는 자국민들에게 하나 된 중국을 위해 이렇게 노력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효과를 노린다. 멜버른영화제에서 중국 해커들이 조직적으로 영화제 홈페이지를 공격했던 것을 비롯해 국민적인 항의가 거세게 이뤄졌던 것 역시 이 같은 중국 정부의 전략이 주요한 것이다.

멜버른영화제 이후에도 중국 정부의 방해는 계속 되고 있나?
제프 지금 대만의 가오슝국제영화제가 한창인데 거기서도 소동이 벌어졌다. 영화제가 시작도 하기 전에 대만 정부에서 <사랑의 10가지 조건>을 상영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자 30년 동안 가오슝영화제를 이끌었던 위원장(Chief)이 ‘그럼 나 빼고 영화제 진행해라’ 강하게 저항했다. 아예 영화제 시작도 하기 전에 여러 곳에서 <사랑의 10가지 조건>을 무료로 상영했다. 그래서 이 영화가 본의 아니게 가오슝영화제의 개막작이 된 셈이다. 그러자 중국 정부에서는 그 기간 동안 자국민들이 대만으로 여행을 가지 못하게끔 회유를 해서 대만의 중국 여행객이 30%나 줄었다. 또한 중국 정부는 <사랑의 10가지 조건> 상영 후 대만 여행객들에게 지금은 오지 않는 것이 좋다며 압력을 넣어 만 명 정도 되는 그룹여행이 취소되기도 했다. 이렇게 내 영화가 어디를 가나 이슈가 되고 있는 탓에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오늘 밤에도 프로듀서가 ‘월스트리트 저널’과의 인터뷰 때문에 대만으로 들어간다.

DMZ영화제 측에서는 <사랑의 10가지 조건>이 중국 정부와 문제가 될 것을 우려해 크게 선전을 하지 않고 있는 눈치다.
제프 안 그래도 런던에 있는 우리 배급업자에게 연락을 받은 게 있다. 한국의 방송국에 내 영화를 팔려고 했는데 중국과 거래를 하고 있는 입장에서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이다 보니 몸을 사리는 것 같다고 하더라. 이는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호주에서도 ABC방송국이 12월에 <사랑의 10가지 조건>을 방영할 예정이었는데 방영 일자가 무기한 연기됐다. ABC방송국 관계자가 프로그램 판매 문제로 40년 간 관계를 맺고 있는 중국의 방송국에 가게 됐는데 중국 정부 관계자가 집요하게 <사랑의 10가지 조건>을 방영할 것이냐고 물어봤다더라. 결국 호주에서 내 영화가 언제 TV에서 방영될지 모른다. 내 입장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하는 생각에 어떤 형태로든 배급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계속되는 중국 정부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사랑의 10가지 조건>이 더 많이 알려져서 위구르 문제가 전 세계인의 관심사로 급부상한 건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할 것 같다.
제프 유일하게 안 좋은 점은 이 일로 인해서 좋은 중국영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멜버른영화제에서도 <사랑의 10가지 조건>을 둘러싼 소동으로 7편의 중국영화 상영이 모두 취소됐다. 중국 정부는 자국 영화가 <사랑의 10가지 조건>과 함께 상영되는 걸 두려워한다. 중국영화가 세계적으로 좋은 영향을 주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영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어 정말 유감이다.  사진 허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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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일보
(2009.10.29)

2 thoughts on “<사랑의 10가지 조건> 제프 대니엘스 감독”

  1. 안 그래도 부산영화제 지아장커 마스터클래스 때도 이 문제가 언급됐죠. 왜 그런 선택을 하게 됐냐고 물었더니, 지아장커 감독이 아직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시점에서 망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 생각해서 그랬다고 대답한 기억이 나요. 정말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걸 뜻하는 걸까요. 차라리 인터뷰에서처럼 외압이라도 받은 걸로 생각해야 맘이 편할런지 원…
    요새 하도 특별전과 영화제가 몰려서 출판단지까지 찾아가기가 너무 버거운 탓에 결국 한 편도 못보는군요. ㅠ

    1. 개인적으로는 예술가의 사생활과 작품관은 별개라고 생각하는 주의라서 지아장커의 행동에 대해 뭐라 평가할 입장은 아니지만 ^^; 의외였던 건 사실이죠. 지아장커란 사람을 영화 그대로 인식했기 때문이겠죠 모. 아무튼, 정말 요새 영화제랑 특별전 많은 거 같아요. 넥스트영화축제인가, 미조구치 겐지 특별전도 하더군요. 이것도 가능한 다 보려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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