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카피하다> 원본과 복제 사이로 오리지널리티 길어올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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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증명서>가 소개됐을 때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무엇이 ‘증명서’와 관계가 있는 건지 이해하려고 무던히 애썼던 기억이 난다. 약간의 고민 끝에, 극중에서 처음엔 남남이었던 그녀(줄리엣 비노쉬)와 제임스 밀러(윌리엄 쉬멜)가 점점 오래된 부부인 듯한 대화와 행동을 하는 걸 상기하고 부부 관계라는 사실을 증명하려는 이야기가 ‘증명서’로 상징됐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전 이 영화의 개봉 소식이 전해지면서 <사랑을 카피하다>(2010)로 제목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접하고는 원제 ‘Certified Copy’를 영화의 내용과 상관없이 직역하다보니 ‘증명서’라는 제목으로 표기됐음을 알게 됐다.

이런 사연을 소개하는 이유는 제목을 오기한 측의 잘못(?)을 드러내 망신을 주려는 의도는 절대! 아니고, 다만 주어진 제목과 극중 이야기를 연결해 영화를 이해한 나의 ‘반응’이  <사랑을 카피하다>가 전달하려는 메시지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리 밝히자면, <사랑을 카피하다>는 작품 자체가 아니라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의 ‘반응’ 또는 ‘해석’에 온전히 기대고 있는 진정한 유기체의 영화라 할만하다.

키에로스타미의 <비포 선셋>? <이탈리아 여행>?

첫 장면부터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는 앞서 밝힌 영화의 의도를 확실히 한다. 마이크 한 대와 ‘공인된 모사 Copia Conforme’라는 이탈리아 제목의 책 한 권만이 딸랑 놓여있는 단상을 비추는 카메라는 수동적인 위치에 놓인 스크린 밖의 관객을 적극적으로 끌어 들이려 한다. 곧이어 극중 책의 저자인 제임스 밀러가 등장해 약속 시간에 5분 정도(영화의 제목과 주요 스태프를 소개하는 오프닝 장면의 시간이 이 정도 된다!) 늦은 것을 사과하고 책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을 때면 관객은 마치 실제 제임스 밀러가 나를 상대로 강연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게끔 화면이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제임스 밀러의 강연 내용이 아니라 그에 반응하는 청중의 모습이다. 실제로 카메라는 밀러가 신작과 관련해 내뱉는 말을 들려주는 대신 청중 속의 그녀가 강연에 반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일련의 장면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가 작품의 의도를 알리기 위해 관객을 대상으로 미리 밝히는 일종의 감상법 소개에 해당한다. 그러니까 <사랑을 카피하다>의 본격적인 내용은 이후에 그녀와 제임스 밀러가 펼치는 사연이 될 터인데, 그녀가 운영하는 골동품점에 밀러가 찾아오면서 두 사람은 토스카나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삶과 예술, 그리고 부부 관계(?)에 대한 열띤 대화를 나누게 된다.

혹자는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실시간에 가깝게 남녀 주인공을 쫓으며 대화를 중계하는 연출 방식을 두고 ‘키아로스타미 버전의 <비포 선셋>’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사랑을 카피하다>를 완전하게 설명하는 평가는 못 된다. 예컨대, <비포 선셋>(2004) 외에도 <사랑을 카피하다>는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밤>(1960), 장 뤽 고다르의 <경멸>(1963) 등 의도적으로 기존의 작품들을 끌어들인다. 그중 중요하게 언급해야 할 작품이 바로 로베르토 로셀리니 감독의 <이탈리아 여행>(1953)이다. <사랑을 카피하다>처럼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이탈리아 여행>은 친척의 빌라를 처분하러 온 미국인 부부가 나폴리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오래된 부부 관계의 갈등을 드러내면서 위기를 겪기도 하고 화해의 제스처를 취하기도 하는 등 정신적 여정을 포개 놓는 형식을 취한다.

개인적으로 <사랑을 카피하다>의 원본은 <비포 선셋>보다는 <이탈리아 여행> 쪽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이탈리아의 죽여주는 풍경이 배경이고, 부부 관계의 달콤함과 쓴맛을 모두 맛 본 중년 남녀가 등장하며, 무엇보다 출신지가 각기 다른 감독과 남녀 배우가 조합을 이루는 등 여러 모에서 닮아있는 까닭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뒤에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할 예정이다.) 하지만 압바스 키아로스타미가 실제로 <이탈리아 여행>을 가장 중요한 원본으로 염두에 두었는지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사랑을 카피하다>의 그녀와 제임스 밀러의 관계가 부부가 아닌 듯, 한편으로 부부인 듯 굉장히 애매하게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잘 키운 복제 하나 열 원본 부럽지 않다?

작가와 독자의 관계로 만난  그녀와 제임스 밀러는 토스카나를 배회하던 중 어느 카페에를 들어가게 된다. 프랑스인 그녀와 영국인 제임스 밀러는 영어로 대화를 나누는데 이를 알아들을 리 없는 이탈리아 노(老)여주인은 그들을 향해 잘 어울리는 부부라는 요지의 말을 한다. 재미있는 건, 부부 같다는 얘기를 들은 그녀와 밀러가 카페를 나서는 순간부터 결혼 15주년  기념일을 어제 막 지낸, 하지만 서로에게 무감한 실제 부부처럼 대화를 나누고 행동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홍보사의 보도 자료에는 그녀와 밀러가 부부 역할극을 벌인다고 소개가 되어 있지만 그것이 정말 역할극인지 실제 관계인지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받아들이는 입장에 따라서, 처음엔 부부 관계를 숨기고 있던 이들이 서서히 정체를 드러내는 것일 수도 있도록 영화는 다면적 가능성을 모두 열어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던질 수 있는 의문은 한 가지, 그녀와 밀러는 실제 부부일까? 아니면 부부 역할극 놀이에 빠진 작가와 독자의 관계일까? 이와 관련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이들의 대화는 이 질문과 밀접한 연관을 맺는다. 골동품점 운영자와 ‘공인된 모사’의 저자답게 이들이 나누는 대화의 요지는 원본과 복제, 창조와 모방, 진품과 짝퉁, 진짜와 가짜 등 오리지널 진위 여부에 관한 것이다. 그들의 대화 곁을 지나쳐가는 주변 환경 역시도 심상치 않다. 가령, 어느 박물관을 스쳐 지나갈 때 큐레이터가 지오토의 작품을 두고 진품으로 여겨졌던 것이 수세기가 지난 후 위작으로 판명됐다는 설명을 한다. 그러자 그녀와 밀러의 대화는 진품으로 여긴 감상자들의 찬탄은 진짜인지, 가짜인지에 대한 논쟁으로 옮겨 간다.

이 대목에서 중요한 건 진품과 위작의 진위 여부가 아니다. 그에 대한 감상자들의 반응이 더 중요한 기능을 한다. 진짜와 가짜 여부에 집착하던 그녀와 밀러의 대화도 시간을 더할수록 각자의 반응에서 오는 차이에 더 집중하는 형국으로 변모한다. 다비드상과 흡사한 석상이 놓인 분수대에 당도한 이들은 원본과 모방에 대한 논란은 집어치우고 이 작품의 의도가 무엇인지, 맘에 드는지, 들지 않는지 각자의 개인적인 의견을 밝히는 데만 열을 올릴 뿐이다. 그것은 영화를 연출하는 감독도, 촬영 감독도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아들인 바흐만 키아로스타미가 맡았다.) 마찬가지다. 석상에는 전혀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의도적으로 그녀와 밀러의 대화에만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이다.

<사랑을 카피하다>는 두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우고 원본과 복제의 차이에 대해 실컷 떠들게 해 놓고서는 정작 이들의 반응만을 집요하게 살핀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1987)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1991) <올리브 나무 사이로>(1994) <체리향기>(1997)와 같은 작품을 통해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를 기억하는 관객들에게 <사랑을 카피하다>는, 그래서 생소하다. 하지만 <사랑을 카피하다> 이전 키아로스타미 감독은 순수하게 ‘반응’만으로 영화 한 편을 완성한 적이 있다. <쉬린>(2008)이라는 작품으로, 극중에서 줄리엣 비노쉬를 비롯해 이란의 유명 여배우 114명은 <코스로우와 쉬린>이라는 무대극을 관람한다. 이때 <쉬린>을 관람하는 실제 관객은 극중 무대극을 소리로만 들을 수 있을 뿐이다. 대신 <코스로우와 쉬린>을 관람하는 여배우들의 얼굴에 주목하는 카메라를 통해 울고, 웃고, 놀라고, 감동하는 등의 표정 변화, 즉 반응만을 보게 된다. 이런 식의 구성에는 영화라는 매체의 본질을 파악하고 이해하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예술관이 담겨 있다.

내 영화의 원산지는 어디인가

영화를 비롯해 모든 예술 행위는 보는 이를, 듣는 이를, 느끼는 이를, 해석하는 이를, 즉 관객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그들의 갖가지 반응에 의해 규정되고 해석되며 생명력을 얻는다. 이때 중요한 판단 근거가 되는 지표 중의 하나가 바로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다. 그런데 영화는 다른 예술 매체에 비해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순수성이 상대적으로 희박한 편에 속한다. 그것은 영화가 미술과 사진과 음악과 패션과 만화와 같은 각종 예술 매체를 노골적으로 갖다 쓰며 ‘도둑질의 예술’이란 평가를 얻은 까닭이 크다. 그래서 영화는 다른 매체와 달리 오마주 혹은 인용이란 형태에 관대하며 심지어 쿠엔틴 타란티노 같은 이는 오마주와 인용으로 이뤄진 영화를 통해 세계 최고 감독의 위치에까지 오르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원본이 갖는 의미는 갈수록 희박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오히려 타란티노처럼 오마주와 인용을 경유해 새로운 오리지널리티를 획득하는 경우가 빈번해진 것이 현대 영화의 특징이다. <사랑을 카피하다>는 그런 맥락을 통해서야 비로소 이해가 가능한 영화다. 그녀와 밀러가 오리지널리티에 대해 실컷 논쟁을 펼쳐도 원본과 가본의 진위 여부는 사실상 이 영화가 관심을 갖는 테마가 아니다. 앞서 나는 <사랑을 카피하다>가 <비포 선셋>보다 <이탈리아 여행>에 더 가깝다고 의견을 밝혔는데 그것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가 의도한 수많은 반응 중 한 가지에 불과하다. 다만 나는 이 영화가 앞서 열거한 ‘한 핏줄 영화들’을 의도적으로 취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원본과 복제가 혼재한 예술의 형태를 보여주며 현대 영화의 본질을 꿰뚫었다는 점에서 오리지널리티를 획득했다고 생각한다. 극중 밀러의 대사를 빌리자면, “잘 키운 복제 하나 열 원본 부럽지 않다”이고 이 영화의 원제 ‘공인된 모사’에 공감하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사랑을 카피하다>가 의도적으로 가리고 있는 원산지(?) 표시다.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는 이란인이고, 그녀를 연기한 줄리엣 비노쉬는 프랑스인이며, 제임스 밀러 역의 윌리엄 쉬멜은 영국인이다. 또한 극중 배경은 이탈리아이고 영화의 제작국은 프랑스와 벨기에다. 이때 <사랑을 카피하다>는 어떤 나라의 영화라고 할 수 있을까? 이렇게 영화의 국경이 허물어지고 있는 것도 현대 영화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다. 이처럼 영화의 원산지가 점점 큰 의미를 갖지 못하는 상황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경우는 좀 더 절박한 의미를 갖는 것으로 보인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지난 해 12월 이란의 자파르 파나히 감독(<하얀 풍선> <써클> <오프사이드>)이 자국 정부로부터 6년 징역과 함께 20년 간 영화 활동 금지 및 국외 출국 금지 선고를 받은 일이 있었다. 반이슬람적이고 프로파간다 성격이 짙은 영화를 만들어 국가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마찬가지로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또한 오래 전부터 이란 정부의 압박 속에서 영화를 만들어온 것으로 유명하다. 일례로, 1997년 <체리 향기>가 자살이 소재였다는 이유로 출국 금지 조치를 당해 칸국제영화제 폐막 3일 전까지 작품을 출품하지 못했던 해프닝이 있었을 정도다. 그런 저런 일들을 겪으면서 키아로스타미는 이란 밖에서의 영화 연출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게 됐다. 이는 자국에서의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면서 생겨난 키아로스타미의 개인적인 반응이면서 또한 사회적인 반응이라고 할만하다. 그렇게 키아로스타미의 작품은 개인의, 사회의, 그가 접한 영화의, 관객의 각종 반응을 통해 진화해왔다. 다시 말해, <사랑을 카피하다>는 키아로스타미가 지금껏 이어온 필모그래프를 결산하는 ‘복제’의 총합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원본’의 영화적 행보를 알리는 출발점인 셈이다. 더 나아가 이 영화가 카피한 <이탈리아 여행>이 현대 영화의 출발점으로 평가 받듯이 <사랑을 카피하다> 또한 새로운 세기를 열어젖힐 영화로 손색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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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스트
(201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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