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마케팅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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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시즌이 끝났다. 야구 팬으로서 아쉬운 마음이다. 물론 프리미어 12와 같은 국제야구 대회가 벌어지고 있지만, KBO나 MLB 시즌의 긴장감에 비할 바는 아니다.

올해 한국과 미국의 프로야구는 기억에 남을 만한 시즌이었다. 개인적으로 OB 베어스의 원년 팬으로서 두산이 정규 시즌 3위의 성적을 극복하고 한국시리즈에서 무려 14년 만에 우승을 차지한 순간은 감격스러웠다. 뭉클한 감정이 더 컸던 이유는  정규시즌에 우승이 무색하게 무기력하게 패배하고 만 삼성 라이온즈 선수단이 보여준 태도 때문이었다. 그들은 서둘러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대신 3루 라인에 일렬로 도열해 우승 헹가래를 만끽하는 두산 베어스 선수단에게 박수를 보냈다.

대개 한국 프로 스포츠 경기에서 우승이 결정되는 순간, 패자 팀은 그대로 경기장을 퇴장하는 게 보통이다. 프로야구를 비롯해 한국 프로 스포츠에 관심이 있으면서도 정을 붙이기 힘들었던 이유다. 성적 지상주의에 함몰된 문화의 빈약함은 사람을 소외시키고 우승 그 자체만을 부각했다. 그에 대한 반발처럼 MLB와 프리미어리그를 비롯해 해외의 프로 스포츠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됐다.

지금은 국내에서의 NBA의 인기가 예전만 못하지만, 내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에는 따라 올 해외 스포츠가 없었다. 마이클 조던, 매직 존슨, 래리 버드, 레지 밀러, 앤퍼니 하더웨이 등의 화려한 경기력은 물론이거니와 이들 경기에는 늘 사람과 사람이 충돌하면서 생기는 경기 외적인 휴머니즘의 사연이 가슴까지 사로잡고는 했다.

동부의 시카고 불스와 서부의 피닉스 선즈가 NBA 파이널에서 맞붙었던 건 1992~1993 시즌이었다. 시카고 불스는 마이클 조던의 활약이 독보적인 가운데 스코티 피펜과 크로아티아 특급 토니 쿠코치의 특급 보좌로 시리즈를 앞서 나갔다. 2승 3패로 궁지에 몰렸지만, 피닉스 선즈는 골 밑을 장악한 찰스 바클리와 빠른 패스와 속공이 장기였던 가드 케빈 존슨의 진두지휘로 막판 역전을 노렸다.

지금 젊은 세대에게 조던은 나이키의 조던 시리즈로 유명하겠지만, 현역 시절 조던의 플레이는 무지하게 뛰어났는데 뭐라 설명할 방법이 없네. 아무튼, 그런 수준이었다. 난다긴다하는 찰스 바클리와 케빈 존슨과 3점슛이 일품이었던 댄 멀리가 아무리 용을 써도 시카고 불스를, 아니 마이클 조던을 넘어서기는 역부족이었다.

우승을 놓친 찰스 바클리의 실망은 보는 사람이 민망할 정도로 컸다. 그도 그럴 것이 바클리는 필라델피아 76ers에서 프랜차이즈 스타로 오랫동안 활동하다가 우승을 하고 싶다며 연고팀과 팬들의 반대에도 피닉스 선즈로 옮긴 터였다. 그런 사연을 모르지 않았던 마이클 조던은 우승 휘슬이 울리는 순간, 팀 동료들과 얼싸안기를 잠시 미루고 고개를 숙인 찰스 바클리에게 먼저 다가가 포옹을 하며 귓속말로 위로를 아끼지 않았다. 그 둘 주변으로 카메라 기자들이 몰려 플래시 세례를 떠트린 것처럼 나는 눈물이 쏟아질 만큼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NBA에 관심이 없는 이들이라도 이 순간에는 마음을 움직일 정도로 강렬한 광경이었다. 거기에는 골을 넣기 위해 몸을 부딪히고 때로는 욕도 해가며 서로에게 전의를 불 태웠던 차가운 호전성을 따뜻한 인간애로 변모시킨 마법이 있었다. 마이클 조던의 찰스 바클리를 향한 행동이 진심이었음을 믿게 만드는 건 결국 ‘사람’이다. 격렬한 게임이 끝나도 관중들이 경기장을 당장에 떠나지 않는 건, TV 중계를 그 즉시 마무리하지 않는 건 게임 후에 연출되는 사연을 감상하고 포착하기 위해서다. 프로스포츠에 열광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여기에 있다. NBA를 비롯해 성공한 프로 스포츠의 기획자들은 메인 경기 외에도 사람이 돋보이는 이벤트를 종종 연출한다.

강정호가 그 주인공인줄 누가 알았을까. 전국에 계신 시청자 여러분, 그리고 해외에 계신 동포 여러분, 여기는 MLB 내셔널리그 와일드 카드 전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와 시카고 컵스의 경기가 벌어지는 PNC 파크입니다. 경기에 앞서 선수 소개가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시즌 후반 부상을 입어 경기 출전이 불가능한 강정호가 홈 관중의 열렬한 환호 속에 휠체어에 앉은 채 입장하는 것이 아닌가. 외국인 선수를 용병이라 지칭하며 구분 하길 당연시 하는 한국 프로 스포츠 문화상, 역시나 이방인의 신세인 강정호에 따뜻한 환대를 보이는 미국인들의 반응에 한국인으로서 가슴이 뜨거워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한편으로 MLB가 왜 최고의 프로스포츠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경기에 나설 수 없는 강정호를 부러 경기장으로 불러온 건 와일드 카드 결정전을 앞두고 팀의 사기를 올리는 동시에 상대 팀의 기를 죽이는 고도의 전략이었다. 강정호의 왼쪽 무릎 인대를 파열시키고 정강이뼈를 골절시킨 장본인은 바로 시카고 컵스의 크리스 코글란. 어떻게든 시카고 컵스 선수단을 자극하고 흔들어 경기에서 승리하겠다는 의지를 강정호를 앞세워 사람으로 포장한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구단의 기획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MLB 경기를 볼 때면 그와 같은 사람을 앞세운 세련된 마케팅 기법에 놀라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류현진이 속한 LA 다저스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지역 라이벌 의식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유명하다. 앙숙 관계를 반영하듯 LA 다저스의 내셔널리그 서부지구의 1위가 결정되는 경기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홈구장인 AT&T 파크에서 벌어졌다. 이 경기에서 클레이튼 커쇼를 앞세운 다저스는 자이언츠를 8-0으로 셧아웃시키고 서부지구 우승을 확정하였다. 라이벌 다저스가 자신의 홈구장에서 우승의 축배를 드는 광경이 편하지 않았겠지만, 자이언츠는 전광판에 ‘LA 다저스의 우승을 축하한다’는 문구를 환하게 새겨놓았다.

진심일까, 아닐까. 그런 의문은 중요치 않다. 구단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만드는 의도적인 제스처라고 할지라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배려는 무조건 옳다. 사람을 부각하기 위해서는 사연이 절대적이다. 이를 처음부터 아는 사람은 없다. 무수한 시행착오와 경험을 통해 얻게되는 깨달음이다. 100년의 역사를 훌쩍 넘는 MLB가 경기는 물론 경기 외적인 부분에서도 화제를 만들어내는 건 그런 역사가 바탕이 되었다. 경기의 핵심인 선수를 보호하고 존중하는 동시에 이들의 경기력에 열광하는 관중에게는 고액의 티켓 값이 아깝지 않게 여러 가지 볼거리와 사연을 만들어내는 기술. MLB는 배려로 풀이할 수 있는 감동의 사연을 세련된 마케팅 포인트로 삼아 큰 감동을 만들어낸다.

이번 한국시리즈에서 보여준 삼성 라이온즈의 두산 베어스 측을 향한 배려에 대해 항간에서는 불미스러운 사건을 감추기 위한 고도의 전락이라며 깎아내리기를 서슴지 않았다. 정규 시즌 1위의 막강 전력을 구축하고도 한국 시리즈에서 두산에 패한 삼성의 발목을 잡은 것이 도박 스캔들이었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우승만이 절대적인 가치로 인정받는 한국의 프로 스포츠 풍토에서 준우승은 곧 실패로 치부된다. 게다가 프로 구단 자체가 수익 사업이 아닌 모(母)기업의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되는 상황에서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이미지 손상을 겪은 것도 삼성 구단 입장에서는 뼈아팠을 것이다.

돌파구가 절실한 상황에서 우승팀을 향한 축하의 박수는 신의 한 수가 되기에 충분했다. 실제로 삼성 라이온즈가 베어스에게 보여준 배려는 도박 스캔들 기사를 지워버릴 만큼 반응이 뜨거웠다. 이를 주도한 류중일 감독은 일본 프로야구 팀과의 경기에서 일본 팀이 보여준 행동에 감명받아 따라한 것이었다고 인터뷰를 통해 밝혔다. 류중일 감독의 순수한 마음과는 별개로 항간의 비판에서처럼 고도의 마케팅 전략이었던들 나는 기획성일지라도 더 많은 배려의 마케팅이 등장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 사회의 사람 경시 풍조는 이미 위험수위를 넘은 지 오래다. 피겨 스케이팅 영웅이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리본을 달았다고 해서 종북으로 몰리고 발달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이 장애인 시설을 허락해 달라며 사람들 앞에서 무릎을 끓는 풍경이 거의 매일 같이 벌어지고 있다. 스타에서부터 보통사람들까지, 소위 주류(?)의 개념에서 벗어나는 말이나 행동이 포착되기라도 하면 하루아침에 사회적 매장을 당하는 것이 지금 한국 사회의 현실이다.

압축 성장과 그에 따른 빨리빨리 문화는 사람을 소외시켜 왔다. 그 과정에서 배려와 존중의 인간애는 경제 발전과 같은 물질주의 앞에서 사치스러운 감정으로 전락했다. 어떻게 해서든 사람을 생각하는 문화를 정착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라이온즈의 베어스를 향한 축하의 박수가 비판을 제기하는 이들의 주장대로 계산된 제스처일지도 모른다. 그러면 어떤가. 그를 통한 배려의 메시지는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남겼다. 앞으로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팀이 결정되면 패배한 팀이 승자를 향해 축하를 건네는 모습이 연출되었으면 좋겠다. 배려는, 존중은 그렇게 학습되고 정착되는 것이다. 사람을 마케팅하라.

 

ARENA HOMME
(2015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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