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이 욕망하는 두세 가지 것들

사용자 삽입 이미지2014년을 맞이한 한국영화의 키워드 중 하나는 ‘사극’이다. 올해 개봉 예정인 사극 영화가 물경 10편에 달하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그중 강동원, 하정우 주연의 <군도: 민란의 시대>(이하 ‘<군도>’), 최민식이 이순신으로 출연하는 <명량-회오리바다>(이하 ‘<명량>’), 현빈의 제대 후 복귀작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 <역린>, 한국판 ‘캐리비안의 해적’을 표방한 김남길, 손예진 주연의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이하 ‘<해적>’), 명실 공히 한국을 대표하는 남녀 배우인 이병헌과 전도연이 함께 한 <협녀> 등이 기대작에 속한다.

2억 명 관객 시대를 맞아 한국의 영화 산업은 필수적으로 사극과 같은 거대한 블록버스터 영화를 필요로 한다. 블록버스터라면 모름지기 100억 원대의 제작비가 들어가기 마련인데 이들 영화들은 기본적으로 천만 관객 동원을 목표로 한다. 충무로에서 천만 관객은 신이 점지한 스코어라고 말할 정도로 쉽지 않은 목표이지만 2012년 <도둑들>의 1300만 관객 동원을 시작으로 <광해, 왕이 된 남자>(이하 ‘<광해>’, 2012) <7번방의 선물>(2012) <변호인>(2013)이 차례로 천만 관객을 돌파한 사례로 보면 천만은 단순히 꿈의 숫자는 아닌 셈이다.  

그렇다면 사극이 블록버스터 영화에 적합한 장르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까지 천만 관객을 동원한 한국영화는 모두 10편이다. 이중에서 사극은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2005)와 <광해> 두 편이다. 범위를 900만으로 넓혀 봤을 때 2013년 추석 극장가를 강타하며 913만 스코어를 기록한 <관상>도 천만 가까운 관객 동원력을 보여줬다. 그러니까, 사극은 천만 관객 동원이 검증된 장르인 셈이다. 특정 소재 혹은 장르가 큰 성공을 거두면 너나 할 것 없이 이를 모방한 작품이 우후죽순 격으로 쏟아지는 한국 영화산업의 특징을 감안했을 때 2014년의 사극 붐은 어느 정도 예상된 결과라고 하겠다.

질문을 좀 바꿔볼까. 사극이 이렇게 폭발적인 관객 동원력을 보여주는 이유에 대해서 말이다. 사실 천만 관객을 동원하기 위해서 특정 계층을 겨냥한 영화를 만들어서는 곤란하다. 남녀노소를 아우를 수 있을 때 천만은 비로소 가능해지는데 그런 점에서 사극은 천만 영화에 최적화된 장르다. 한국인들에게 사극은 일상생활의 일부가 된 지 오래다. TV만 틀면 일주일에 두세 개 정도의 사극 드라마가 방영할 정도로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고 시청률이 조금만 높다 하면 온 가족이 브라운관 앞으로 몰려든다. 새로운 것에 대한 저항감이 큰 한국 대중들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사극은 영화제작들에게 진입장벽이 낮은 장르인 것이다.  

그런데 영화로 만들어지는 사극은 TV와 다르게 2시간의 제한된 상영 시간 동안 승부를 봐야 한다. 오히려 그것이 짧은 시간 안에 더 많은 것을 원하는 관객들을 만족시키기에는 더 안성맞춤인 구조다. TV로 방영되는 사극 드라마에 심심치 않게 제기되는 제작비 부족에 따른 빈약한 볼거리는 영화에서라면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투입되는 제작비의 상당 부분이 톱스타의 출연료와 무엇보다 우리가 경험한 적 없는 시대의 복원이라는 화려한 볼거리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일주일을 기다려야 다음 회를 볼 수 있는 드라마의 아쉬움을 영화는 2시간 안에 해소해준다는 것도 장점 중 하나다.  

다만 우리 영화 산업이 사극을 욕망하는 더욱 실질적인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영화 산업은 언제나 좋은 소재에 목마르다. 특히나 한국처럼 작가에 대한 처우가 바닥을 기는 상황에서 역사는 일종의 이야기의 보물창고와 다름없다. <광해>의 경우, 조선왕조실록의 광해군 일기 중 ‘숨겨야 할 일들은 조보에 내지 말라’는 한 줄의 기록에 착안, 광해군이 재위 시절 사라졌던 15일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영화적 상상력을 동원해 완성됐다. <명량>도 마찬가지다. 연출을 맡은 김한민(<최종병기 활>(2011)) 감독은 이순신 장군이 13척의 배를 이끌고 일본군의 133척 배를 침몰시킨 사실에 근거해 영화를 기획했다. 하지만 과연 어떤 전략으로 대승을 이끌었는지 초점을 맞춰 이를 재구성해 들어가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다.

이처럼 최소한의 역사적 사실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재해석’이 필연적으로 뒤따른다. 이 경우에 재해석은 과거 시제의 이야기를 현대에 맞게 재구성하는 감각을 말한다. 그래서 몇몇 작품을 제외하고는 이미 흥행에 성공한 사극이나 올해 개봉을 앞둔 영화들은 하나 같이 과거의 시점을 가져와 현재에 대한 이야기를 펼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광해>는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이상적인 지도자가 갖춰야 할 덕목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관상>은 아버지를 넘어서고자 하는 아들이 역사라는 거대한 파고 앞에서 패배하는 사연을 통해 보수적인 우리 사회의 분위기를 반영했다.

사극의 진짜 재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사극은 정치적인 의견이 민감하게 받아들여지는 요즘 같은 사회 분위기 속에서 과거라는 알리바이로 안전핀 역할을 담당한다. 다시 말해, 정치적으로 민감한 현재 시점의 사건을 다루면 논란이 불 보듯 뻔 하기에 풍자나 은유가 용이한 사극으로 우회함으로써 현 시대를 겨냥한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래서 산업이 아니라 창작의 측면에서 보자면 체제를 부정하는 언행이 자유롭지 않은 우리 사회의 경직된 분위기가 사극의 붐을 불렀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건 올해 개봉 예정인 사극들의 주요한 설정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군도>는 탐관오리들이 판치는 망할 세상을 향한 도적들의 반란을 다룬다. <역린>은 왕의 암살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주변 인물들의 신경전을, <해적>은 옥쇄를 삼킨 고래를 잡기 위한 해적들의 활약상을 그린다. 여기서 밑줄을 쳐야할 부분은 ‘아래로부터의 반란’이다. 지금 세상은 소수의 가진 자들의 것이 되었고 다수의 없는 자들은 그런 불평등의 피라미드 속에서 고통을 겪고 있다. 구체적인 움직임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다수의 마음속에는 이 빌어먹을 세상을 뒤바꾸고자 하는 욕망이 머리끝까지 차올랐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당대의 가장 대표적인 문화인 영화는 어떤 형태가 됐든 현실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사극은 지금 대중이 욕망하는 어떤 감정의 끓는점에 해당한다. 시스템을 바꾸고자 하는 민초들의 난, 즉 ‘민란’의 낌새라도 보일라치면 ‘역린'(용의 턱 아래에 거슬러서 난 비닐을 건드리면 용이 크게 성을 낸다는 전설에서 ‘임금의 분노’를 비유하는 말)을 부르는 상황에서 사극은 지금 현재를 사는 많은 이들의 속마음을 대리만족해줄 장르로 각광받고 있는 것이다. 그와 같은 대중의 마음이 영화와 통할 경우, 사극은 산업과 창작자와 관객을 모두 만족시켜줄 장르로 2014년의 영화계를 뜨겁게 달굴 전망이다.

새마을금고 사보
2014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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