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One Flew Over the Cuckoo’s Nest)


정신병원은 이 공간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기능으로 인해 현대산업사회의 병폐를 가장 날카롭게 반영할 수 있는 최고의 상징적인 공간이자 도구가 된다. 정신병원은 곧 사회의 축소판. 그래서 환자들은 매번 간호원의 눈을 피해 병원을 탈출하는 꿈을 꾸고, 이를 실행에 옮기려 한다.

이는 현실을 옥죄는 제도에서 벗어나고 싶은 현대인의 처지와 딱 들어맞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회의 통제에 의해 규격화되어가는 인간의 모습은 폐쇄된 공간에 갇혀 정신 이상자로 취급 받는 그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이 점을 직시하고 있던 예술매체 작가들은 정신병원을 배경으로 하여 사회제도의 모순에 일침을 가하는 비판적인 작품들을 다수 발표해왔다. 그럼으로써 현실을 은유하였으며, 때로는 국가와 마찰을 빚기도 하였다. 영화도 예외는 아니어서 밀로스 포먼(Milos Forman) 감독의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75)는 정신병원을 소재로 한 영화 중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 받는다.


세상에는 언제나 부당한 국가의 체제에 맞서 대중을 인도하는 선동가가 있기 마련. 하지만 선동가란 무지한 대중에게 구원자일지는 모르지만 국가의 입장에서는 눈엣 가시 같은 존재다. 현실(국가체제)을 지탱하는 질서를 깨뜨리고 혼란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선동가의 최후는 그래서 비극적이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에서 선동가 역을 맡은 인물은 잭 니콜슨이 연기한 맥 머피다.


스스로 정신이상자인척을 하며 병원에 들어온 머피는 자신에게 배당된 약조차 그대로 받아먹지 않을 정도로 투쟁심이 강한 인물로, 곧 병원내의 경계 대상 1호가 된다. 환자들을 규합하여 감시와 반(反) 강제적 규율로 평화를 유지하던 병동의 질서를 파괴했기 때문이다. 그의 눈에 비친 환자들은 노예나 다름없다. 맥은 렛취드(루이스 플레처)를 위시한 간호원들의 명령에 자신의 의지를 전혀 내 세우지 못하는 환자들의 자유의지를 찾아주기 위해 체재에 도전한다.


같은 정신병원을 배경으로 삼고 있지만 제임스 맨골드(James Mangold) 감독의 <처음 만나는 자유 Girl, Interrupted>(99)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와는 사뭇 다르다. 이 영화가 등장하였을 때 대부분의 평자들은 공간적 배경과 그 공간을 장악하는 카리스마 형 인물의 등장으로 <처음 만나는 자유>를 밀로스 포먼의 영화와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의 잣대를 들이밀기도 하였다. 하지만 두 영화는 확연히 다른 점을 가지고 있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가 사회를 비판하는 기능을 주되게 호소하며 체제와 개인과의 싸움을 그리고 있다면 <처음 만나는 자유>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그리고 있는 개인 사(史)에 관한 영화다. 물론 주인공인 작가가 정신병원에 들어오게 된 과정에서 1968년의 도덕적 혼란을 보여주는 시대적 상황이 언뜻 비치기도 하지만 <처음 만나는 자유>는 자신의 인생을 그대로 보여주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수잔나 케이슨(Susanna Kaysen)이라는 여류 작가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처음 만나는 자유>는 자전적인 이야기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수잔나 역을 맡은 위노나 라이더(Winona Ryder)의 내래이션으로 극을 진행한다. 그래서 연출은 최대한 수잔나의 세계에 깊숙이 개입하려 하지 않는다. 음악을 깔더라도 잔잔하게, 되도록 자제하는 것이 그 좋은 예 중 하나다. 게다가 이 영화에 등장하는 환자들은 정신이상자라기보다는 고민이 심한 아이들로 보는 편이 더 적절할 듯 하다. 그 세대의 아이들에게 18세라는 나이는 정신적으로 제일 심하게 방황할 때가 아닌가.


반면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를 가장 잘 설명하고 있는 부분은 메이저리그 월드 시리즈 TV 관람을 위해 투표를 하는 장면이다. 체제와 자유 의지간의 충돌에서 오는 결과물을 잘 보여주는 것. 가까스로 과반수를 넘겨 TV 시청이 가능해졌지만 렛취드 간호사는 이를 무시, 월드시리즈 시청을 금한다. 그대로 놔두었다가는 억압과 금지로 지금까지 이루어 온 병동내의 질서가 파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고작 선동가 머피와 그를 지지하는 환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꺼진 TV를 보며 머피의 상상 속 멘트에 따라 환호할 뿐이다. 승리? 이들의 행위는 승리와 거리가 멀다. 그저 허공에 손 흔들기나 다름없다.


결국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와 <처음 만나는 자유> 이 두 영화의 큰 차이는 결말부에서도 잘 드러난다. 머피와 그의 친구들이 맞이하게 되는 운명은 폭력에 의해 와해 되는 것이다. 머피는 뇌 이식술을 받고 식물인간이 되어 죽음을 맞게 된다. 선장을 잃은 환자들은 렛취드를 위시한 체제에 다시 순응하며 자유의지를 반납할 뿐. 이에 반해 <처음 만나는 자유>의 수잔나는 친구(환자)들과의 우정, 담당 간호사 발레리(우피 골드버그)의 자혜로 정신적 성숙을 얻게 된다.


정신병원이라는 특수한 상황으로 이 계열의 영화에서 뛰어난 연기력은 필수다. 미친 척을 한다는 것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연기 중에서도 정신 이상자 역할은 배우에게 고도의 연기력을 요한다. 두 영화에서 다수의 연기상이 배출된 사실은 이를 잘 증명한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경우, 스크린을 지배하는 두 남녀의 불꽃 튀는 연기대결로 그 해 아카데미 시상식의 남우주연과 여우주연을 동시에 차지하였다. 또한 <처음 만나는 자유>는 주연배우를 능가하는 인상적인 연기로 안젤리나 졸리가 아카데미 여우 조연상을 수상하였다. 눈에 보이는 성과물은 없지만 두 영화의 환자 역으로 출연한 배우들의 연기도 뛰어났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는 남녀 주연상 외에도 작품, 감독, 각본상 등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Gone with the Wind>(39)에 이어 두 번째로 ‘빅 파이브’를 수상하는 쾌거를 올릴 만큼 굉장한 수작이다. 현실의 반영론적 관점에서 이 영화가 높이 평가 받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감독인 밀로스 포먼의 감정을 서서히 고조시켜 머피에 동화시키는 연출력은 정말로 뛰어났다. 그러나 <처음 만나는 자유>의 제임스 맨골드 감독은 정상적이지 못한 이들의 무거움이 감당하기 힘들었나보다. 수잔나의 이야기뿐 아니라 안젤리나 졸리가 맡은 또 한 명의 주인공인 리사의 문제까지 끌어안으려는 무리수로 결말부가 늘어지는 단점을 보여 아쉬움을 남기기도 하였다.


(2002. 1. 25. <무비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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