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 계> ‘빗장’ 풀린 욕망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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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 계>는 국내 개봉(2007년 11월 8일) 당시 전국 200만 가까운 관객을 모으며 기대 이상의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 20~30대 여성이 주도하는 극장가에 40~50대 주부층 관객이 대거 몰린 것. 가장 큰 이유는, 주연을 맡은 양조위와 (<색, 계>가 영화 데뷔작이었던) 탕웨이의 정사 장면이 입소문을 타며 화제를 모았기 때문이다.

1942년 일제강점기의 상하이. 부유한 저택 안에 부인들이 모여 마작 게임에 한창이다. 이들은 게임을 즐기면서 남편의 승진과 홍콩에서 수입해 온 스타킹, 여자들이면 누구나 관심을 가질 법한 다이아몬드 이야기로 시간을 보낸다. 게임에 몰두하랴, 대화 또한 진행하랴, 시선과 입놀림이 분주한 그녀들을 쫓는 카메라의 움직임도 덩달아 바쁘다. 그 속에서 막부인(탕웨이) 만이 조용히 튀지 않게 게임과 대화에 집중한다.

곧 이은 분위기 반전. 저택의 주인이자 정보부 장관인 이(양조위)가 퇴근 후 모습을 드러내자 막부인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린다. 과연 막부인과 이의 관계는 무엇일까? 리의 부인은 온종일 마작이냐며 조용히 타박하는 남편 이에게 왜 다이아몬드를 사주지 않느냐며 투정을 부린다. “무거운 거 껴봐야 마작하기만 불편하지.” 그와 동시에 막부인은 약속이 있다며 판을 깨고 일어난다. 이 또한 약속을 이유로 집을 나선다.

짧은 줄거리에서 언급한 승진과 스타킹과 다이아몬드는 막부인과 이의 관계를 설명하는 중요한 단서다. 이는 대만에서 머물던 당시 대장이었다가 지금은 장관의 지위에 올라 상하이에 거처를 마련했다. 그는 대만 출신으로 세계 2차 대전이 일어나고 상하이가 일본에 점령되자 일본군에 붙어 동족을 처단한 매국노다. 대장에서 장관으로 ‘승진’한 이는 독립군에게 있어 처단해야 할 1순위 인물인 셈이다.

이의 처단의 선봉에 선 인물이 바로 막부인이다. 지금은 수입업을 하는 남편을 둔 귀부인 행세를 하고 있지만, 그녀는 실은 평범한 여대생 왕치아즈다. 영국으로 간 아버지를 기다리며 홍콩으로 피신 유학을 온 그녀는 연극부에 가입한다. 민중 연극을 무대에 올리며 주인공으로 출연하던 날 관객들의 환호에 조국의 독립을 향한 애국심이 마음속에서 뜨겁게 불타오른다.

이참에 왕치아즈는 연극부 단원들과 함께 더 큰 일을 도모하기로 의기투합한다. 연기에 능하고 미모가 뛰어난 왕치아즈가 귀부인으로 분해 홍콩에 잠시 머무는 이의 아내에게 접근, 기회를 봐서 이를 암살하기로 한 것이다. 왕치아즈는 생전 해본 적 없는 진한 화장에 몸매가 훤히 드러나는 치파오를 입고, 무엇보다 임무 완수를 위해 잠자리 기술까지 터득한다. 결국, 이의 환심을 사 침대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다.

<색, 계>에는 주인공 사이의 적나라한 정사 장면이 총 세 차례 등장한다. 단순한 눈요깃감이 아닌 것이 둘 간의 섹스가 거듭할수록 변화하는 이들의 심정을 달라지는 체위에 고스란히 반영하는 까닭이다. 이가 부인의 눈길을 피해 막부인을 비밀스러운 아파트로 불러들여 첫 번째 섹스를 나누는 장면은 한마디로 폭력적이다. 막부인이 치파오를 걷어 올리고 천천히 ‘스타킹’을 내리며 분위기를 잡으려던 찰나 이가 그녀의 머리채를 잡고는 벽에 내동댕이친다. 그리고 치파오와 스타킹을 거칠게 찢어낸 후 막부인의 감정에 아랑곳없이 후배위로 욕망을 채우기에 급급하다.

이는 겉과 속, 집안에서와 바깥이 다른 인물이다. 대만 출신이지만, 동족을 보호하기는커녕 일본군에 고발하고 고문까지 서슴지 않는 냉혈한이다. 마작 게임이 벌어지는 집안에서 귀부인들의 눈에 비친 그는 말 수가 적고 말끔한 신사의 전형이다. 바깥에서 벌어지는 일은 철저히 비밀에 감추고 있어 부인은 이가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렇게 주변을 경계하는 이는 막부인과의 첫 번째 섹스에서 감정을 교류하는 전위 행위를 무시한 채 상대방을 무력하게 만드는 후배위로 막부인을 몰아붙이고는 관계를 일방적으로 끝마친다.

정체성을 드러내듯 고문이라는 표현이 어울릴법한 섹스를 마친 이는 자신의 집에서 벌어지는 두 번째 섹스에서도 막부인을 우리에 가둔 듯 경계하는 자세로 행위에 임한다. 막부인이 주도할 수 없게 남성 상위로 몸을 압박한 후 이 그 자신은 측배위와 같은 체위를 통해 뱀처럼 조심스럽게 그녀를 압박해 들어간다. 막부인이 전혀 저항하지 못하도록 교란해가며 사정을 마친 이는 그제야 그녀의 얼굴을 정면에서 마주하며 그동안의 경계심을 풀기에 이른다.

일방적으로 당하는(?) 처지에 몰렸던 막부인은 세 번째 섹스에서 비로소 동등한 위치에서 이와 몸을 섞는 경험을 한다. 역시나 이의 남성 상위에서 시작했던 섹스는 어느 순간 막부인의 반격으로 여성 상위의 체위 변화를 겪는다. 이의 몸에 올라탄 막부인은 급기야 베개로 이의 눈을 가린 후 행위의 절정을 주도하기까지 한다. 그동안 이와의 섹스를 공적인 임무로만 여겼던 막부인의 눈에서는 ‘어떤’ 만족감이 서광을 비춘다.

베개로 눈을 가렸다는 건 그동안 막부인을 믿지 못했던 이의 눈을 ‘멀게’ 하여 경계심을 풀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는 의미다. 이제 이는 막부인의 사랑의 포로다. 안 그래도 세 번째 섹스에서 여성 상위에 있던 막부인은 고개를 돌려 옷걸이에 걸린 총집을 응시한다. 총을 꺼내 이의 가슴에 한 방을 쏘면 임무 완성이지만, 시선만 줄 뿐 욕망을 채우는 데 주력한다. 이의 암살에 ‘주력 戒‘하던 막부인은 어느덧 ‘사랑 色‘을 갈구하는 순진한 여대생 왕치아즈로 돌아온 듯하다.

암살 대상을 보호하고 사랑해야 할 인간으로 느끼기 시작했다는 건 위험한 징조다. 막부인, 아니 왕치아즈의 흔들리는 마음에 결정타를 날리는 건 ‘다이아몬드’다. 영화 초반, 귀부인들이 마작 게임을 하며 다이아몬드 운운하는 에피소드는 후반부에 반복된다.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 이의 저택 주변에서 벌어지는 삼엄한 경비, 그런 이를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막부인의 태도를 종합하면 <색, 계>는 첩보물의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하지만 다시 한 번 등장하는 이 에피소드는 같은 장면임에도 초반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와 의미를 갖는다.

이미 세 번의 섹스를 통해 이를 사랑하게 된 왕치아즈는 임무, 즉 사회적인 자아와 은밀한 자신 사이에서 갈등한다. 첩보물로 시작했던 영화 역시 계를 무력화하는 색의 본능이 이와 왕치아즈 사이를 무너뜨리면서 비극적인 러브 스토리로 이동을 단행한다. 지하에서, 어둠에서, 은밀한 침실에서 나오는 법이 없던 이는 왕치아즈에 이끌려 상하이의 번화가에 모습을 드러낸다. 왕치아즈를 미끼 삼아 대어를 불러내는 데 성공한 독립군들은 결정적인 순간 이의 암살에 실패하고 만다. 이가 선물한 다이아몬드를 받고 막부인이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암살 계획을 노출한 것.

사랑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적이지만, 사회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마련이다. 사랑은 사회적인 토대 위에서 성립하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고로 상처받기 쉬운 것이 또한 사랑이다. 그리고 그 상처의 가해자는 대개 사회가 만들어놓은 규범 또는 제약, 편견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중 전쟁은 사랑을 억압하고 억제하는 최악의 환경이다. 전쟁과 같은 감시사회는 인간을 괴물로 만든다. 평범한 여대생이 암살 작전에 투입되고 이를 위해 사교 기술을 익히고 섹스를 배운다. 또 어떤 이는 제 한 몸 건사하겠다고 조국을 쑥대밭으로 만든 적의 편에 서서 호의호식한다.

그렇다면 왕차이즈와 이는 괴물인가? 괴물은 사랑을 믿지 않는다. 욕망을 채울 뿐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 혼란스러워하거나 갈등하지 않는다. 아픔은 인간의 전유물이다. 왕차이즈와 이는 시대가 낳은 희생양이다. 사랑과 섹스는 괴물이 주도하는 전쟁통에서 인간임을 호소하는 자기 증명에 가깝다. 관능은 가린다고 해서 가려지는 게 아니다. 옆에서 사람이 죽어 나가도 사랑은 식지 않는다. 감정은 그렇게 솔직한 법이다. <색, 계>의 과감한 섹스는 왕차이즈와 이의 솔직한 감정 표현이다.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1732~1806)라는 화가가 있다. 로코코를 대표했던 프라고나르는 에로틱을 전면에 드러낸 그림으로 유명하다. 그중 가장 노골적인 작품이 <빗장>이다. 두 남녀가 호사스러운 침대를 놔두고 바깥에서 선 자세로 엉켜있다. 남자는 한 손으로 여자의 허리를 감싸 쥔 상태이지만, 나머지 손으로는 ‘빗장’을 걸어 잠그고 있다. 여자는 빗장에 손을 얹은 남자의 손을 제지하면서도 고개로는 침대로 가자는 포즈를 취하는 듯하다. ‘어머 이러면 곤란해요’ 거부의 표시를 하면서도 달아오른 육체는 어서 빨리 침대로 들자며 승낙하는 것만 같다.

이들의 애매한 행동에서 유추컨대 이와 왕차이즈처럼 서로 관계 해서는 안 되는 사이인 것처럼 보인다. 그럼 불륜 관계일까? 연극 무대의 조명처럼 이 둘에게만 환한 빛을 비춰 강조점을 둔 것을 보면 불륜에 초점을 맞춘 것 같지는 않다. 이들이 지금 애매한 행동을 취하고 있어도 서로를 향한 감정만은 솔직하다는 방증일 터. 그림 속 남자와 여자의 감정은 옆에 침대 위의 시트와 커튼에서 우회적으로 드러난다.

환한 빛의 꼬리 부분을 주목하자. 남자의 성기가 발기한 것처럼 침대의 귀퉁이가 솟아있다. 불쑥 올라 있는 하얀 시트를 따라가면 그 위로 빨간 커튼이 드리워져 있다. 두 개의 커튼이 꼬인 틈바구니가 검게 벌어진 것을 보니 여자의 성기를 연상시킨다. 여자를 응시하는 남자의 시선과 그런 남자의 눈빛에 달뜬 여자의 표정을 보니 이미 이들의 육체는 서로 탐할 준비를 마친 것으로 보인다. 속된 말로 불륜 관계이지만, 이 그림이 불쾌하거나 외설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우리 또한 욕망 앞에서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 그림의 ‘빗장’이 의미하는 건 마음속 감정일 터. 왕차이즈와 이도 각각 암살 임무와 사회적 지위 상승을 이유로 욕망에 빗장을 단단히 쳐둔 상태였다. 그럼으로써 상대방에 대한 모호한 태도로 스스로를 괴롭혀 왔다. 고통의 시간을 끝내기 위해서는 파국이 예고되더라도 마음의 빗장을 풀고 감정에 솔직해지는 수밖에 없다. 왕차이즈는 자신도 모르게 피어오른 사랑 앞에서 임무를 버리고 이를 택한다. 이는 자신에게 향하는 의심의 눈길을 차단하려 왕차이즈의 처단을 명령하지만, 진심이 아니기에 정신적 충격이 이루 말할 수 없다.

<색, 계>의 섹스를 두고 단순히 화끈하다, 적나라하다, 고 묘사하는 건 실은 이들의 사랑을 모욕하는 표현에 가깝다. 왕차이즈와 이에게 섹스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상대방에게 드러낸 솔직한 감정의 표현이자 이들의 사랑을 시험대에 들게 한 불온한 시대를 향한 저항의 몸짓이다. 죽음마저 감수한 사랑은 그래서 위대하고 숭고하다. <색, 계>의 섹스가 몸이 아닌 마음을 뜨겁게 하는 이유다.

bitjang

 

메디포
(2015.12.12)

“<색, 계> ‘빗장’ 풀린 욕망에 대하여”에 대한 2개의 생각

  1. 오늘도 글을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
    글 외에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황 번역가님 트위터에서 언급하셔서 다시 생각이 난거지만 요근래 재개봉이 너무 많아진거란 우려와 걱정이 듭니다.
    특히나 american film market에서 한국 수입사들이 재개봉 판권 다툼 그것도 로맨스가 잘 되니 그거 위주로 많이 재개봉되는 게 안타깝네요. 그 당시 개봉한 영화는 그 당시의 가치로서도 내비두는 것도 좋을텐데.. 결국 좋은 최신 개봉작이 묻히게 될 확률이 높아지는 악순환이 반복이 되는 것 같습니다. ㅠㅠ

    1. 예, 재개봉 영화 많죠. 말로만 듣던 영화를 스크린에서 볼 수 있어서 좋죠. 근데 너무 많은 재개봉 영화들이 극장 개봉을 하다보니까 작은 영화들이 극장 잡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기도 하죠. 원래 재개봉영화 뿐만 아니라 수입영화 가격을 천정부지로 높이는 한국은 어디서나 유명하죠.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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