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매치>(Big Mat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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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의 기록적인 흥행으로 여름 극장가가 뜨거웠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겨울 시즌이 다가왔다. 올겨울의 한국영화도 중량감이 만만치 않아서 <빅매치>(11/27 개봉) <국제시장>(12/17) <상의원>(12월 중) <허삼관>(1/15)이 4파전 구도를 형성할 것으로 보인다. 그 스타트를 끊는 것이 최호 감독의 <빅매치>다. 겨울 시즌 한국영화의 경향 및 판도를 미리 살필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이 쏠린다.

재미만 보고 달리는 도심 질주 액션

익호(이정재)는 잘 나가는 이종격투기 선수다. 원래는 프로 축구 선수였지만, 경기 중 상대 팀 선수 11명과 시비가 붙어 영구 제명당한 후 격투기로 전향했다. 워낙 싸움에 소질이 있어 어렵지 않게 챔피언 자리에 오를 줄 알았는데 시합을 앞두고 문제가 발생한다. 상대 선수의 약물 복용이 적발되면서 시합이 취소된 것과 동시에 코치이자 친형인 영호(이성민)가 실종된다.

영문도 모르는 익호에게 경찰이 들이닥치고 다짜고짜 형 영호가 살해 용의자로 몰렸다며 조사를 위해 경찰서 행을 요구한다. 천성이 반항적인 익호는 그런 경찰에 대들었다가 철창에 갇힌 후 의문의 메시지를 듣게 된다. 영호가 납치되어 있으니 자신의 지시에 따라 구하러 오라는 것. 그 목소리는 에이스(신하균)의 것으로 그는 익호를 장기 말 삼아 서울 전역을 경기장으로 한 게임을 제안한다.  

최호 감독의 전작을 생각하면 <빅매치>는 의외의 영화다. 인터넷 세대의 사랑을 풍속도로 그린 <후아유>(2002), 마약 밀매에 가담한 경찰과 거래 책을 통해 속고 속이는 인간관계를 은유한 <사생결단>(2006), 1970년대를 배경으로 오로지 음악에 대한 열정만으로 엄혹한 시대를 통과했던 청춘을 다룬 <고고70>(2008) 등 최호 감독은 매 영화 시공간을 달리 해 현실의 우리를 되돌아보게 했다.    

<빅매치>는 오로지 ‘재미’이다. 기자시사회 당일 영화가 상영되기에 앞서 제작자는 무대 인사를 자청해 “오락물이니만큼 재미 하나만 보고 만들었다”는 요지의 기획 의도를 밝혔다. 그의 말처럼 영화는 납치된 형을 구출하기 위해 서울 전역을 뛰고 또 뛰는 익호의 상황처럼 재미만 보고 달려간다. 최호 감독의 말에 따르면, “특별한 무기로 무장한 악당과 새로운 타입의 주인공 히어로, 그 두 명이 주고받는 신선한 리듬의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예컨대, 작품성에 초점을 맞춘 영화들이 등장인물의 성격과 행위를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가져가 해석의 폭을 넓히는 것이 특징이다. 그와 다르게 <빅매치>는 캐릭터의 선악 구도를 확실히 할 뿐 아니라 이야기 구조 역시 추격전에 걸맞게 쫓고 쫓기는 단순한 구도로 가져간다. 격투기 선수 출신답게 익호는 모든 상황을 몸으로 극복해 나가고 그에 반해 에이스는 익호가 쉽게 영호를 구출하지 못하도록 서울 도심의 구조를 파악해 천재적으로 게임 동선을 설계한다.

대신 최호 감독은 단조로울 수도 있는 인물 설정과 이야기에 다양한 변화를 주기 위해 공간과 액션에 많은 공을 들인다.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서울 도심 한복판을 무대로 삼은 공간 연출이다. 상암 월드컵 경기장, 서울역, 행주대교, 한강 고수부지 등 랜드마크라고 할 만한 곳들을 대거 포착해 압도적인 스케일의 추격전을 펼쳐 보인다. 그야말로 도심 질주 액션이라 할 만한데 그런 측면에서 <빅매치>는 또한 많은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런 어웨이>의 2014년 버전?

도심 질주 액션은 그리 새로운 시도나 장르로 보기는 힘들다. <빅매치>를 보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먼저 떠올린 영화는 ‘절대로 죽지 않는 형사’ 맥클레인(브루스 윌리스)이 등장하는 <다이하드3>(1995)이었다. 테러리스트가 뉴욕 곳곳에 폭탄을 설치해 놓고 맥클레인에게 생사가 걸린 수수께끼를 하나씩 내면서 숨통을 조여 가는 설정은 여러 모에서 <빅매치>와 닮았다.  

다만 복수의 감정이 중요한 정서로 작용하는 <다이하드3>가 잔혹한 폭력 이미지가 중심에 선다면, <빅매치>는 서울이라는 대도시에서 벌어지는 추격 그 자체에 많은 공을 들인다. 그래서 오히려 이 영화의 직계로 생각되는 작품은 김성수 감독이 연출한 <런 어웨이>(1995)다. <감기>(2013)의 김성수 감독이 연출하고 이병헌이 출연했던 <런 어웨이>는 당시 서울을 무대로 추격전을 그렸다고 해서 꽤나 화제를 모았더랬다.

<런 어웨이>는 하룻밤 사랑을 즐긴 남녀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던 중 살인 사건을 목격하고 그 때문에 가해자인 범죄조직으로부터 쫓기는 내용이다. 주인공들은 살기 위해 서울 도심의 구석구석으로 도망을 가는데 김성수 감독은 그 동선을 미로처럼 가져가며 새로운 서울의 면모를 부각했다. 지금과 다르게 <런 어웨이>의 개봉 당시 서울에는 좁은 골목이 꽤 많았다. 이를 추격전에 접목한 <런 어웨이>는 흥행에서는 썩 재미를 못 봤지만, 꽤 호평을 받았다.    

<런 어웨이> 이후 20년, <빅매치>에는 좁은 골목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워낙 대도시로 변모하면서 서울의 도심 문화도 그동안 완전히 바뀌었다. 골목이 사라진 자리에는 대형 건축물들이 경쟁적으로 들어섰고 이를 보기 위해 많은 사람이 몰려들면서 열린 공간이 되었다. 그에 따라 추격전의 양상도 자연스럽게 달라졌다. <런 어웨이>의 커플은 조직의 추격을 피하기 영업이 끝난 수영장에 몸을 숨겨 위기를 극복할 수 있지만, <빅매치>에서는 금세 들통 나기에 십상이다.

익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에이스는 굳이 사람을 풀거나 직접 익호의 뒤를 쫓지 않는다. 첨단의 장비로 무장한 밴에서 서울 도심 곳곳의 감시 카메라를 연결해 익호의 위치를 파악하거나 GPS 신호를 따라서 목적지에 도달하는 식이다. 거대한 서울을 경기의 링으로 삼은 이 영화의 발상은 갈수록 비인간화되어가는 시대상을 반영한 결과다. <런 어웨이>의 커플이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잠시나마 사랑을 나누는 것과 다르게 언제 어디서나 정체가 노출되는 익호는 딴생각을 할 겨를조차 없다.

그렇게 20년 전의 낭만은 과도한 도시화와 첨단의 문명에 지금은 설 자리를 잃었다. 익호가 죽으라고 납치된 형을 찾는 이유는 단순히 혈육을 넘어 이제는 잊힌 낭만의 가치를 복원하기 위한 <빅매치>의 간절함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익호 캐릭터의 매력은 바로 인간미에 있다고 최호 감독은 말한다. “힘든 상황에서도 긍정을 잃지 않는 여유가 강점인 캐릭터다. 악당에게 욕 대신 웃음을 날려주면서 나름의 기발한 방식으로 살아남는다.” 결국, <빅매치>는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여유와 위트를 잃지 않고 위기를 극복하는 익호의 에너지에 충전을 받고 갈 수 있는 영화”다.    

시사저널
(2014.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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