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운(클라크)> 시네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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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지안비토 감독은 <비행운(클라크)>가 상영되기 전 관객에게 “끝까지 남아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비췄다. 이유가 있다. 이 영화는 상영시간이 무려 4시간 24분이다. 중간 휴식시간 10분까지 포함하면 4시간 30분을 훌쩍 넘긴다. <비행운(클라크)>는 필리핀 내 대형 미군 기지였던 클라크 지역의 환경오염과 그에 대한 피해를 다룬다. 피해자들의 증언을 중점적으로 다루면서 미국의 야만적인 역사를 병치하는 형식은 분노를 유발하면서도 동시에 성찰하게 만든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4시간이 넘는 상영 시간을 통해 관객에게 생각할 수 여백을 충분히 제공하는 까닭이다. 더군다나 영화가 다루는 내용은 한국인들에게도 전혀 낯설지 않은 내용이다. 상영이 끝난 후 상영관에 불이 켜지자 관객은 반으로 줄어있었지만 존 지안비토 감독과의 시네토크는 관객의 수가 무색하리만치 1시간 넘게 진행됐다.

영화에서도 언급이 되지만 미군 기지는 전 세계 100여 국에 700개가 넘게 존재한다. 어떻게 그중에서도 필리핀의 상황을 다루게 됐나?
두 가지 계기가 있었다. 첫 번째는, 2006년에 원래 만들려고 했던 장편영화의 한 시퀀스를 촬영하기 위해 필리핀에 방문했다가 현장을 보게 됐다. 두 번째는, 1999년에 신문 기사 한 편을 읽게 됐다. 전 세계적으로 미군기지가 존재하는 지역에서 발생하는 오염에 대한 기사였다. 굉장히 짧은 기사였는데 사례로 필리핀이 언급됐다. 이를 읽으면서 필리핀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미국이 해외에서 감행한 대규모 전쟁 중 최초의 사례가 필리핀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이를 잘 모르기 때문에 영화로 만들 생각을 하게 됐다.  

상영시간이 무려(!) 4시간 24분이다.
4년의 제작 기간 동안 매년 3번씩 필리핀을 방문했다. 편집에는 1년이 걸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상영한 <비행운(클라크)>는 1편이고 2편이 기다리고 있다. 제목은 <비행운(수빅)>으로, 현재 편집 중이다. 1편이 클라크 지역에 대한 것이었다면 2편은 수빅에 있는 미군 항공 기지에 대한 내용을 다룬다. 무엇보다 미국과 필리핀 간의 정치적 문제에 대해 좀 더 심도 깊게 접근할 생각이다.

제작 기간이 4년이나 걸린 이유는 무엇인가?
이런 종류의 이슈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려면 내 스스로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야한다고 판단했다. 우리가 모두 느끼고 있듯이 세상은 매일 매일이 제약과 혼란으로 휩싸여 있다. 하지만 이를 쉽게 외면하면서 사는 것에 익숙하다. 개인적으로는 미국 시민으로써 누리고 있는 특권을 생각하자면 당연히 성찰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형식이나 내용면에서 어떻게 보면 급진적인 영화를 만들게 됐다.

극중 클라크 주민들의 인터뷰를 편집하거나 가감하지 않고 최대한 모두 보여주려 한 연출이 파격적이었다.
무엇보다 이 영화에 나오는 필리핀의 피해자들을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관객들의 인상에 남을 수 있게끔 그들의 인터뷰를 가능한 모두 살리면서 상영 시간을 길게 가져갔다. 사실 클라크 주민에게 영화를 처음 보여주자 4시간이 넘는 상영 시간을 접하고는 상당히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생각을 바꿔, 만 명 이상의 대규모 관객이 보지 않더라도 백 명 정도의 소수 관객들이 보고 피해자들을 위한 행동에 동참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성공한 것이라고 호응을 보내줬다. 

필리핀의 민감한 정치적 문제를 다룬 영화이기 때문에 필리핀 내 상영이 수월할 것 같지는 않다.
필리핀에서 상영을 한 적이 있다. 다만 클라크와 수빅 지역의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상영이었다. 시민 단체나 지역 공동체의 관계자들은 이 영화가 필리핀에서 대중적으로 상영되기에는 시기상조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다음 달 열리는 대선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그 이후에 상영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 그들의 판단이었다. 사실 그들은 필리핀에서보다 해외에서 먼저 상영되기를 원했다. 실제로 필리핀에서는 미디어 통제가 심하기 때문에 국제적인 상영을 통해 해외 언론들의 관심을 끌어내는 것이 더욱 유리하다. 해외에서 이슈가 되면 바로 그런 이유로 필리핀 정부가 이 영화를 통제하기가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비행운(클라크)>가 다루는 미군기지 주변의 오염 문제는 한국인들에게도 익숙한 소재다.
동의한다. 한국인들인 미군기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계속 접하기 때문에 이 영화를 새롭게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문제는 여전히 잔존하고 있다.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나뿐만 아니라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모든 감독들이 그렇겠지만 새롭게 보이지 않는 문제에 대해서도 그것을 알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내가 알기로 한국에 존재하는 미군기지는 25개 정도가 된다. 그런데도 한국 내에서는 미군 기지를 몰아내려는 시도가 잘 보이지 않는 것 같다. 물론 시민단체나 NGO의 항의가 꾸준히 있어왔지만 크게 조직화된 형태로 이뤄진 적은 없었다. 불과 며칠 전에도 일본의 오키나와에서는 미군 기지를 철수하라는 대규모 집회가 있었다. 그에 비해 한국은 조용한 편이라 이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물론 천안함 침몰로 많은 젊은이들이 죽었고 이와 관련해 한국 정부는 북한에 손가락질을 하면서 북한의 핵을 빨리 없애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내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지금 세계에서 핵을 가장 많이 보유한 나라는 미국이다. 더군다나 그 핵을 실제로 사용할 의지가 있는 나라도 미국이다. 북한이나 천안함 문제도 굉장히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가 더 큰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려면 북한이 아니라 미국을 향해야 하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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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th JIFF daily
(20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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