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재스민>(Blue Jasm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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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디 앨런은 1935년 생으로 올해 나이가 78세다. 집에서 손자나 돌보며 소일거리를 할 나이에 그는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 중에 있다. 창작 속도 또한 놀랍다. <타이거 릴리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1966)로 연출 데뷔한 이래 약 1년에 한 편의 영화를 꾸준히 연출하며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영화는 또 얼마나 재미있는지, 최근 국내에서는 <로마 위드 러브>(2012) <미드나잇 인 파리>(2011) 등이 많은 사랑을 받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올해 우디 앨런이 내놓은 신작은 <블루 재스민>(2013)이다. 명품으로 온 몸을 휘감은 재스민(케이트 블란쳇)은 동생 진저(셀리 호킨스)를 만나기 위해 뉴욕에서 샌프란시스코로 넘어온다. 여기엔 좀 슬픈 사연이 있다. 상위 1%의 삶을 누리다가 남편이 사기 혐의로 체포되면서 재스민은 부와 명예를 모두 잃게 된다. 갈 곳이 없자 신세를 지기 위해 진저를 찾아왔던 건데 생활수준이 맞지 않는 탓에 불편하기만 하다. 그럴수록 자꾸 화려했던 옛 생각에 마음이 심란해지고 급기야 재스민은 혼잣말을 하기에 이른다.

그 어느 작품보다 <블루 재스민>이 팬들의 관심을 모은 건 오랜만에 뉴욕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뉴욕의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우디 앨런은 영국 런던에서 촬영한 <매치 포인트>(2005) 전까지 뉴욕이 배경인 영화만 만들어왔다. 그러다가 <매치 포인트>를 필두로 스페인 바르셀로나(<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 프랑스 파리(<미드나잇 인 파리>), 이탈리아 로마(<로마 위드 러브>) 등 유럽의 풍광이 배경인 작품에 집중하며 영화로 여행을 해왔다.

물론 이들 영화도 좋았지만 뉴욕이 배경인 작품들과 비교하면 좀 다른 면모가 있었다. 유럽을 떠돌며 만든 일련의 영화에는 이국적인 풍광, 즉 바르셀로나의 자유분방함, 파리의 고풍스러움, 로마의 로맨틱함이 도드라지면서 풍기는 일종의 여행자의 낭만이 존재했다. 뉴요커로서 뉴욕의 구석구석을 가감 없이 묘사했던 전작들을 생각해보면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 <미드나잇 인 파리> <로마 위드 러브>에는 우디 앨런의 작품치고 지나치게 아름답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블루 재스민>에는 그림엽서와 같은 배경도, 그에 푹 빠진 여유로운 감상의 기운도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신경질적인 뉴요커’라는 별명답게 80년 가까이 뉴욕에 살며 직접 겪고 깨달은 우디 앨런의 톡 쏘는 인생의 아이러니가 영화 전체를 관통하기 때문이다. <블루 재스민>의 주제를 거칠게 요약하자면, 인생은 자기 하기 나름이다. 뉴욕 상류층 출신의 재스민과 샌프란시스코의 허름한 차이나타운에서 생활하는 진저를 극명하게 대비시키지만 우디 앨런은 극과 극의 환경이 인생의 성공과 실패 여부를 결정하는 요소는 아니라고 말한다.

뉴욕의 상류층을 호령하다가 지금은 빈털터리가 된 그녀는 입버릇처럼 자신의 몰락이 남편을 잘못 만났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에 반해 언니처럼 화려한 외모도 고급스러운 취향도 갖지 못했지만 동생 진저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운명을 불평하는 적이 없다. 언니의 사기꾼 남편 때문에 전(前)남편과 헤어지는 불행을 겪었지만 재스민을 원망하는 대신 새로운 남자를 만나 다시 시작하는 것이 진저의 라이프스타일이다. 그런데 그게 어디 운명 탓일까. 남 탓만 하는 재스민은 바로 그런 성격 때문에 불행을 자초한 꼴이 되고 환경은 언니만 못하지만 그 안에서 작은 행복을 찾는 진저는 그래서 더 행복한 삶을 영위한다.

극적인 삶의 변화와 극명한 캐릭터 대비로 인생의 아이러니를 드러내는 방식은 우디 앨런의 장기다. 예컨대, <스몰 타임 크룩스>(2000)에는 재스민과는 정반대로 하층민이었다가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되는 레이(우디 앨런 본인이 연기했다!)라는 좀도둑이 등장한다. 이후 레이는 상류층의 삶과 교양을 익히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이지만 태생을 버릴 수 없었는지 그들의 비아냥거림만 살뿐 좀체 동화되지를 못한다. 그러다가 재산 관리를 하지 못해 다시 하층민의 위치로 되돌아오게 되는데 그제야 레이는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다.  

<블루 재스민>을 비롯해 언급한 영화들의 이야기는 한국 관객들에게는 꽤나 익숙한 것이기도 하다. 매일 같이 TV를 틀면 브라운관을 장식하는 막장드라마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진저와 함께 하는 생활이 자신과는 격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 재스민은 근사한 독신 외교관을 만나자 자신의 과거를 숨기고는 그와의 결혼을 꿈꾼다. 마침 결혼반지를 맞추러 간 자리에서 재스민은 타이밍이 기가 막히게 진저의 전남편을 만나게 되고 그 자리에서 과거가 폭로되며 외교관과의 인연이 끝을 맺는 식이다.

하지만 갖은 비난과 혹평 세례에 시달리는 막장드라마와 달리 우디 앨런의 영화는 매번 찬사를 받는다. <블루 재스민>만 하더라도, ‘우디 앨런의 최근작들 중 가장 훌륭하다.’, ‘지난 10년 간 우디 앨런의 작품 가운데 가장 강렬하고 날카롭다.’ 등의 호평을 받았다. 왜일까. 그는 막장 드라마를 다루되 자극적으로 묘사하는 대신 냉소나 조롱과 같은 시선으로 웃음을 제공하는 척 결말에서는 삶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로 우리의 인생을 다시금 돌아보게 만든다. 이는 우디 앨런이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블루 재스민>과 같은 걸작을 만들어내는 동력이면서 많은 이들이 그의 영화에 주목하는 결정적인 이유다. 우디 앨런이 내년에는 또 어떤 영화로 우리를 놀래줄 것인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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