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 분노의 기원을 찾아서

이번에 소개할 영화는 이 코너명인 ‘신나는’과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제목부터가, 무시무시해라, <분노>다. 그에 걸맞게 영화의 시작 배경 또한, 평범한 부부가 무참히 살해된 현장이다. 이런 영화를 신나게 볼 수 있다면 변태 같겠지만, 어떻게든 연결해 설명할까 한다.

원인인가, 결과인가 

문제의 살해 현장에 남은 단서는 단 하나. 벽에 피로 쓰인 ‘분노 怒’라는 글자다. 그리고 영화는 1년을 건너뛴 시점에서 세 개의 에피소드를 오가며 이야기를 진행한다. 요헤이(와타나베 켄)는 유흥업소에서 일하던 딸 아이코(미야자키 아오이)를 치바의 집으로 데려온다. 타시로(마츠야마 켄이치)는 요헤이의 밑에서 아르바이트로 항구 일을 하고 있는데 아이코와 사랑에 빠진다.

도쿄의 샐러리맨 유마(츠마부키 사토시)는 클럽파티를 즐기다 처음 보는 나오토(아야노 고)와 하룻밤을 보낸다. 별 연고가 없는 나오토를 집에 데려온 온 유마는 함께 동거하며 사랑을 나눈다. 오키나와로 이사를 한 중학생 이즈미(히로세 스즈)는 새로 사귄 친구 타츠야(사쿠모토 타카라)와 무인도를 구경하러 간다. 그곳에서 혼자 배낭여행 중인 청년 타나카(모리야마 미라이)를 만나 친구가 된다. 하지만, 타나카가 무엇을 하고 어디서 왔는지는 알 수가 없다.

배경이 서로 다른 세 개의 에피소드는 영화의 첫 장면에 등장한 살인 사건을 매개로 연결이 된다. 세 개의 에피소드는 겉으로 이어져 있지 않지만, 몇 가지 공유하는 지점이 있다. 타시로와 타츠야와 타나카는 모두 외지인이고 이름도 비슷한 데다 영화의 첫 장면에 등장한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의심받는다. 그러니까, 이 세 명 중의 한 명이 범인인 셈이다.

그렇다면 <분노>는 살인사건의 가해자를 찾는 이야기인가?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범인 찾기가 유일한 목적인 영화는 아니다. 제목의 ‘분노’가 어디서 혹은 어떻게 기인하는지에 더 관심이 많다. 재일동포 출신으로 일본에서 활동하는 이상일 감독(<훌라걸스> 등)은 그 전에도 비슷한 소재로 <악인>(2010)을 만든 적이 있다. <분노>와 같이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이 원작인 <악인>은 살인 사건을 다루되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가 악인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묘사한다.

이상일 감독의 전작 <악인>을 상기한다면 <분노> 또한, 어느 한 명의 가해자를 발본색원하여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구조가 아님을 파악할 수 있다. 왜 그와 같은 살인 사건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파고드는 <분노>는 믿음과 불신의 동전 양면을 오가며 분노의 메커니즘을 파헤친다. 에피소드별 사랑하는 관계를 중심에 두면서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는 심리적 상황을 첨가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랑에 있어 둘의 관계는 완벽한 구도이지만, 그 사이에 누군가 개입하면 사랑 이외의 감정이 난무하는 상황이 펼쳐지고는 한다. 요헤이는 타시로의 지난 행적이 불분명하여 딸 아이코가 불행해지지는 않을까 마음에 걸린다. 엄마가 오랫동안 병원에서 요양 중인 유마는 사람 사이의 관계가 언제 끊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나오토와의 사랑에 온전히 집중할 수가 없다. 타츠야는 정체불명의 타나카와 어울리는 이즈미를 불안한 눈길로 바라본다.

그에 따르는 선택은 온전히 개인의 문제로 환원된다. 영화는 이런 상황에서 믿음과 불신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의 약한 고리를 주목하여 이야기의 핵심으로 삼는다. 극 중 대사를 빌려 말하자면, “네가 어떻게 말하던 받아들이는 건 나의 몫이다.” 문제는 그 선택이 최악으로 몰릴 때다.

믿음이냐, 의심이냐

모든 에피소드의 커플 관계가 무르익을 때쯤 경찰은 살인 사건 용의자의 구체적인 인상을 언론을 통해 공개한다. 용의자의 생김새를 보니 눈매는 타시로를, 얼굴의 점은 나오토를, 전체적인 인상은 타나카와 닮았다. 이를 본 요헤이 부녀와 유마와 타츠야의 반응은 당연히 한결같아서 일단 사실을 부정하는 가운데 한편으로 실제 살인자이면 어떡할까, 고민을 숨길 수가 없다.

상대에 대한 불신은 자기 내면에 침전해 있는 불안감의 거울상이기도 하다. 예컨대, 가출을 밥 먹듯 하며 유흥업소에서 일했던 딸의 행각에 여전히 마음고생이 심한 요헤이는 아이코의 불행을 전제하며 사는 듯한 인상을 준다. 아이코가 과연 번듯한 남자를 만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딸이 좋아하는 타시로도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요헤이는 아이코 몰래 타시로의 뒷조사를 해보니 이름을 바꿔가며 떠도는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때 마침 우연히 보게 되는 살인 사건 용의자의 인상착의. 아버지는 타시로가 바로 그 살인자가 아닐까 강하게 의심을 한다.

가까운 사이에 형성되는 믿음은 굳건한 것 같아도 실은 살얼음 못지않아서 의문이라는 감정이 무겁게 발을 디딛는 순간 깨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말로는 믿음을 연발하고 거기에 기대어 살아가려 해도 이는 역으로 그 믿음이 얼마나 얄팍한지를 드러내는 자기 부정과 같은 것이다. 가족이나 연인과 같은 가까운 사이에 의심의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이를 견디기 힘들어 상처받고 도망치는 패턴을 반복한다. 적어도 이 영화 속 아이코와 유마의 경우가 그러한데 이들은 잘못된 선택의 결과로 스스로를 경멸하고 이를 분노의 감정으로 전이해 자신은 물론 주변까지 파괴한다.

이 영화는 ‘분노’의 기원을 믿음과 불신 사이에 피어나는 의심에서 찾는다. 에피소드마다 배경이 다르고 등장하는 인물이 많은 것, 이는 <분노>가 다루는 분개하여 크게 화를 내는 감정이 특정인의 것이 아닌 모든 인간에게 해당하는 사항임을 우회적으로 드러낸다. 해결책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말한다는 건 쉽지 않다. 분명한 건 믿음의 회복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될 때 웃고 떠들며 즐길 수 있는 ‘신나는’ 것들을 도모할 수 있다. 그렇다. 내가 ‘신나는 씨네’ 코너에 전혀 신나지 않은 영화 <분노>를 신나게(?) 떠들어대며 선택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KDI 나라경제
‘신나는 씨네’
2016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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