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살인의 추억>을 추억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봉준호 감독에게 2003년은 남달랐다. <살인의 추억>이 전국 54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 감독의 반열에 올랐기 때문이다. 장편연출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2000)가 서울 관객 5만 명 정도를 동원한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변화였다. 봉준호 감독에게 <살인의 추억>은, 그리고 2003년의 한국영화와 산업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을까. <설국열차> 미국 개봉 준비를 위해 뉴욕에 머물고 있는 봉준호 감독이 음성 녹음 파일에 답을 담아 보냈다.

미국 뉴욕은 무슨 일로 방문하셨나요? <설국열차> 미국 개봉 건 때문인가요?
여러 가지 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설국열차> 미국 개봉과도 관련이 있고요. 와인스타인 컴퍼니 홍보팀과 배급팀 사람들을 만나고 있어요. 미국에서도 <설국열차>의 디렉터스컷을 그대로 개봉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뉴욕에 온 또 하나의 이유는 틸다 스윈튼 때문입니다.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틸다 스윈튼의 특별 회고전 행사가 열리고 있는데요. 틸다 스윈튼은 <설국열차>의 엄청 큰 서포터입니다. 프랑스의 개봉 프로모션 때도 와줬고 내년 2월에 있을 일본 개봉 때도 함께 해주겠다고 했습니다. 바쁜 일정 중에 그렇게 해준 게 고마워 저도 마땅히 틸다 스윈튼 회고전에 예의를 갖춰서 참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윌포드 역의 애드 해리스가 지금 뉴욕에서 연극 공연을 하고 있어서 관람도 했습니다. 정말 알차게 보내고 있습니다. (웃음)

<살인의 추억>이 올해로 10주년이 되었습니다. 한국영상자료원에서 10주년 기념 상영회를 갖기도 했는데요. 그렇기 때문에 더욱 감회가 새로웠을 것 같습니다.
벌써 10년이 흘렀나? 참 세월이 빠르다는 생각이 드네요. (웃음) 그와 동시에 차라리 20주년 때나 30주년 때 이런 행사를 할 걸, 10주년은 너무 짧은 거 아닌가 하는 쑥스러운 생각도 했습니다. 모든 감독들에게는 자신의 영화가 세월을 이겨내면서 클래식이 되었으면 하는 꿈이 있어요. <살인의 추억>이 10년 정도의 세월을 이겨나가고 있는 것 같아서 뿌듯했습니다.

한국영상자료원에서의 기념 상영회에는 감독님을 비롯해 배우님, 스태프님, 제작자님 등이 정말 대거 모이셨는데요. 그 때문에 고인이 되신 이강산 조명감독님의 생각이 더욱 간절했을 것 같습니다.
배우 분들이 아주 많이 오셨었어요. 김상경, 송강호, 김뢰하, 송재호, 변희봉, 류태호 등등 오랜만에 뵙는 선배님과 배우 분들이어서 되게 반가웠어요. 이강산 조명기사님은 뛰어난 아티스트셨지만 그걸 떠나서 함께 일하신 분들은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하실 텐데 법 없이도 사실 만큼 선한 분이셨어요. <살인의 추억>에서는 보일러 수리공으로 출연도 하셨어요. 지하 취조실의 송강호 배우 뒤에서 천연덕스럽게 보일러를 고치는 연기를 하셨는데 그 장면을 보면서 가슴이 찡했습니다.  

장편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가 흥행에서는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는데요. 만약 지금의 산업 분위기였다면 두 번째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 상대적으로 더 힘들었을 것 같아요.
그 당시 제작사 싸이더스, 그리고 제작자 차승재 대표님 덕분에 저는 두 번째 영화를 수월하게 만들었습니다. 행운이었던 것 같고요. ‘<플란다스의 개>는 거쳐 가는 과정이다. 두 번째 영화에서 오히려 네가 뭘 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영화를 위해 <플란다스의 개>에서는 네가 하고 싶은 걸 모두 하게 놔두었다.’ 라는 식의 컨셉이 차승재 대표님에게 있었습니다. (웃음) 그 분의 스케일이었던 거죠. 그 안에서 제가 <살인의 추억>을 힘 있게 준비할 수 있었고요. <괴물>(2006)의 제작자인 청어람의 최용배 대표님은 <플란다스의 개>가 흥행에 실패를 했지만 이 영화를 되게 좋아하셨었어요. 최용배 대표님께서 흥행 성적과 관계없이 “난 <플란다스의 개>를 좋아한다, 두 번째 영화를 같이 하자.” 그런데 제가 <살인의 추억> 계획이 있다고 하니까, “그럼 내가 기다리겠다, 세 번째 영화는 나와 하자” 계약을 해주셨어요. 저야 첫 영화가 흥행에 실패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제안을 해주시니 너무 감사했죠. 정신적으로 큰 힘이 됐어요. 요즘 같은 경우는 산업이 더 냉혹해진 면이 있어서 젊은 감독들은 저와 같은 행운을 갖기가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생각에 안타까워요.

2003년 당시 싸이더스에서는 <살인의 추억> <지구를 지켜라!>와 같은 창의적인 작품이 연달아 제작이 되었어요. 싸이더스의 분위기는 어땠나요?
그 당시 싸이더스의 슬로건이라는 게 ‘영화 공장’이라는 개념이었어요. 회사 안에 벌집처럼 방들이 쪼개져 있는데 각자의 방에서 감독과 연출부들이 머리를 싸매고 경쟁적으로 열심히 준비를 하는 거죠. 어느 팀은 이제 연출부 출근한다, 본격 프리프로덕션이다, 촬영 들어간다, 다 찍고 이제 방 뺀다. (웃음) 회사 내에서 아주 에너지가 넘쳤던 기억이 납니다.  
아무래도 차승재 대표님과 같은 제작자 분이 있었기에 창의적인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예, 맞아요. 싸이더스 외에 한국영화산업 업무에도 적극적이셔서 워낙 바쁘셨기 때문에 대표님 얼굴 한 번 보는 게 쉬운 게 아니었습니다. 주연배우 캐스팅 시점이라든가, 시나리오가 그린라이트, 레드 라이트, 그러니까 들어간다, 안 들어간다, 결정할 때 뵙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 당시 싸이더스에서 했던 시스템인데 작품 별 프로듀서가 예산에 대한 부분이라든가 이런 저런 결정 권한을 가지고 있었어요. 차승재 대표님이 전체 회사를 꾸려나가는 가운데 프로듀서들에게 권한이 나눠져 있었던 효율적인 시스템이었던 거죠. 차승재 대표님과 작품에 대한 시시콜콜한 얘기를 많이 나눴다기보다는 당시 싸이더스에 있었던 감독들의 디딤돌내지는 반석 같은 존재였달까.  

2003년 개봉했던 한국영화 중에 감독님에게 가장 강한 인상을 남겼던 작품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개인적으로는 이수연 감독님의 <4인용 식탁>이라는 작품이었어요. 새로운 공포라는 점에서 인상적이었는데 그분께서 이후에 두 번째 영화를 찍으셨는지, 소식이 뜸하네요.  

2003년과 2013년의 한국 영화 산업을 비교할 때 감독님이 느끼는 가장 크게 변화한 지점은 무엇인가요?
<살인의 추억> 개봉 당시 상영관 숫자가 200개 정도였을 거예요. 2~3개월 정도 상영을 해서 540만 정도 되는 흥행을 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반면 2013년에 개봉하는 메인 스트림 영화들을 보면 극장 개봉관 수가 5~600개, 블록버스터 영화들의 경우, 8~900개까지 가는, 그렇지만 상영되는 기간은 훨씬 짧아졌지요. 모든 것이 덩치는 커지고 호흡은 짧아진 것 같습니다. 그것이 과연 좋은 것인지는 모르겠네요. 여러 영화들이 200개 정도의 상영관을 가지고 길게 오랫동안 극장에 걸려있는 것이 영화문화 상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감독님의 차기작에 대한 윤곽은 언제쯤 구체적이 될까요?
계속 고민 중입니다. 한국어 영화와 관련한 저의 오리지널 아이디어가 두 가지 정도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습니다. 조금씩 발전을 시켜나가고 있는 중이고. 최근에 미국 쪽 에이전시에서 제안 받은 유명 범죄 소설가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시나리오를 검토 중에 있습니다. 근데 아직 마음을 결정하지는 못했습니다.

맥스무비 매거진
2013년 12월호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