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려진 대로 <변호인>의 ‘송변’ 송우석은 노무현 전(前)대통령의 1980년대 변호사 시절을 모델로 했다. 그럼 이 영화는 고(故)노무현의 과거를 추억하는 작품인가? 아니다. <변호인>은 더 큰 틀에서 현재에 대한 이야기를 펼친다. 가령, 송우석의 이름이 송강호의 ‘송’과 감독 양우석의 ‘우석’을 합친 이름인 것처럼 특정 인물이라기보다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를 대표한다.
이 사회는 현재 보수와 진보가, 기성세대와 청춘이 양분되어 서로 반목하는 형국이지만 더 많은 이들이 그와 상관없이 중도(?)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이념과 정치에 휩쓸리기보다 어떻게 하면 더 잘 살 수 있을지, 부의 가치를 좇는 데 여념이 없다. 그런 중간자의 삶을 대표하는 것이 바로 <변호인>의 송우석이다.
그는 고졸 출신의 입지전적인 변호사이지만 등기를 전문으로 하며 1980년대 불어 닥친 부동산 붐에 편승, 남부럽지 않은 삶을 영위하게 된다. 자각의 순간이 찾아오는 건 잘 아는 학생이 무고하게 빨갱이 혐의를 받아 인권이 유린되는 현장을 직접 목격하면서다. ‘상식’이라고 믿었던 세계가 무너지자 이를 수호하기 위해 ‘인권’ 변호사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건 꼭 1980년대의 상황에 대한 묘사가 아니다. 불온서적(이라고 정부가 임의로 지정한 책)을 읽었다고 빨갱이로 몰리고 그런 이들을 변호했다고 종북주의자로 매도되는 극 중 묘사는 2013년의 한국의 현실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 영화는 무너진 상식을 직접 경험하며 부에서 상식으로의 가치로 전향(?)하는 송우석의 변화를 통해 거대한 질문을 제기한다. ‘역사란 무엇인가?’ 혹은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인가?’
<변호인>이 혹시라도 개봉 후 ‘빨갱이 영화’라고 마녀사냥식의 비난이 이어진다면 우리 사회는 여전히 과거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호인>은 마지막 장면을 통해 상식을 뒤에서 굳건히 지키는 많은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희망의 찬가처럼 제시한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변화를 바란다면 함께 행동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맥스무비
(2013.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