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세이돈>(Poseidon)


<포세이돈>은 <특전 U보트>, <퍼펙트 스톰>에 이은 볼프강 페터슨 감독의 물벼락 3부작의 대미를 장식하는 작품으로, 재난영화의 원조 할머니 <포세이돈 어드벤처>를 재활용한 영화다.

결과는? 그 컨셉에 걸맞게 포스터도 뒤집어가며 기대를 모았건만, 이에 그치지 않고 원작의 감동도, 영화의 재미도, 감독의 명성도 모두 뒤집기 한 판하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스토리는 아시는 바 그대로다. 우리의 용감한 쥔공들이 불의의 물벼락을 맞고 좌초된 호화 여객선 포세이돈 호(號)에서 탈출을 감행, 십년감수한다는 것. 그리고 여기에 한마디만 덧붙이자면, 이게 전부 다 라는 것.

다시 말해, 당 영화는 원작 <포세이돈 어드벤처>에서의 이기적인 인간본성 및 숭고한 희생정신 따위(?)의 스피릿은 저 멀리 나빌레라 안녕을 고하고 있다. 그리고 재난에 허덕이는 쥔공들의 롯데월드 자이로드롭 필의 ‘어드벤처’만 살리고 있는 형국이다.

그래서 <포세이돈>은 물벼락 빼면 모 하나 제대로 보여줄 게 없는 영화다. 물론 이 대목에서 “물벼락 영화가 물벼락만 보여주면 되지 더 바라는 게 나쁜 놈” 등의 씨바거림이 나오는 거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그마저도 초반에만 반짝, 전체적으로 재미가 그리 뛰어난 편이 아니라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물벼락 장면이 그 자체로 힘을 얻기 위해서는 이를 받쳐주는 스토리가 따라야 하는 법. 멀리 볼 것 없이 볼프강 페터슨의 전의 전의 작품 <퍼펙트 스톰>만 해도 그렇다. 쥔공 어부들의 경제적 빈곤이라는 삶의 애환이 밑바탕 됐기땜시롱 영화의 물벼락은 미쳐 날뛰는 그 위력을 십분 발휘할 수가 있었던 거다.

그에 반해 당 영화의 그것은 앞썰했듯 뒷받침 되는 스토리나 캐릭터의 사연일랑 애초부터 키울 생각이 없다. 그저 우연히 나타났다 스치고 가버린 너무도 야속한 물벼락만 있을 뿐. 그리고 그에 따른 재난에 기계적으로 대응하는 개성 빵점의 캐릭터만 있을 뿐. 그런 건 디스커버리 다큐멘터리 채널에서 돈 안주고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거잖아. 그러니 재미없을 수밖에.

사연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근데 그 사연이란 게 또 존나게 골 때린다. ‘백인을 따르라!’. 안 그면? ‘뒈진다’. 말 그대로다. 당 영화에서 백인의 뜻을 거스르는 인간은 절대네버결단코 살아남지도 탈출에 성공하지도 못한다.

규칙을 무시하고 탈출을 감행하는 우리의 백인 어르신들에게 질서에 순응하라며 겐세이놓은 ‘흑인’ 선장은 자리를 지킨 죄로 삐리리. 백인 어르신 가는 앞길에 함께 나선 ‘히스패닉’ 주방장은 거추장스럽다며 또 삐리리. 오로지 살아남는 건 무모한 탈출을 주장하고 성공률 0%의 탈출을 감행하여 기어코 탈출에 성공하는 위대하고 또 위대하신 백인 뿐.

유색인종은 빈대떡 뒤집듯 생까고 신사도를 발휘하는양 여자와 아이는 무슨 일이 있어도 챙기는 이 무지막지한 백인영웅주의. 그래서 원작영화의 성직자 주인공은 당 영화에 이르러 권위주의적 가부장으로 재탄생한다. 그저 기가 막힐 따름. 하긴 백인들 이렇게 각박할 수밖에 없다. 요즘 미국 나라 꼬라지 바바라. 대통령 주도하에 남에 나라 침략한 죄루다가 국민들이 고통 받으니 그 화풀이를 지네 나라에 살고 있는 유색인종들에게 대신 하고 있잖냐. 영화가 이따구로 만들어지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거다. 백인 아니면 다 없애버린다 이거지 모.

한마디로 당 영화, 별루 정 안가는 블록버스터다. 물론 이런 거 따지지 않고 재난 보는 거에만 만족한다면야 본 특위 할 말 없다. 하지만 아무리 훌륭한 씨쥐도 이야기와 맞부딪혀야 소리가 나는 법이거늘 <포세이돈>은 이래저래 별로 추천하고 싶은 영화 아.님.이.다.

그런 전차로 워스트 주녀에 뽕한다.


(미게재)

2 thoughts on “<포세이돈>(Poseidon)”

  1. “백인을 안 따르면 뒈진다.”올인! 그러고보니까 여자도 히스패닉계만 죽는구만요. 근데 난 보면서 왜 그런 생각을 못한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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