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이 포 벤데타>(V for Vendetta)


<매트릭스>의 워쇼스키 브라더스가 납셨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워 브라더스는 <매트릭스> 시절 조감독을 맡았던 제임스 맥테이그를 감독 자리에 앉히고 지들은 시엄마처럼 잔소리하는 위치에 서서 제작과 함께 영화의 각본을 맡았다.

각본을 맡은 이야기는, 앨런 무어와 데이비드 로이드 콤비가 각각 대본을 쓰고 그림을 그린 영국산(나중에는 미국의 DC코믹스에서 연재한) 그래픽 소설 <브이 포 벤데타>. 장르는 <매트릭스>에 이어 역시 에쑤에푸. 또 역시 가상현실에 대한 스토리로, 또또 역시 스미스 요원으로 출연했던 휴고 위빙이 주연을 맡아, 또또또 역시 혁명에 대해 얘기한다.

2039년, 3차 대전으로 미국이 공중분해된 그 자리를 대신해 세계 최강국이 된 영국에는 독재정권이 들어서 강력한 통제사회를 구성하고 있다. 이때 자신의 얼굴을 가면에 숨긴 채 바람처럼 홀연히 나타난 시대의 반항아 ‘V(휴고 위빙 분)’. 그리고 순한 양으로 살다가 V를 만나 어찌저찌해설랑 듀오로 함께 세상에 반항하게 되는 ‘이비(나탈리 포트만 분)’.

<매트릭스>가 머리에 쥐나는 스토리로 악명을 떨쳤던 것에 반해 <브이 포 벤데타>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을 무대로 여기에 미국 코믹스 특유의 세상과 불응하는 영웅 스토리를 합체하여 좀 더 알아먹기 쉬운 이야기로 개비하였다. 그래서 거대한 체제를 전복한다는 설정은 일맥상통하지만서도 당 영화가 은유하는 대상은 존나 직접적이다.

3차 대전을 주도한 미국을 언급하는 건 지금의 전쟁광 미국에 기반을 둔 설정이며, 미치광이 정치가에 의해 한 사회가 공포정치 및 미디어 조작 등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는 영화 속 사실은 현재 미영 주도의 패권주의 시스템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이를 위해 영화는 셔틀러(존 허트 분)라는 인물과 ‘정신집중캠프’를 통해 히틀러의 나치즘과 유대인 학살을 끌어와 에쑤에푸 영화 특유의 암울함을 화면에 담아내고 있다. 비관적인 미래상을 그려낼 때면 의례히 써먹는 판에 박힌 설정이지만 역사는 돌고 도는 법. 그런 익숙한 설정이 지금의 현실에 대입해 유효하다는 점에서 여전히 의미 있다고 하겠다.

때문에 당 영화의 V를 앞세운 이야기는, 개인 vs 개인의 대결 또는 개인적인 상황에서의 고뇌 모 이딴 거를 다뤘던 기존의 슈퍼 히어로 장르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점에서 색다른 재미를 주고 있다. 허나 골 때린 건, 당 영화가 독재자에 의해 다수가 지배되는 사회를 비판하면서 V 역시 똑같은 논리로 셔틀러 정권을 무찌른다는 것. 이것이 바로 자신들을 세계의 영웅으로 알고 있는 슈퍼 히어로 만화 아니 미국 영화가 가지는 근본적인 한계가 아니겠나.

더 큰 문제는 과연 <매트릭스>를 염두에 두고 오는 관객의 기대를 <브이 포 벤데타>가 과연 어느 정도나 충족시켜 줄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기발한 설정과 철학적인 이야기를 기대하고 오는 관객이라면 당 영화의 비교적 단순한 설정과 직접적인 이야기가 실망스러울 테고, ‘슝슝 날아오는 총알 림보 자세로 피하기’에 버금가는 액숑장면을 기대하고 있다면 당 영화의 쉭쉭 바람을 가르는 칼싸움 장면이 다소 심심하게 느껴질 것임은 너무나 자명한 터. <매트릭스> 시리즈가 워낙에 쎘어야 말이지.

하지만 <매트릭스>에 대한 기대치를 37%만 덜어낸다면, 더군다나 가면에 자신의 얼굴을 맡긴 채 영화 내내 정체를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중저음의 묵직한 목소리만으로 열연을 펼치는 휴고 위빙의 연기와 나탈리 포트만의 빡빡 투혼을 감안한다면 당 영화 그렇게 재미없는 영화는 아니다 모.

그리하여 본 특위는 <브이 포 벤데타>를 베스트 주니어에 봉한다.


(2006. 3. 13. <딴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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