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 컨츄리>(North Country)



그 곱디고운 세숫대야를 <몬스터>에서 괴물(?)로 찌그러뜨리며 기염을 토했던 샤를리즈 테론. 그 여세를 몰아 당 영화 <노스 컨츄리>에서는 마빡, 뺨따구 할 것 없이 온통 검댕으로 떡칠하며 원 모 타임 과감한 변신을 꾀했다.


이번에 변신한 종목은 광부. 허나 누가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고 했던가. 그 때문에 그녀는 당 영화에서 덜떨어진 서서쏴들에게 단체로 죄인취급 받게 생겼다. 왜와이뭐땀시?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남편의 주먹을 피해 미네소타로 피신온 제시 에임즈(샤를리즈 테론 분). 쩐을 두둑이 준다는 이유로 광산에 취직하나 마초로 득시글거리는 그곳에서 그녀는 노리개감이자 서서쏴의 일자리를 강탈하는 나쁜뇬이고 회사의 기강을 해치는 똘아이. 계속되는 성희롱이 개인을 넘어 회사차원에서 이뤄지자 제시는 끝내 이들을 고소한다.


당 영화는 지난 1984년 발생한 미국 최초의 사내 성폭력 소송 승소 사건인 ‘에벨레스 광산(Eveleth Mines)’ 건을 밑밥으로 구성되었다.


그래서 <노스 컨츄리>는 제시가 법원에서 진술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과연 그녀에게 어떤 일이 벌어져설랑 이런 꼬라지에까지 이르게 되었나 질문을 던지는 거다. 이에 대한 답변으로 영화는 제시가 회사의 서서쏴들에게 당했던 모욕적인 일들을 진술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니,


‘조개’로 불리는 것은 예사요 허구한 날 그녀의 몸뚱이는 성희롱에 속수무책이고 이에 대한 불만을 회사 측에 씨바거리면 ‘앉아쏴 주제에’ 소리나 듣고 개무시 당하기 일쑤며 이에 함께 분노하고 저항해야 할 아버지와 동성동료마저 그녀에게 등짝을 돌린다.


그러니까 당 영화의 목적은 이거다. 우리가 잘 알고 있지만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쉬쉬하고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던 여성 차별에 대한 문제를 실제 사례를 들어 이슈화하는 것. 이 과정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이 단지 조직내의 문제가 아니라 이웃과 동료 심지어 가족까지 사회 전반에 걸쳐 퍼져있는 편견에서 더욱 상처 입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노스 컨츄리>는 이에 그치지 않고 제시가 온갖 고난과 역경과 방해와 모든 조까튼 것들을 뚫고 승리를 이끌어내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그 자신 또한 여성인 니키 카로 감독은 여기에 덧붙이길, 이것이 차별철폐의 완결형이 아닌 첫걸음,  즉 사회의 편견이 없어지는 그날까지 여성이 연대하는 것은 물론 남자를 가르치고 또 그들의 도움을 받아 계속해서 노력해야 한다고 영화의 마지막을 빌어 강조한다.


아쉬운 건 그런 제시의 행동을 더욱 극적으로 보이게끔 영화가 과도하게 미화하는 경향이 짙다는 사실. 그녀의 행동이 박수 받아 마땅한 행동이란 건 다 아는데 굳이 제시는 절라 위대했다 만만세삘로 오바까지 할 필요 모 있냐.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당 영화가 주는 교훈이 퇴색하는 건 아니다. 특히 성희롱 문제로 한창 시끄러운 요즘 <노스 컨츄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남다르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어이~ 딴나라당 최여니 우원. 어디 짱박혀 시간 끌 생각 하덜말고 얼렁 컴백해설랑 당 영화 보면서 조짭고 조빠지게 반성하시라!


그런 전차로 본 특위는 당 영화를 베스트 주니어에 봉한다.


(2006. 4. 24. <딴지일보>)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