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류승완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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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의 류승완 감독을 만났다. 본 기자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힘들게 이뤄진 자리였다. <베를린>이 그동안 한국에서는 좀 체 볼 수 없었던 수준급의 첩보물로 알려지면서 그에 대한 언론의 관심이 높아졌다. 항간에 알려진 것처럼 <베를린>은 첩보영화다. 냉전시대의 상징적인 장소였던 베를린에서 벌어지는 남북한 첩보원, 즉 남측의 정진수(한석규)와 북측의 표종성(하정우), 련정희(전지현), 동명수(류승범) 간의 대결이 전면에 나서는 것이다. 그런데 첩보물로 시작한 영화는 멜로물을 거쳐 서부극으로 수렴되는 구조를 갖는다. 감정이라고는 에누리 없는 인물들이 사랑의 감정을 느끼면서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고 가족 이데올로기를 품고 있는 서부극 무대에서 생존을 위한 최후의 대결을 펼치는 것이다.  
몇 번의 요청 끝에 성사된 인터뷰는 <베를린>의 개봉 둘째 날(1/30)이었다. 이미 개봉 전 예매율이 70%를 상회할 정도로 <베를린>에 대한 영화 팬들의 관심은 높았지만 류승완 감독은 이를 잘 실감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워낙 흥행 수치에 대한 개념이 희박할뿐더러 <베를린> 촬영 현장에서 쌓인 피로감이 여전히 해독되지 않은 인상이었다. 언론시사회 이후 연일 계속되는 인터뷰 일정으로 지친 기색도 역력했다. 그래서 이번 인터뷰는 자연스럽게(?) 영화 <베를린>에 대한 이야기보다 감독 류승완에 초점이 맞춰졌다. 이는 결국 <베를린>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류승완 감독의 심정이 <베를린>에 고스란히 반영되어있는 까닭이다.

류승완 감독은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새로 구입한 스마트 폰에 본 기자의 전화번호를 입력했다. 실제로 그는 인터뷰를 위해 만나는 기자들의 사진을 일일이 스마트 폰으로 찍고 전화번호를 입력하기로 유명하다. 그리고 해당 기자의 관련한 기사가 나올 때면 직접 고맙다는 문자를 보내기도 한다. 영화가 비록 산업이라는 시스템 하에서 규모의 경제학으로 이뤄지는 것이기는 하지만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와 같은 류승완 감독의 철학은 <베를린>에서도 감지된다. 그와의 인터뷰는 겨울 날씨답지 않게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던 1월 30일 삼청동에 위치한 어느 조용한 카페에서 약 45분 동안 이뤄졌다.    
 

<베를린>은 어떤 영화?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고요?
배우들이 바빠서 제가 대신 ‘앵벌이’를 하고 있죠. (웃음)

기자와 평론가들의 평도 굉장히 긍정적이에요. 
일반 평은 갈려요. 모니터 시사회를 하면서 충격을 받은 게 김정일, 김정은을 몰라요. 스파이들에 관심이 있어서 처음에는 산업스파이 얘기를 하려고 했는데 이럴 거면 스마트 폰에 장착된 3D 액정을 빼내는 이야기를 할 걸 그랬어요. 냉전 이후 스파이 얘기보다 더 관심이 많지 않았을까. (웃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모르더라고요. 그래서 <베를린> 시작과 함께 인물 소개하려고 자막 넣고 그랬잖아요.

감독님 세대와 달리 관객층의 주요 관심사가 달라져서일까요?
이를 테면, 우리 세대는 (기자 주_참고로 류승완 감독은 1973년생이다.) 어려서부터 김형배 화백의 <20세기 기사단> 같은 걸로 단련이 되어 있잖아요. 그리고 1990년대 이후 구(舊)소련이 붕괴하는 걸 보면서 군부와 마피아가 결탁해서 무기를 빼돌린다, 북한과 무기 장사를 한다, 이런 게 상식처럼 되어 있는 사람들이란 말이죠. <베를린>은 그와 같은 상식 안에서 벌어지는 세계라 관객들이 인물들을 따라가는 게 쉬울 거라 판단했어요. 근데 이게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세계와 다를 바가 없는 거야. <베를린>의 북한을 중간계보다 더 몰라. (웃음)  
 
첩보물로 시작하지만 멜로물의 성격도 굉장히 강해요. 안 그래도 첩보물에서 멜로는 정체성을 확인하는 가장 중요한 감정이잖아요. 그런 점에서 복잡할 수도 있는 <베를린>의 이야기가 명확해지는 지점이라고 생각했어요.  
<베를린>을 찍고 나서 편집실에 있다 보니, 어쩌면 내가 멜로드라마를 만들려고 했던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예컨대, 존 르 카레(기자 주_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의 저자)의 첩보소설 속 인물들을 보면 스파이라는 직업에 종사하기 때문에 갖는 딜레마가 나와요. 거기서 가장 큰 게 사랑이란 말예요. 사랑은 감정 중에서도 가장 명확한 지점이잖아요. 내가 스파이로 활동하는 동안 누군가와 사랑에 빠졌는데 그 혹은 그녀가 사랑을 하는 대상은 위장을 한 나인 것인가? 아니면 이 위장을 걷어낸 상태의 나인 것인가? 거기서 혼란을 느끼는 거예요. 나의 본질은 스파이가 아닌데 이걸 거둬내고 나면 순수한 사랑이라는 감정이 내 안에서 나오게 되는 거죠.

이 장르는 시스템에 버림받은 개인이 주인공으로 종종 등장하잖아요. 그런 점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는데요. 인간병기에서 인간으로 각성하는 순간이 바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낄 때예요.
인간임을 인정하면 인간병기일 수밖에 없는 자신의 직업적 선택에 딜레마를 갖게 되죠. 그게 굉장히 매력적인 순간이잖아요. 근데 표종성과 련정희의 경우처럼 단순히 연인 관계가 아니라 항상 거기 있다고 생각한 사람을 의심하기 시작하면서 질문의 방향이 달라진다는 거예요. 내게 이 남자는 어떤 의미지? 이 여자는 나에게 어떤 존재지?

그런데 지금 많은 언론들은 ‘나는 누구인가?’를 의심하는 <본> 시리즈를 <베를린>과의 직접적인 비교 대상으로 삼고 있죠?  
제가 인터뷰를 하다가 굉장히 재미있는 해석을 들었어요. 전(前) 영화월간지 <스크린>의  김형석 편집장은 근본적으로 이 영화가 <본> 시리즈와 다르다고 생각한데요. <본> 시리즈는 끊임없이 ‘내가 누구인가?’를 묻는 얘기잖아요. <베를린>은 ‘너는 누구냐?’를 묻는 영화라는 거예요. 그 해석이 너무나 신선해서 내가 다른 인터뷰 때 써도 되냐고 허락을 받았어요. (웃음).

그런 맥락에서 <베를린>의 초반 장면을 보면, 표종성이 연루된 불법무기거래 현장 습격이 실패로 돌아가자 베를린 주재 국정원의 현장팀과 기술팀이 서로의 실수를 떠밀려고 하죠.
무슨 문제가 생겼을 때 스스로한테 안 찾고 타인과 주변에서 찾으려는 사람들인 거죠. 제가 볼 때 그들은 그들이 하는 일과 욕망도 잘 모른다고 생각해요.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자기 욕망에 충실한 사람은 동명수밖에 없어요. 나머지 사람들은 신념이라는 보이지 않는 가치를 가지고 자기를 희생하면서 살아가요. 신념이라는 건 끝까지 지켜야 하는 절대가치를 위해 욕망을 철저히 누르면서 자기를 희생시켜야 성립하잖아요. 동명수는 자기 욕망이 신념보다 앞서는 인물인 거죠. 가장 솔직하게 자기 얘기를 해요. 근데 정진수가 자기 욕망을 드러내는 가장 유일한 상황이 생일날 미역국 찾는 거 말고는 없어요. 그때를 제외하면 자기 욕망을 드러내는 대신 위악을 떤단 말이죠. 결국 <베를린>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못하게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자기 얘기를 하려는 순간 너무 늦어버렸다고 깨닫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어요.

첩보물의 장르를 빌리고 있지만 사실은 조직 안에 속한 사람들의 얘기를 하고 싶었다는 의미로 들려요.  
장르의 컨벤션으로 보자면, <무간도>(2002)는 스파이영화이고 <베를린>은 스파이영화가 아니에요. 근데 <베를린>에는 스파이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등장한다는 말이죠. 다만 이 사람들도 자신들의 삶이 있을 거 아니에요. 저는 그동안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하는 이들의 사연을 다뤘어요. 그러면서 일 이면의 세계가 영향을 미치는 것들에 관심을 가졌는데 <베를린>에서는 사랑이었던 거죠. 저도 그게 왜 그랬는지 정확하게 설명은 안 돼요. 나이를 먹어서 그런 건가, 제가 설명할 수 없는 저의 심리적인 상태가 반영이 된 거 같아요.

감독 류승완의 고민은?

이런 종류의 첩보영화에서는 국가에 이용당하는 개인의 처지를 은유하기 위해 체스판과 같은 미장센을 자주 사용하는데요. <베를린>에는 그런 것들이 보이지 않아요?
저는 그런 식으로 미장센을 구축하지 않으려고 해요. 공간을 재현하려는 상태에서 뭔가를 하는 거지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게 꼭 잘난 체 같고 재미가 없어요. 그런 걸로 게임을 벌이면 뭐해요. 게다가 요즘 관객들은 숨은그림찾기 하는 방식을 재미없어 해요. 대신 나를 즐겁게 해줘, 나를 울려줘 그런 것 같더라고요. 저는 3D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다만 마틴 스콜세지의 <휴고>(2011)는 정말 끝내줘, 무릎 끓었어, 엄청 좋더라고요. 근데 박찬욱 감독님이 마틴 스콜세지를 만난 거예요. <휴고>가 흥행에 참패하고 그럴 때인데 스콜세지가 박 감독님을 붙잡고 ‘앞으로 어떻게 영화를 만들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대요. 오늘도 아침에 나오면서 집사람(기자 주_<베를린>을 제작한 ‘외유내강’의 대표)하고 우리 어떻게 영화를 만들어야 하지 그랬거든요. (웃음)

10년 전과 비교하면 관객들이 정말 많이 변했죠?
뭔가 변했다는 생각은 들어요. 저는 운 좋게 한국영화 르네상스 때 데뷔(기자 주_ 단편 <변질헤드>(1996))를 했어요. 얼렁뚱땅 넘어온 사람이잖아요. 1990년부터 조수 생활을 하면서 이 업계에 있었는데 정말 많이 변한 거예요. 인터넷과 스마트 폰이 모든 걸 바꿔놓았어요. 피터 잭슨이 <호빗: 뜻밖의 여정>(2012)에서 영화 최초로 48프레임의 3D를 선보인 것도, 쿠엔틴 타란티노가 딱 10편만 만들고 감독 은퇴하겠다고 한 것도 변화한 관객의 성향에 맞추다보니 쌓인 피로감의 반영이 아닌가 싶어요.

감독님은 그런 종류의 피로감을 <베를린>에서 경험했나요?
저 같은 경우, 액션 장면을 구성할 때 카메라의 개각도나 프레임 속도 변환이 필름 기준이었단 말에요. <베를린>에서 처음 디지털로 영화를 찍었어요. 내 데이터 값이 적용이 안 되는 거야. 후반에 프레임 작업을 하는데 내가 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작업이라 ‘아, 정말 어떻게 해야 하나’ 아주 미쳐버리겠더라고요. 감독으로 살아남으려면 이걸 하는 게 맞는 건지, 아니면 이 판을 떠나야 하는 건지 고민이 될 정도였어요.

그런 피로감이 아직도 남아있는 것 같아요.   
지금도 제가 우울증 약을 먹고 있는데, (잠시 말을 끊었다가) 너무 심한 고통을 겪었어요. 사람들한테 너무 못되게 굴고, 소문이야 많이 들으셨겠지만 제가 현장에서 유연한 사람은 아니잖아요. 이안 감독 같은 스타일은 아니잖아요. (웃음) 근데 이번에 제가 믿었던 사람들한테 등에 완전히 칼을 꽂힌 경험을 했어요. 말도 안 되는 소문들을 만들어내서 저를 공격하는 일이 있었거든요. 이 영화에 제가 손을 댈 수 있는 마지막 작업, 디지털 색보정을 딱 끝내는데 긴장이 풀리면서 사람이 무기력해지더라고요. 그런 거 있잖아요, 긴장이 풀려서 몸이 아픈 거. 할 수 있는 게 없더라고요. 예를 들어, 사운드 작업 아무리 세심히 해도 극장의 상황이 다 달라. 중요한 대사들이 잘 들려야 하는데 어떤 극장은 뭉개져서 들리고, 마이클 만 영화처럼 들판에서의 총격전 사운드가 시원시원 해야 되는데 어떤 날은 먹먹하게 들리고. 노하우를 쌓았다가 무너지면 다시 쌓고 그 과정을 10년 넘게 해오고 있단 말예요. 그러니까 제 일이 행복하지가 않은 거예요. 근데 또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린 느낌인 거고. (기자 주_ <베를린>은 류승완 감독의 여덟 번째 영화다.)

그렇게 쌓인 감독님의 피로감이 어떻게 보면 극 중 정진수의 상황과 닮아 보이네요. 
국정원 상사가 정진수에게 그런 얘기를 하잖아요. “우리 직급 정도 되면 일 잘하는 놈보다는 말 잘 듣는 놈하고 일하고 싶다.” 영화산업도 똑같거든요. 돈 가진 사람은 영화를 잘 만드는 것보다 원하는 대로 만들어주는 감독을 더 선호해요. 또 그 반대의 입장에서 재독 북한대사 이학수(이경영)의 대사를 보면, “내 위치 정도가 되면 대안이라도 항상 답을 가지고 있어야 된다.” 그게 또 저의 얘기거든요. 이번에는 그런 답이나 대안이 안 떠오를 때가 있었어요.

어떤 장면에서였나요?
브란덴부르크에서의 망명 장면을 위해 현장에 나갔는데 머릿속이 하얘졌어요. 그런 적이 처음이었거든요. 이 장면을 위해서 그렇게나 준비를 했는데 ‘아, 이건 뭐지?’ 매일 악몽을 꿀 정도로 몸 상태가 안 좋았어요. 결국 허리디스크가 걸려서 한국 오자마자 수술까지 했고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완전히 그로기 상태에 있으니까 영화를 찍는 내내 그런 것들이 표현됐던 것 같아요. 언제 이 배우들하고 이렇게 판을 벌려서 일을 해보겠어요. 징징거리면 안되는데도 힘든 건 힘든 거니까. 지금이 저에게는 혼란스러운 시기인 것 같아요. 지금 제가 되게 연약해져 있어요.

말하자면, 극 중 동명수를 제외한 이들처럼 감독님 역시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계신 거군요? 
영화를 찍을 때 저의 상태가 인물들에게 다 미치지 않았나 싶어요. <짝패>(2006)를 만들 때 저의 상태는 ‘에이 씨발, 이래도 안되고 저래도 안되면 아무려나 후려나 봐야겠다!’ (웃음) <다찌마와 리-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2008, 이하 ‘<다찌마와 리>’) 같은 경우도 ‘세상에 진정성이라는 게 어디 있어, 그냥 먹고 사는 거지’ 그런 심리 상태였어요. <부당거래>(2010)에서는 <다찌마와 리> 실패 이후에 제가 갖고 있던 공포심, 피로감 이런 것들이 인물들한테 들어갔던 거죠. 감독의 상태가 인물들한테 자기도 모르게 투영되는 게 있지 않나 싶어요.  

사실 <부당거래>는 평도 긍정적이었고, 관객의 반응도 좋았잖아요. 그런 감독님의 좋은 기분이 <베를린>으로까지 연결이 안 된 건 어떤 이유에서였나요?
일단 언어. 영화 속 외국인들이 독일에서 ‘한칼’ 하는 배우들이거든요. 근데 의사소통이 안 되니까 말을 못 알아듣겠는 거야. 그리고 제작비. 공개된 건 108억인데 실제로는 106억에 끊었을 거예요. 이 돈이 자칫 잘못하면 숭숭 새게 되니까 겁나는 거예요. 손익분기점도 450만 명인데 워낙 높잖아요. (기자 주_ 개봉 9일째인 2월 8일 현재, 관객 수가 3백만 명을 돌파했다.) 제가 지금까지 남들 다 하는 3백만 넘는 영화를 한 편도 해 본적이 없잖아요. (웃음) ‘내가 어쩌자고 이 짓을 벌인 거지’ 너무너무 괴로운 거예요. 사실 대형영화를 하고 싶어서 <베를린>을 한 게 아니라 이 영화를 하려다보니까 지금의 예산이 필요하게 된 거예요. 그러다보니까 모든 게 힘든 거예요. 만약 이 영화가 안 되면 나는 끝이야.

그래도 다행히 개봉 전부터 예매율이 굉장히 높았어요.
제가 숫자 개념이 없어요. 누가 첫 주 몇 만 얘기해줘도 그게 잘 안 잡혀요. 우리 같은 사람들은 만듦새 자체에 만족도가 높으면 숫자는 둘째 문제거든요. 예전에 저는 영화를 만들고 나서 공개하는 시점에 되게 당당했어요. 그리고 영화에 대한 단점을 발견하는 시기가 시간이 흘러서였거든요. 근데 이번에는 ‘내가 왜 이렇게 했지’ 처음부터 끝까지 그게 너무 보이니까 스스로 만족 못하는 부분들이 너무 많아서 칭찬도 잘 안 들려요. 지금 이 모든 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생각밖에는 없어요.

결국은 사람 사는 이야기?

사실 영화 이야기를 들으러 온 건데 얘기를 나누다보니까 ‘류승완의 고민은?’ 진지한 <무릎팍 도사>가 되고 말았어요. (웃음) 
<아침마당> 분위기였다가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가 됐네요. (웃음)

<베를린>을 통해 전례 없이 힘든 과정을 거쳤어요. 이 때문에 감독으로서 영화를 대하는 태도나 관점이 달라지지는 않았나요?
기능인의 측면에서 보자면, 앞으로 해외에서 영화를 하게 될 때 이런 식의 태도를 가져야겠다는 기능적인 데이터가 생긴 거는 있죠. 근데 지금 질문의 요지는 보다 근본적인 거잖아요. 저는 그것에 대해서는 지나간 과거는 붙잡지 않고, 오지 않은 미래 때문에 걱정하지 말자예요.

그럼 지금 감독님이 갖고 있는 영화에 대한 관심은 무엇인가요?
지금 현재는 장르에 대한 관심은 현저히 줄어들고 있어요. 이제 저에게 관심을 끄는 것은 인물이에요. 이야기의 구조도, 플롯을 가지고 뭔가 만들어내는 것도, 장르적인 장면 만들기도 이제는 부차적인 거죠. 예를 들어, 말을 타고 서부극의 벌판을 달리는 이미지, 공포영화 속 좁은 복도의 숨 막히는 이미지 같은 것들을 향해 달려가야 해, 이런 생각들이 이제 안 들어요. 말을 타고 달리는 사람의 이미지를 찍더라도 저 사람이 왜 말을 타고 달려야 하나, 자문해보고 필요하면 찍는 거죠.  

<베를린>의 극 중 주요한 인물들에 끌린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이학수는 실제로 태국에서 가족들과 탈출했던 북한 대사가 실제 모델이에요. 표종성은 제가 이번에 취재하면서 만난 사람 중에 실제 장교 출신의 탈북자고요. 아직까지도 자신의 신념을 가지고 있는 대단히 매력적인 사람이에요. 정진수 같은 경우는 어버이 연합? (웃음) 적이 있어야 자신을 존재 증명할 수 있는 인물들 있잖아요. 정진수가 자꾸 빨갱이, 빨갱이 하는 것도 그런 자기 존재 증명 때문인 거죠.  

굉장히 애처로운 인물이죠.  
한국 사회에서 중년을 관통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 대부분이 자기 존재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 안 하고 지나가요. 안녕하세요, 저는 어디의 누구입니다, 어느 조직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습니다. 조직에 속해있지 않거나 끈을 놓치게 되면 자기 존재가 부정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사실 젊은 세대도 많이 그런 것 같긴 해요. 그 조직에서 벗어났다고 해서 내가 죽은 게 아니란 말예요. 그런데 자기가 죽었다고 생각을 하죠. 전 정진수도 특수한 직업을 가지고 있다뿐이지 그런 인물이라고 생각해요. 조직에서도 잘 어울리지 못하는 사림이에요. 게다가 ‘따’당하고 있는 것을 본인도 아니까 그것에 대한 공포가 있겠죠.

일로만 자기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정진수는 사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인물이에요.
표종성이 정진수에게 “난 당신이 목숨까지 거는데 이해를 못하겠다.”고 물어요. 답이라고 고작 하는 게 “일인데 무슨 이유가 있냐.” 굉장히 이상한 대답이죠. 이 사람은 본인의 의지를 얘기하는 게 아니라 그냥 일반론처럼 넘어간단 말이에요. 그런 점에서 정진수 이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대답이에요. 표종성만 해도 자기 진심을 이야기하는 포인트 들이 있어요. 마지막에 어쨌든 련정희한테 미안하다고 하니까. 근데 정진수는 단 한 번도 진심을 얘기하는 적이 없어요. 련정희가 “뱃속에 애가 있어요.” 그러자 “그건 내 애는 아니잖아.” 전 그게 정진수의 진심은 아니었을 것 같아요. 그 사람이 일을 하는 방식이지. 그나마 상식적인 대사라는 게 표종성한테 “요즘 우리하고 너희하고 쓰는 말이 다르냐?” 뭐 이런 건데 정진수의 말이라기보다는 요즘 우리가 북한을 바라보는 태도에 대한 표현이니까.  

<베를린>은 첩보라는 특수한 세계를 다루지만 그것을 조직으로 치환하면 결국 우리가 사는 모습과 별반 다를 바가 없어 보여요. 
그렇게 봐주시면 좋죠. 그것에 대해서 제가 이렇다 저렇다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아니고요. 제가 사람에 대한 말씀을 드렸잖아요. <베를린>은 스파이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충돌하는 영화라고 보시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거예요. 그런 사람에 대한 문제가 현재 제가 가지고 있는 관심 상태로 가다보니까 그렇게 된 것 같아요. 망명을 하려다가 동명수에 잡힌 이학수가 하는 대사가 “어차피 죽을 거 아는데 고통스럽게 죽이지만 말아 달라.”잖아요. 그러면서 옆에 있던 표종성에게 “어차피 우리는 뭘 해도 안 된다.”면서 손등을 두드려줘요. 저는 이 영화를 하면서 사람은 신념을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라는 생각을 했어요.

신념 이전 사람이 먼저다, 라는 얘기군요?
저는 신념을 바꾸는 게 맞아죽을 짓 같지는 않거든요. 신념을 바꿀 수 있잖아요. 예를 들어, 이번 대선 때 진영을 바꾼 사람이 있잖아요. 윤여준과 김지하가 대표적인데 바꾼 게 중요한 거 같지 않아요. 저는 우리 사회가 개인의 행복에 대해서 더 얘기를 했으면 좋겠어요. 결국 정진수가 마지막에 표종성을 놓아주는 행위는 적국 소속의 상대방에 대한 게 아니라 극 중 사건을 거치면서 알게 된 누군가한테 하는 행위란 말이에요. 사람한테 하는 행위라고 보거든요. ‘야, 형이 비슷하게 살아봐서 아는데 사고치지 말고 살아. 살아보니까 별 거 없더라.’ 마치 형이 동생에게 해주는 느낌으로 한 행동 같아요. 그러니 여기에 신념과 이데올로기가 들어가게 되면 안 되는 거죠.

부인 련정희를 의심하는 표종성도 결국 신념을 버리고 사람을 선택하면서 베를린을 떠나게 되죠.
표종성이 련정희를 의심한 건 자기 신념에 대한 의심이었던 거죠. ‘내가 왜 그랬을까?’ 후회하는 상태의 사람은 신념과 이데올로기가 다 떠난 상태의 개인인 거죠. 그런 상태의 개인은 어디로 가도 상관없어요. 그 개인의 가치가 얼마나 행복하고 소중한 것이냐, 저에게는 그것이 요즘 가장 큰 화두예요. 바로 그런 화두가 반영이 돼서 ‘신념이 아니라 사람이다.’라는 메시지의 영화가 된 거죠. <라이프 오브 파이>(2012)에 나오는 마지막 말이 그거잖아요, “신을 믿습니까? 신은 당신이 믿는 순간 존재합니다.” 신념이란 것도 그런 거예요. 믿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거든요. 저는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맞는 게 아닌가 해요. 그렇다고 <베를린>을 통해 이 메시지를 향해 가야 되 이랬던 건 아니지만 결국 만드는 사람의 의식 상태가 어떻게든 영화에 반영이 됐겠죠.    

사진 허남준
 
더 딴지
(2013.2.14)

 

2 thoughts on “<베를린> 류승완 감독”

  1. 처음에 사진보고 좀 놀랐는데 인터뷰를 읽으니 느낌을 알겠어요. 이 인터뷰 좋아서 내리 두번 읽었어요. 특히 마지막에 신념에 관한 이야기들 말이에요.

    1. 거의 감독님 하소연 모드죠 ^^; 그만큼 힘든가봐요. 목소리도 굉장히 많이 안 좋고요. 사진도 그중 밝은 것만 골랐는데 피로감이 안 숨겨지더라고요. < 베를린> 다시 한 번 보고 싶은데 정말 좋은 영화들이 줄줄이 비엔나로 나오다보니까 잘 안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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