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킷 리스트: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The Bucket List)


사용자 삽입 이미지최근 할리우드가 죽음을 다루는 태도는 흥미롭다. 타마라 젠킨스 감독의 <사비지>(국내 미개봉), 사라 폴리 감독의 <어웨이 프롬 허> 등 죽음을 극복의 대상이 아닌 삶의 한 부분으로 인정하려는 관조의 시선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렇다. 두 편 모두 ‘알츠하이머’가 소재로 등장하지만 그로 인해 고통받는 처절한 삶은 극히 일부만 나올 뿐이다. 대신 홀로 남겨진 자를 통해 변화한 삶을 읽고 이를 감내하는 주인공들의 지혜로운 성찰을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스탠 바이 미>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미저리> <어 퓨 굿맨>으로 유명한 롭 라이너 감독의 <버킷 리스트: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이하 <버킷 리스트>)은 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사는 두 노인이 등장하지만 <사비지> <어웨이 프롬 허>처럼 죽음에 대한 영화가 아니라 삶에 대한 영화다. ‘버킷 리스트’(Bucket List), 즉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 보고 싶은 것들을 적은 목록을 뜻하는 제목만 봐도 삶을 긍정하려는 기운은 여실히 감지된다. 그런 만큼 <버킷 리스트>에는 죽음에 대한 숭고한 의미나 엄숙한 분위기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죽음이라는 소재에 맞지 않게 이 영화를 지배하는 분위기는 유머를 기반으로 한 따뜻함이다. “시나리오를 10페이지까지만 읽고 단번에 영화화를 결심했다. 삶에 필요한 건 바로 이런 유머다. 비록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더라도 말이다”는 롭 라이너의 말처럼 <버킷 리스트>의 기저에는 현실에 충실하려는 삶에 대한 용기와 죽음보다 남은 삶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감독의 의도가 깔려 있다.

사려 깊고 진중한 이미지를 가진 배우 모건 프리먼과 여전히 귀여운 악동의 모습을 한 잭 니콜슨의 조합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각각 카터 체임버스와 에드워드 콜로 분한 이들의 모습은 명백하게 스테레오 타입이지만 그런 익숙함의 공백에는 서로를 통해 각자의 삶을 깨닫는 성찰이 담겨 있다. 평생 자동차 정비사로 일해왔지만 사랑하는 가족과 단란한 일생을 보낸 카터, 종합병원을 소유하고 있는 재벌 사업가이지만 홀로 지내는 에드워드는 서로의 빈틈을 메워주는 짝패에 다름 아니다. 카터는 에드워드의 부(富) 덕에 평생 꿈도 꿔보지 못한 세계여행을 하게 되고 에드워드는 카터의 배려로 한동안 잊고 지냈던 가족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금 깨닫게 된다.

이들이 버킷 리스트에 따라 아프리카 세렝게티에서 호랑이 사냥을 즐기고, 오토바이를 타고 중국의 만리장성을 질주하고, 무스탕 셀비를 타고 카레이싱을 벌여도, 중요한 건 어디를 가고 무엇을 했느냐가 아니라 그 순간 둘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 바로 그 사실이다. 삶의 변화가 이뤄지는 순간은 평생 접하지 못한 경험을 해보며 느끼는 ‘어떤’ 감정이고 이는 서로의 대화를 통해 비로소 ‘성찰’이라는 형태로 드러나는 까닭이다.

즉, <버킷 리스트>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관계를 통해 드러나는 존재의 의미다. 역설적으로 죽기 전에 반드시 해결해야 할 버킷 리스트는 반드시 성공하지 않더라도 크게 중요하지 않다. 누구와 함께 버킷 리스트를 공유했느냐가 더욱 의미 있는 삶에 가깝기 때문이다. “당신을 더 일찍 만나지 못한 게 후회된다”며 카터에게 건네는 에드워드의 대사는 그런 영화의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모건 프리먼과 잭 니콜슨의 빼어난 연기호흡에 감탄을 금치 못한 이들에겐 두 배우가 좀 더 일찍 영화에서 만나지 못한 안타까움으로 이해해도 무방하겠다).

영화는 시작부터 이 점을 강조한다. 극중 카터의 내레이션을 통해 “당신이 기억하는 사람들 또한 당신을 기억할 것이다. 그런 관계를 이뤘다면 당신은 의미 있는 삶을 산 것이다”라고 주제를 드러내는 것이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 그리고 친구와의 관계에서 기인한다는 얘기. <버킷 리스트>의 내레이션 활용이 흥미로운 건 그래서다. <버킷 리스트>는 <선셋 대로>의 조셉 길리스(윌리엄 홀든), <아메리칸 뷰티>의 레스터 번햄(케빈 스페이시)처럼 죽은 이의 내레이션으로 진행된다. 다르다면 이 두 영화의 내레이션은 비극적인 상황에 대한 냉소적인 기운을 더한다면 <버킷 리스트>는 죽음에 대한 친근한 이미지를 전달한다는 것. 특히 에드워드에 대한 회상조로 일관함으로써 죽은 자가 죽은 자를 기억한다는 설정의 재미뿐 아니라 친구의 존재를 기억함으로써 자신의 존재 또한 기억하게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버킷 리스트>는 죽음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견지하지만 낯설거나 당황스럽지 않다. 비록 당장 죽음과 대면하지 않더라도 자신이 지나온 과거의 발자취에 대한 복기와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 해야 할 것과 봐야 할 것에 대한 고민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공감하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버킷 리스트>가 영화사에 남을 걸작이거나 롭 라이너 감독의 최고 작품은 아닐지라도 반드시 관람해야 할 영화의 버킷 리스트임에 손색이 없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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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2.0 382호
(2008. 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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