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뱅 클럽> 스티븐 실버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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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뱅 클럽>은 1990년대 아프리카에서 활동했던 유명한 포토저널리스트의 모임인 ‘뱅뱅 클럽’에 대한 영화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 폭력이 난무했던 당시 아프리카에 대한 고발이기도 하다. 이런 내용을 사실적으로 담아내며 인상적인 영화를 만든 스티븐 실버 감독을 서면으로 만나봤다.

<뱅뱅 클럽>은 그렉 마리노비치와 주앙 실바가 공동 저술한 <뱅뱅 클럽: 숨겨진 전쟁에 대한 사진>이 원작이다. 어떻게 접하게 됐나?
젊은 시나리오 작가 두어 명이 <타임>지에 실린 ‘케빈 카터’에 관한 기사를 보고 내게 그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뭔가 해보라고 제안했다. 퓰리처상을 수상하고 얼마 안 돼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그의 이야기는 마음을 동요하게 했다. 당시 나는 다른 영화 촬영 때문에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머물렀는데, 그렉 마리노비치와 주앙 실바에 대해 수소문했고 실제로 만나 1990년대 그들이 겪었던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과 나눈 이야기는 단순히 케빈 카터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안전을 위해 붙어 다니기 시작한 네 명의 포토저널리스트들 이야기라고 말해주었다.

어떤 점에 끌려 영화화를 결심했나?
케빈 카터만의 사연이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네 명의 포토저널리스트들의 이야기였고 이 점이 매우 흥미로웠다. 사진을 찍다가 명성을 얻게 되고 뱅뱅 클럽이라는 별명까지 얻게 된 이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그렉과 주앙을 수차례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영화화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실화라는 사실이 더욱 매력적이었다.

주로 다큐멘터리 작업을 해왔다. <뱅뱅 클럽>은 당신이 작업한 유일한 극영화다. 하지만 뱅뱅 클럽의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다큐멘터리적인 색채가 강하다.
실존하는 인물, 실존했던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말하고자 할 때 두 가지 경우를 생각해야 한다. 우선 진실을 담아야 한다. 그리고 동시에 사람들이 볼만한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 말하자면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전해 듣는 전래동화 같은 느낌처럼 말이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고 동시에 실화를 잘 전달해 내려면 딱 맞는 배우를 찾는 것이 핵심이라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캐스팅에 중점을 두었다.

그렇다면 영화의 내용에 있어서 중점을 두었던 부분은 무엇인가?
넬슨 만델라의 석방 이후 낙원이 도래한 것 같았지만 1990년대부터 낯선 폭력의 기운이 남아공의 거리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한밤 대학살이 벌어지곤 했고, 이주 노동자 숙소 사람들과 거주민 사이의 미묘한 전쟁이 일어났다. 전부터 두 집단의 긴장은 있었지만 왜 갑자기 도화선이 당겨졌는지 아무도 몰랐다. 이런 시대적 배경을 기반으로 영화 제작에 들어갔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4년간의 정치사가 아니라 이들 네 명의 젊은이들과 그들이 겪은 것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것이다. 자신이 태어난 이 곳에 무엇을 얼마나 빚졌기에 스스로 위험한 역사의 현장 한 가운데에 뛰어들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고통 받아야 했는지에 중점을 두었다. 그들이 어떤 심정이었고, 왜 그것을 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이끌어 내려고 노력했다.  

<뱅뱅 클럽>은 네 명의 포토저널리스트 이야기이자 동시에 그들이 바라본 아프리카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를 통해 우리가 이루고자 했던 것 중 하나가 사진작가들의 의도였다. 바로 이민자들에게 다른 삶이 있다는 것이었다. 요하네스버그는 굉장히 멋진 도시이다. 식물이 굉장히 잘 보존된 곳이기도 하다. 이민자들 역시 백인 남아공 사람들과 함께 나무가 심어진 교외 거리에서 괜찮은 할인 마트에 쇼핑하러 다니며 살 수 있었다. 거주지역에 발 한 번 들이지 않고 폭력과는 상관없이 살 수 있었을 거다. 고작 5km 떨어진 지역에서 말이다. 당시 시대 상황이 워낙 강렬하다 보니 시대 자체가 두드러질 때가 상당부분 있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다행히도 이 영화가 네 명의 포토저널리스트들에 관한 이야기를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어떤 점에서 그런가?
불쾌한 현실을 보여주는 영화지만 되도록 주인공들의 입장에서 그들이 뭘 목격하고 카메라를 통해 뭘 보는지, 극적인 사건들에 대해 그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밀착해서 다루려 했다. 뱅뱅 클럽은 분쟁에 집중해서 사진을 찍었던 것 같다. 4년 동안 2만 명 이상의 사상자를 낸 분쟁이었다. 만약 이들이 그런 사진을 찍지 않았다면 세상 사람 그 누구도 아파르헤이트 정권이 가져온 끔찍한 결과를 알지 못했을 것이다.

뱅뱅 클럽은 진실을 추구하기 위해 정말 위험한 일을 했다. 다시 말해, 사실 전달을 사명으로 삼는 많은 언론에게 모범이 되는 인물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업적에 대해 굉장히 겸손하게 생각한다. 사실 뱅뱅 클럽이 한 일은 의무적인 것이 아니다. 복싱경기나 미인대회의 사진을 찍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뱅뱅 클럽은 용감한 사나이들이었다. 용감한 것도 용감한 것이지만 그렇게 사진을 찍는 것이 재미있었던 것 같다. 아드레날린이 팍팍 솟으며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스릴 있었을 것이다. 느끼지 못할 때까지 스릴을 만끽했을 것이다. 세상이 그들의 업적을 용기 있고 숭고하다고 칭송했지만 정작 본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1990년대에 활동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2012년에 영화화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나? 그것이 이 영화가 관객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와 연관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데?
네 명의 포토저널리스트들이 남아공에서 겪은 전쟁은 정말 잔인했다. 악의적이고 잔인한 폭력이었고 거주민들에게 상처로 자리 잡았다. 남아공의 폭력은 우리 모두에게 각기 다른 영향을 주고 있다. 이 폭력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나 폭력의 현장 그 중심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불가능하다.  

당신은 <뱅뱅 클럽>의 사실성을 위해 (시간은 많이 흘렀지만) 폭력이 벌어졌던 현장에 직접 뛰어들었다. 실제 소웨토와 토코자 거주 지역에서 이 영화를 촬영했다.
물론이다. 나와 제작자들은 사건이 일어난 바로 그 장소에서 촬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역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소웨토와 토코자 지역에서 촬영을 했다. 촬영 중 놀라웠던 점은 그렉 마리노비치에게 퓰리처상을 안긴 불타는 남자 장면을 찍을 때였다. 당시 사람들이 실제 그 사진이 실린 잡지를 갖고 거리에 나왔던 것이다. 충분한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거주민들의 상처가 아물었을 것이라고 판단해 영화 촬영은 옛 이야기를 하듯 진행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아직도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당시의 사건은 생생한 것이었고 상처 역시 아물지 않았다.  

라이언 필립과 같은 할리우드 영화에서 활동했던 배우들과 작업했다. 이들에게 사실적인 연기를 끌어내기 위해 감독으로서 어떻게 접근했나?
케빈 카터 역의 테일러 키취는 보통이 아니다. 이미 고인이 된 사람을 연기한다는 게 무척 힘들었을 텐데 이 인물을 되살렸다. 테일러가 놀라운 이유는 케빈의 마약, 광기, 불안함과 함께 그의 삶을 잘 연기했다는 것이다. 그렉 마리노비치를 열연한 라이언 필립 역시 뛰어났다. 내 마음에 꼭 드는 배우였고 매일 제작에 도움이 되는 아이디어를 내고 극도의 자기 저제를 보여줬다. 굉장한 습득력을 가지고 있고 역할을 분석하는 데 있어서도 매우 진지했다. 특히 그는 어려운 남아공의 억양을 제대로 잘 배워서 자신의 역할을 잘 표현해 냈다. 이런 국제적인 배우와 함께 작업하다니 나는 정말 축복받은 감독이다.

당신은 <그을린 사랑>(2010)의 드니 빌뇌브와 함께 캐나다를 대표하는 감독이다. 주로 다큐멘터리를 작업 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 현재 준비 중인 작품은 무엇인가?
다큐멘터리 <The Last Just Man> <Diameter of the Bomb> 두 편과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시리즈인 <The Dark Years>로 각광받았다. 또한 TV시리즈인 <Shake Hands with the Devil>의 총괄 프로듀서였다. <뱅뱅 클럽> 발표 이후에는 <The Pig Farm>의 새로운 다큐멘터리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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