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이정호 감독의 <방황하는 칼날>은 성폭행으로 딸을 잃은 아버지의 복수를 다룬다. 사회파 추리물로 명명된 작품인 만큼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된 아버지의 사정을 통해 미성년자에게 너그러운(?) 사법제도의 모순을 제기하는 한편, 쫓고 쫓기는 추격전으로 아버지의 복수가 정당한지도 묻는다.
그와 같은 원작의 정수를 담기위해 이정호 감독은 아버지와 그의 뒤를 쫓는 형사, 이 두 사람의 사연으로 최소한의 스케일을 확정한다. 원작에서 아버지에게 도움을 주며 자수를 권유하는 펜션 여주인과 가해자를 쫓는 또 한 명의 아버지의 존재는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다. 원작에서의 시민의 상처 받은 마음 위에 군림하는 법에 대한 비판 의식보다는 자식 잃은 아비의 슬픔이라는 감정적인 면에 상대적으로 더 집중하는 것이다.
이에는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는 모범 답변 대신 피해자의 마음을 헤아리자는 태도가 감지된다. ‘자식 잃은 부모에게 남은 인생이란 없습니다.’ 아마도 이 영화가 눈 쌓인 겨울을 배경으로 앙상한 나뭇가지의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우는 건 그런 아버지의 공허한 심정을 반영한 미장센일 테다. 좋은 영화는 언제나 당대의 사정을 관통하는 유의미한 질문을 품기 마련이다. 우선적으로 원작소설의 힘이지만 이를 제대로 구현한 영화를 보는 것도 흥미롭기는 마찬가지다.
맥스무비
(2014.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