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하는 칼날>의 이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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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이정호 감독의 <방황하는 칼날>은 성폭행으로 하나뿐인 딸을 잃은 아버지 이상현의 복수를 다룬다. 관련해 흥미로운 캐릭터의 이름(들)이 등장한다. 성폭행을 일삼는 가해자 학생들 중 한 명인 ‘조두식’과 조두식에 대한 분노로 복수를 다짐한 이상현을 저지하겠다며 뒤를 쫓는 형사 ‘장억관’이다.

조두식이야 누가 보더라도 8살 여아를 강간 살해한 조두순을 떠올리는 이름이라 더 따지고 들 필요는 없지만 장억관은 좀 다르다. 일본 장르소설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억관’이라는 이름은 꽤 익숙하다. <용의자 X의 헌신> <탐정 갈릴레오> 등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포함해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 <스텝 파더 스텝>, 아야츠지 유키토의 <십각관의 살인> 등을 번역한 이가 바로 양억관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 장르소설을 좋아하는 이정호 감독은 서가의 책을 살피던 중 양억관이 눈에 들어와 장억관의 이름을 떠올렸다고 한다.

번역가와 형사, 전혀 다른 세계에 발을 디뎠지만 이들은 꽤 비슷한 성격의 고민을 안고 있다. <방황하는 칼날>의 장억관의 경우, 법을 위반한 이를 잡아들이는 것이 직업적 의무인 까닭에 이상현을 검거해야 하지만 그 자신 또한 부모 된 입장에서 상현의 심정이 십분 이해되고도 남는다. 번역가의 입장도 장억관처럼 애매모호하기는 마찬가지다. 어떤 언어로 된 글을 다른 언어의 글로 옮기는 것이 맡은 바 사회 활동이지만 언어의 특성 상 번역은 창작의 영역에도 속하는 것이기에 딱 떨어지는 하나의 입장을 취하기가 난처한 것이다.  

거기에 바로 억관이 가진 이름의 뉘앙스가 존재한다. 이정호 감독의 입장에서는 오마주의 의도로 억관의 이름을 가져온 것이지만 우연처럼 맞아 떨어지는 직업윤리의 고뇌가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그래서 <방황하는 칼날>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의 이름을 살피는 것은 이 영화의 주제에 접근하는 하나의 방법이라 할 만하다. 참고로, 상현의 이름은 거꾸로 하면 ‘현상’, 감독은 <방황하는 칼날>이 어떤 ‘현상’을 다룬다는 점에서 아버지의 이름을 이처럼 확정했다고 말한다.  

맥스무비
(20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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