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 쓴 미스터리 소설은 어디에 숨었나

사용자 삽입 이미지지난 해 마쓰모토 세이초 기념관의 관계자를 몇 차례 만날 기회가 있었다. 마쓰모토 세이초는 국내 팬들에게 일본 사회파 미스터리의 대부로 알려져 있지만 그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작품 범위가 훨씬 넓은 작가다. 사회파 미스터리를 일본에 뿌리 내린 미스터리 작가이면서 <소화사 발굴>을 무려 8년에 걸쳐 연재한 일본 고대사 연구가이기도 하다. 또한 <일본의 검은 안개>로 대표되는 논픽션 작가이자 역사 소설가로도 활동했다. 지난 2010년 마쓰모토 세이초 탄생 백주년을 맞아 일본에서는 대대적인 행사가 벌어졌다. 이의 일환으로 한국에서의 마쓰모토 세이초의 인지도를 확인하기위해 마쓰모토 세이초 기념관 관계자가 한국을 찾은 것이다. 개인적으로 마쓰모토 세이초의 <제로의 초점>을 원작 삼은 이누도 잇신의 <제로 포커스> 개봉에 맞춰 쓴 글이 계기가 되어 얘기를 나누게 됐다.

마쓰모토와 관련한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던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은 마쓰모토 세이초가 짧은 단편일지라도 취재를 위해 발품을 아끼지 않았다는 일화였다.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소화사 발굴> 연재 기간 동안 당시 신임 편집자가 언제나 자료 수집에 협력을 했고 이후에도 작가의 취재 여행에도 동행을 하는 등 그런 노력 덕택에 마쓰모토는 다작을 남길 수 있었단다. (신임 편집자로 마쓰모토와 인연을 맺었던 후지이 야스에는 현재 마쓰모토 세이초 기념관의 관장이다.) 마쓰모토는 41세의 늦은 나이로 작가에 입문했지만 82세의 나이에 숨을 거둘 때까지 천여 편에 달하는 작품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방대한 취재가 뒷받침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마쓰모토 세이초가 일본 문학계에 남긴 가장 큰 유산은 사회파 미스터리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그와 더불어 취재가 바탕이 되는 소설 쓰기의 방법론을 물려준 것이 오히려 내게는 더 큰 유산으로 생각될 정도다. 그 결실처럼 일본에는 (그것을 미스터리/추리에만 한정하더라도) 취재력이 빛나는 소설이 독자의 각광을 받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마쓰모토 세이초의 장녀’라는 수식이 따라다니는 미야베 미유키의 경우, <이유>를 통해 극중 일가족 살인사건에 연관된 30여 명의 행적과 다양한 사회 문제를 원고지 3천 장 분량에 꼼꼼히 기록했고, 사사키 조는 <웃는 경관> <제복 수사> <경관의 피>로 이어지는 일련의 작품을 위해 3년 넘게 경찰서를 들락날락거린 것은 물론 전후 일본 60년사까지 뒤진 방대한 취재로 경찰소설의 대가로 평가받는다.

내가 얼마나 일방적으로 듣고 있었던지 마쓰모토 기념관의 관계자는 한국의 상황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졌다. 그에 대해 나는 아직 한국의 소설들, 특히 미스터리/추리소설은 저변이 넓지 않아 창작이 일본에 비해 활발하지 않다는 답변을 해줬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자세하게 얘기한 것도 아니었다. 한국 사회의 폐쇄적인 환경이 적극적인 취재가 기반이 된 추리/미스터리 소설의 창작을 저해하고 있다고 밝히려니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에도 취재소설이 존재한다. 조정래의 <태백산맥>만 하더라도 작가가 원고 1만6천5백장을 쓰기 위해 들인 취재의 흔적이 ‘조정래 태백산맥 문학관’을 가득 채울 정도다. 다만 나는 이 글을 미스터리/추리소설에 한정해 이야기하고 싶은데 이유는 우리 사회가 공적인 정보의 공유 차원에서 심각할 정도로 취약한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천안함 침몰의 전모가 여전히 속 시원히 밝혀지지 않은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46명의 희생자를 낸 희대의 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발표를 신용하는 국민은 얼마 되지 않는다. 사건 발생 일주일이 지나도록 변변한 사실 조차 확인해주지 못하는 무정부상태를 보여줬고, 무엇보다 기밀을 이유로 수시로 정보를 차단하고 선별된 사실만 공표한 까닭에 의혹이 산처럼 불어났기 때문이다. 비단 천안함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정부 입맛에 맞는 정보 위주로 언론에 ‘제공’해 사건을 은폐하고 축소하는 우리네 취재 관행은 한국의 고질병 중 하나다. 이처럼 취재가 제한되는 환경에서 <이유>와 <경관의 피>와 같은 취재 본위의 맛을 살린 미스터리/추리소설이 나올 리 만무하다.

미스터리/추리소설이라고 하면 대개 허무맹랑한 살인 이야기나 흥미 위주의 추리게임으로 인식하기 마련이지만 이 장르만큼 당대의 현실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소설도 드물다. 워낙 소재 자체가 자극적이다 보니 독자가 심리적으로 받을 충격을 고려해 완충장치로써 불가피하게 허구의 방법을 끌어들이는 것인데 그런 만큼 이 장르에서 취재는 충분조건이 아닌 절대 필요조건인 셈이다. 미스터리/추리소설이 유독 영미권과 일본에서 각광을 받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아서 이들 국가는 언론의 취재나 일반인의 사회적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편에 속한다. 이런 사실에 비춰, 한국의 미스터리/추리소설의 창작이 활발하지 못한 것에 대해 상상하는 힘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분석하는 것은 나이브한 태도다. 물론 시대의 변화에 따라 취재의 폭과 기술이 상대적으로 발전하면서 과거에 비해 국내 미스터리/추리소설의 창작력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해외의 수준 높은 작품에 길들여진 국내 독자를 만족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인 것이다.

이는 한편으로 전문가주의의 부재에서 비롯된 현상으로도 이해가 가능하다. 예컨대, 영미권이나 일본에서는 관련분야, 즉 수사기관이나 사회부 기자, 보험사 출신의 작가의 소설을 접하는 풍경은 익숙하다.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죽은 자에게 걸려 온 전화> 등 첩보소설로 유명한 존 르 카레의 경우, 영국의 정보국인 M15와 M16에서 근무하며 틈틈이 글을 쓴 것으로 유명하고, 한국에도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일본의 기시 유스케는 생명보험회사에서 근무한 이력을 적극 살려 현장에서의 생생한 경험을 소재 삼은 <검은집>이라는 걸작 미스터리 소설을 완성하기도 했다. 그에 반해 한국에는 해당 분야의 전문적인 지식을 배경에 엎고 미스터리/추리소설계에 입문하는 경우는 전무하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우리네 환경이 전문가 출신의 작가 배출에 호의적이지 않은 까닭이 크다.

만약 국가정보원의 은퇴한 누군가가 자신의 특기(?)를 살려 미스터리/추리소설을 쓴다고 치자. 아니 마음먹었다고 치자. 그렇다고 해도 이를 실행에 옮기기 쉽지 않은 이유는 글을 완성할 때까지 사생활이 보장받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희미할뿐더러 힘들게 완성했다고 해도 국가 기밀을 이유로 정부가, 국정원이 나서 출판을 무효화시킬 것임은 눈에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비단 국가 기관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어서 정치부 기자 출신과 같은 일반인이라 할지라도 안보와 관련한 내용을 소재로 소설을 쓴다 해도 국가의 이득에 반하는, 가령 나라의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정치인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 수 있는 내용이라는 이유로 그 역시도 세상의 빛을 보기가 쉽지 않을 것임은 자명하다.

그만큼 우리 사회의 정보 공유력은 제한적이고 선별적이다. 특히 ‘그들’이 주장하는 국가 기밀에 대해서는 그 정도가 심하다. 그러다보니 범국가적인 사건사고가 터지기라도 할라치면 국민의 의혹은 산처럼 불어나고 이에 따라 음모론에 가까운 기사들이 뉴스 지면을 장식하면서 혼란만 더 가중시키는 것이 우리네 현실이다. 민감한 정보 노출의 가장 건강한 형태라고 할 수 있는 미스터리/추리소설의 국내 창작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것은 경직된 환경 탓이 가장 크다. 비밀이 많은 사회는 건강하지 못하다. 물론 범죄가 많은 국가 역시 건강한 사회라고 볼 수 없다. 하지만 범죄의 사실 조차 비밀에 붙이는 사회는 그중에서도 최악이다. 취재의 기술이 바탕이 된 미스터리/추리소설이 하루 빨리 나와 줬으면 바라는 이유는 그래서다.

일러스트 허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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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ENA
2011년 4월호

“발로 쓴 미스터리 소설은 어디에 숨었나”에 대한 10개의 생각

  1. 작년 1월에 기타큐슈 놀러가서 마쓰모토 세이초 기념관 구경해 봤습니다. 이런저런 친필 원고들과 메모들을 보다보니 정말 꼼꼼하게 준비해서 글을 쓰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 점과 선>의 기차시간표 트릭 그려서 메모해놓은 것 보면 참 대단했습니다. 소장했던 장서도 장난 아니었구요.
    우리나라는…현실이 어지간한 미스터리/추리소설보다 훨씬 스펙타클(?)하고 미스터리어스(!)하니 정작 소설이 힘을 못 받는게 아닌가 하는 뻘생각을 해봅니다……

    1. stefanet 님 너무 부럽습니다. 마쓰모토 세이초 기념관에 다녀오시다니 말이죠. ^^ 저도 꼭 가보고 싶어요. ^^; 미국은 범죄가 그렇게 많아도 그에 대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는 환경이다보니 수작의 작품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근데 한국에서는 공공 정보마저도 제한이 되어 있으니 그 분야의 소설이 발전하기가 너무 힘든 것 같아요. ㅜㅜ

    2. 저가항공사인 제*항공이 기타큐슈에 취항하면서 가격 부담이 확 줄었어요. 가볍게 2박3일정도 잡고 휭허니 댕겨오시지요~^^

    3. 음, 가실거면 혹시나 하고 제가 썼던 마쓰모토 세이초 기념관 방문기 겸 기타큐슈 여행기 보여드릴께요. http://www.booksfear.com/313 http://www.booksfear.com/314
      제 블로그는 아니고 B출판사 블로그인데, 그 출판사와 직접적인 관계는 전혀 없지만 어찌어찌하다 장르소설 팬 두 명이 의기투합하여 갔다오게 되었습니다.
      가기 전에 검색해보니 기타큐슈 여행기는 제법 있었지만 세이초 기념관 방문기는 거의 없더라구요. 지금은 일 년 지났으니 은근히 늘었을지도 모르겠네요.
      가시기 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네요~^^

    4. 저 북스피어 블로그 자주 들어가는데 왜 stefanet님의 세이초 기념관 글을 못 봤는지 모르겠네요. 너무나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언제 가게 될지 모르겠지만 꼭 참조하겠습니다. ^^

    1. 항공권 예매해놓고 오랫만에 ‘모래그릇’ 다시 보고 있다는^^ 드라마 초반부 15분이 넘도록 대사 한마디 없지만 음악이 있어서 좋은 드라마에요. 이만큼 우아한 추리물 드라마도 없지 싶네요~

    2. 전 드라마로는 못 봤는데, 괜찮나봐요? 그럴 때 일본 드라마가 부럽더라고요. 웬만한 추리소설은 tv드라마로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오히려 영화보다 더 좋지 않나요? 지난 해 제로포커스는 실망스러웠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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