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두비> 마붑 알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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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두비>란 영화가 희한하다. 청소년관람불가 등급 판정 논란을 비롯해 이런저런 이유로 개봉 전부터 도마에 오르며 화제를 불러일으켰지만 정작 개봉 3주가 지났지만 채 1만 명도 영화를 보지 않았다. 언론과 평단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반두비>에 대한 관객의 반응은 냉담하기만하다. 오히려 이주민 노동자와 여고생의 로맨스를 다뤘다는 이유로 극중 카림을 연기한 배우 마붑 알엄은 거의 테러에 가까운 시달림을 당하고 있다.

방글라데시어로 ‘좋은 친구’를 의미하는 <반두비>는 그동안 무관심했던 이주노동자들에게 대화의 손길을 내미는 영화다. 그런데 내민 손길이 무색하리만치 무관심과 비난 일색조의 반응은 이주민에 대한 한국인의 편견을 여과 없이 드러낸 경우라 할만하다. 이 정도면 이 사회의 소통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본지가 먼저 나서서 친구의 손을 잡아주기로 했다.

마붑 알엄과의 인터뷰는 그가 집행위원장으로 있는 용산의 이주노동자영화제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1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능수능란한 한국말 실력을 보여준 마붑 알엄과의 인터뷰는 피부색만 다른 한국인의 또 다른 정체성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마붑 알엄에 대해 알아간다는 것은 곧 이주민 그들을 알아간다는 의미다. <반두비>에서 여고생 민서(백진희)가 카림을 생각하며 방글라데시 음식을 먹는 것처럼 말이다. 

허남웅 기자(이하 ‘허’) 인터뷰 요청을 했더니 일본에 있다고 해서 이제야 만나게 됐다. (웃음)
마붑 알엄(이하 ‘마’) 일본에서 2회 이주공생영화제가 열렸는데 내가 만든 다큐멘터리가 상영됐다. 감독과의 대화와 세미나도 있어 참석하게 됐다.

이주공생영화제라면?
말 그대로 이주에 관한 영화제다. 구마모토의 농촌지역에서 열렸는데 이주민이 만 명 정도 된다. 이를 계기로 교류의 형식처럼 프로그램뿐 아니라 이주 관련해서 영상적인 것도 함께 기획할 예정이다. 그래서 이번 이주노동자영화제 때도 일본의 이주공생영화제 관련자와 교수들이 온다. 

이주공생영화제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었나?
전에도 가긴 했지만 공식적인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라 의미가 있었다. 

이주민을 대하는 일본의 태도는 어떤가?
일본은 지역마다 다르다. 구마모토를 보자면 주로 국제결혼 가정 위주로 이뤄져있다. 이주민과 관련해서 관심들이 없다고 해야 하나, 이주에 관심 갖는 사람들은 대개 연세가 있는 분들이다.

상영됐다는 다큐멘터리도 궁금하다.
2007년 말쯤에 방글라데시 갈 일이 있었다. 가는 도중 비행기에서 마숨씨라고 한국에서 강제로 쫓겨난 이주노동활동가를 만났다. 마침 나에게 카메라가 있어서 그때부터 마숨씨와 동행하며 행적을 쫓았다. 한국에 대한 불만과 바라보는 시선뿐 아니라 열정적으로 뭔가를 하려는 모습, 그리고 마숨씨의 가족까지 다양하게 담으려 했다.  


나는 어떻게 <반두비>에 출연하게 됐나 

최근 영화나 TV를 통해 마붑 알엄의 모습을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영화 <로니를 찾아서>에서는 극중 태권도 사범 인호(유준상)를 곤란에 빠뜨리는 로니 역으로, TV에서는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한 공익광고에 모습을 비췄다. 그중에서 <반두비>는 그의 첫 번째 장편영화 출연작이고 첫 번째 주연 출연작이기도 하다. 이 영화에서 마붑은 체불임금을 받지 못해 곤란을 겪는 방글라데시 출신의 카림 역할을 맡았다. 카림은 여고생 진희의 도움을 받아 체불임금 문제를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서로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하여 키스를 나누기까지 한다. <처음 만난 사람들> <로니를 찾아서> <시선1318>의 ‘달리는 차은’까지, 최근 집중되고 있는 이주민 관련 작품 중에서 <반두비>의 카림은 이들 영화를 대표하는 캐릭터라 할만하다.

신동일 감독의 영화 두 편(<나의 친구, 그의 아내><반두비>)에 연달아 출연했다. 그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
<나의 친구, 그의 아내> 출연은 영화 기획자와의 전화통화가 인연이 됐다. 단편영화에 출연한 적이 있었는데 거기 나온 배우가 누구냐고 연락이 왔다. 그래서 “난데요” 답했더니 (웃음) <나의 친구, 그의 아내>에 출연해달라고 하더라. 좋아하는 옷을 가져오라고 해서 내가 가지고 있는 티셔츠를 모두 가져갔다. 신동일 감독님이 옷을 열심히 보시던데 눈빛이 되게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인사하게 됐고 영화를 계기로 그 후에 영화제나 이주민 관련 행사에서 가끔씩 만나게 됐다.


<나의 친구, 그의 아내>와 인연을 맺게 해준 단편영화는 어떤 작품이었나?
<복수의 길>이라고 블랙코미디라고 해야 하나, 2005년에 이우열 감독님이 당시 내가 활동하는 단체로 와서 만나게 됐다. <복수의 길>은 <반두비>와 어느 정도 비슷한 면이 있다. 임금체불 때문에 손가락을 다친 형과 동생이 사장에게 복수하겠다는 내용이다. 뭔가 재미있겠다싶어 감독님을 만나 동생 역으로 출연하게 됐다. 15분짜리 단편으로 괜찮은 영화였는데 몇 개 영화제에서만 소개됐다. 다만 주변 사람들이 웃고 재미있게 보면서 나보러 “이제 연기생활 해도 되겠구나” 하기에 나는 농담하지 말라고 했지만 속으로 다음에도 기회가 되면 또 해야겠다 싶었다. 그때부터 연기의 맛에 빠지게 됐다. (웃음)

<반두비>는 출연을 자청했다고?
감독님께서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와 고등학생 관련한 영화를 준비 중이란 소식을 들었다. 내가 아는 사람을 캐릭터로 잡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아무래도 만나본 적이 있는 사람이니까 도와주겠다고 얘기를 하고 약속을 잡았다. 그래서 감독님 만나서 시나리오를 받고 캐스팅 관련해서 주변에 알아봤다. 그 과정에서 이야기에 공감하게 되고 좋아하게 되고 이건 좀 아니다 싶기도 하고, 어느 순간에 내가 시나리오에 대해서 고민에 빠져있더라. (웃음) 감독님이 원하는 마땅한 사람이 없기에 내가 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어서 제안을 했다. 처음엔 감독님이 놀라더라. 다만 나중에 한국 말 잘하는지 오디션도 보고 대사도 맞춰보면서 결론적으로 오케이 하셨다.

카림이란 캐릭터가 도대체 어떤 인물이기에 본인과 닮았다고 생각했나?
기본적인 조건이라는 게 이십대 중반에 한국말 잘 하고 체류자 자격에 문제없고, 그리고 잘 생기고. 내가 그렇다, 나밖에 없다. (웃음)

그 외에 감독이 카림 캐릭터를 위해 따로 요구한 조건은 없었나?
그 당시 살이 꽤 쪄있던 상태라 영화 찍기 3개월 전부터 감량해서 결과적으로 12kg을 뺐다. 그리고 연기 지도 감독님과 일주일에 다섯 번씩 만나 연기 연습을 했고 영화에 몰두하기 위해 이주노동자영화제 작업도 잠시 그만뒀다. 

시나리오 작업에도 참여했나?
이슬람교에 대한 부분을 감독님과 많이 상의했다. ‘친구를 웃게 만드는 사람은 천국에 갈 자격이 있다’와 같은 대사는 내가 제안을 했고 카림의 표현 방식도 함께 고민을 많이 했다. 시나리오 초반에 감독님이 히잡(아랍권에서 얼굴을 가리기 위해 쓰는 두건)을 쓰게 했는데, 그건 아니다, 백 년 전의 얘기다, 그 정도. 그리고 이주민들의 임금체불과 같은 문제들이 현실에서 어느 정도인가 그런 얘기도 하고 실제 그런 상황에 있는 사람을 소개시켜줘서 시나리오에 반영하기도 했다.

‘반두비’라는 제목은 마붑 씨의 아이디어인가?
그건 처음부터 감독님이 정한 거였다.

카림이란 캐릭터에 만족하나? 개인적으로는 너무 피해자의 입장만 강조한 것처럼 보여 다소 아쉽더라. 
<반두비>나 <로니를 찾아서>의 이주민 노동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하나다. 당당하게 나오는 게 아니라 피해자의 입장에서 서술됐다. 물론 이게 문제는 아니지만 <반두비>는 처음 만드는 장편영화다보니까 한국 사람의 시선을 임금체불 문제나 이데올로기 문제로 일반화할 수밖에 없었을 거다. 그런 점에서 <반두비>는 출발점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 준비 중인 작품은 카림과는 완전히 다르다. 전혀 다른 이주민 캐릭터로 등장한다. 

차기작인가?
8월 중에 문승욱(<로망스><나비>) 감독님의 페이크 다큐멘터리에 출연할 예정이다. 인천을 소개하는 영상인데 먼저 아리랑TV로 방송이 된다. 후에 100분으로 늘려 영화로 상영할 계획이다.

어떤 역할인가?
잘 나가는 이주 노동자로 나올 것 같다. 돈을 많이 번다는 의미가 아니라 뭔가 많이 알고 잘난 척 하는 캐릭터다.  

좀 재수 없는 캐릭터 같은데? (웃음)
그렇지만 나는 기대가 되는 게 평소 내 모습이 아니라서 어떤 모습으로 나올지 무척 궁금하다. (웃음)

무슬림(이슬람교를 믿는 사람)이지 않나. 종교적인 이유 때문에라도 영화 연기에 제약이 있지 않았나?
물론이다. <반두비> 같은 경우, 카림이 기도를 하고 나서 자위를 하는 장면이 있는데 처음엔 도저히 이해가 안됐다. 어떻게 기도를 마치고 자위를 할 수 있나, 이건 말도 안 되는 설정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카림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고자 했다. 맞다,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마스터베이션도 하는 척이 아니라 그냥 하면서 느껴보자. (웃음) 바닷가 장면(카림이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너희들도 우리와 같은 노예야”라고 오열하는 장면)을 촬영할 때도 힘들었다. 영화 설정 상 반팔을 입고 바다로 뛰어들어야 하는데 그때가 9월이었다. 밤바람이 굉장히 추웠다. 하지만 바닷가 장면이 가장 맘에 들었다. 특히 카림이 자신의 처지를 토해내는 방식이 좋았다. 물론 의도가 뻔히 보이지만 카림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다. 그런 게 참 좋았다.

<반두비>의 연기도 쉽지 않았겠지만 처음으로 주연을 맡은 작품이란 점에서 고민도 컸겠다. 
사실 <반두비>는 연기하는 것보다 실제 카림이 되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카림 지갑 속의 사진은 실제 나의 형수님이다. 형수님을 ‘마누라’라고 생각했다. (웃음) 정말 카림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가려고 별 짓을 다 했다. 

결국 이 모든 게 소통으로 귀결된다. <반두비>의 주제도 소통이고, 마붑 씨의 연기도 소통을 지향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지금 한국사회는 소통이 꽉 막힌 사회다. 이주민을 바라보는 한국인의 시선 또한 편견으로 가득 차 있고. 당신의 영화 출연은 개인의 영달 문제가 아니라 한국 내 이주민의 바램을 대표하는 상징성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 나는 소통에 관한 활동을 하고 있는 거다. 영화뿐 아니라 영화제도 결국 함께 보고, 같이 섞이는 차원에서 소통을 원한 활동이다. 내가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는 것도 한국사회의 폐부를 드러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소통을 하자는 거다. 이주민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데 관심을 갖지 않는 사회에 말하고 싶은 게 있어서 만든 거다. 내가 연기하기 위해 한국에 온 건 아니지만 십년 넘는 한국생활동안 경험도 하고 주변 친구들의 얘기도 들으면서 그걸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왔다.


나는 단지 소통하고 싶을 뿐이다

<반두비>는 과거 한국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관계가 전면에 나선다는 점에서 진보적이다. <반두비>가 보여주는 민서와 카림의 로맨스는 할리우드 내의 백인과 흑인의 사랑처럼 커뮤니티 안에서 암묵적으로 꺼려지던 인종관계를 한국영화사(史) 최초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가히 혁명에 가깝다. 이 정도로 한국사회의 이주민을 향한 시선이 관대해진 걸로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마붑 알엄은 곤욕을 치렀고 치루는 중이다. 영화 개봉 전에는 ‘죽이겠다’는 협박을 받기도 했고 개봉 후에는 ‘불법체류자를 미화한다’ ‘불법체류자는 여자를 강간한다’ ‘이주노동자는 한국여자와 사귀면 안 된다’는 등의 밑도 끝도 없는 인신공격에 가까운 게시판의 댓글로 고통을 겪었다. 참고로, <반두비>의 카림은 합법 체류자의 신분으로 한국에 입국한 노동자일 뿐 아니라 방글라데시 국적의 마붑 알엄 본인 역시 국내 체류에 전혀 문제가 없는 상태다.

<반두비> 출연 전에 ‘죽이겠다’는 협박을 받았다는 기사를 봤다.
영화 출연 전이 아니라 개봉 전에 있었다. 전주영화제에서였는데 전화가 왔을 때 다행히도 그 앞에 신동일 감독님도 계셨다. 몇 번 반복해서 전화가 와서 바꿔드렸다. 인터넷에도 폭력적인 글들이 엄청 많다. 일부러 검색한 건 아닌데 <반두비>에 대한 반응이 궁금해서 들어가 보면 심한 글들이 많다. 뿐만 아니라 나 때문에 주변 친구들도 피해를 보고 있다. 안티카페에서 공격 받고 이런 거 보면 안타깝다. 여러 가지 얘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협박까지 할 줄은 몰랐다.

정말 충격적이다. 이주민에 대한 편견의 벽이 높은 건 알았지만 협박까지 할 줄이야.
싫어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내가 영화에 출연한 게 그렇게 협박당할 일인지 모르겠다. <반두비>는 소통을 이야기하는 건데 영화를 안 보고 얘기하는 사람들이다.

요즘 한국사회의 소통이 영 먹통이다.
소통이 막혔다. 뒤로 가고 있다. 영화심의에서 <반두비>에 대해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내리면서 그 이유에 대해 청소년들이 따라한다고 그러는데 요즘 청소년들이 얼마나 똑똑한데.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어떻게 보면 이주민과 관련한 영화가 많아지면서 한국사회의 이주민을 바라보는 시선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한편으론 이주민을 향한 안 좋은 얘기가 더 많아진 거 아닌가 하는 회의감도 든다.

부정적인 반응을 접할수록 더욱 전투력이 불타오를 것 같다. (웃음)
그런 마음이 아주 안 든 건 아니지만 나는 아무래도 영화 때문에 협박까지 받았으니까 제대로 가보자, 가보는 데까지 가보자. (웃음) 나도 사람이다 보니까 협박까지 받게 되면 참 무섭다. 정말 있으면 안 되는 일이고, 오히려 그래서 더 다양한 영화들이 많이 나와야겠구나 생각이 든다.

이주민에 대한 한국 사람의 시선이 올발랐다면 그런 얘기조차 나오지 않았을 거다.  
맞다. 이런 얘기 자체를 안 하면 얼마나 좋겠나.

<반두비>를 본 사람이 채 1만 명도 안 된다. 이 역시 이주민에 대한 한국 사람의 편견이 작용한 결과일까?
나도 아쉽다. 하지만 편견이라기보다는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과 같은 괴물 같은 영화가 개봉을 했기 때문에 <반두비>뿐 아니라 한국영화와 독립영화가 더 힘든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관심 있는 사람들은 많이 봤고 앞으로 많이 볼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 영화가 끝난 게 아니지 않나. 사실 언론에서 보내준 기대만큼 만족스러운 결과는 아니지만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꽤나 적극적인 반응을 보여주는 것 같다. 관객과의 대화도 많이 하지 않았나?
시사회에서도 있었고 일본에 있던 개봉 첫 주는 빠질 수밖에 없었지만 개봉 하고 나서도 좀 돌아다녔다. 지난 주 일요일에도 부산에서 관객들과의 대화가 있어서 감독님과 함께 내려갔었다.

무엇을 가장 궁금해 하던가?
관객마다 다르다. 인디스페이스와 같은 극장에서 하면 “이명박 정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묻는 정치적 질문부터 영화와 관련한 디테일한 질문까지 나오고, 압구정CGV 같은 데서는 “한국말 어떻게 그렇게 잘해요?” “결혼했어요?” 같은 기초적인 질문들이 많다.

여전히 이주민에 대한 편견이 강하지만 관객과의 대화에서도 확인됐듯 영화를 통해서 소통이 되는 부분은 긍정적이다.
그렇다. 다만 어떤 사람은 그런 얘기를 하더라. 마붑 씨 옛날에 머리띠 매고 투쟁하는 모습 보면서 아쉬웠다고. 내가 이주민 관련한 영화도 출연하고 다양한 활동을 하는데 거기에 대해 나는 이렇게 얘기한다. 투쟁도 소통의 방식이고 영화도 소통의 방식이고 다양한 표현방식인데 투쟁이 나쁜 건 아니지 않냐고.

이주민을 대하는 한국인의 시선은 변하지 않았다. 다만 <반두비>를 비롯해 이주민 관련영화들이 신호탄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사회적으로 어떤 움직임이 보이지만 중요한 건 개인의 변화다. 영화는 나와 다른 문화나 사람들을 다루는 매체이고 동시에 사람들이 가장 쉽고 빠르게 접하는 매체다. 이처럼 영화는 대중에게 찾아가는 루트가 쉽다. 그런 점에서 이주민 관련한 영화가 등장하고 많은 변화가 있다고 보지만 일반적인 사람들의 시선은 조금 변했다. 여전히 이주민에게 관심이 없다. 그렇지 않다면 <반두비>를 왜 1만 명밖에 보지 않았겠나. 한국 내 이주민은 120만 명이 넘는데 그런 점에서 <반두비>를 비롯해 <로니를 찾아서> 같은 영화들을 많이 봐야한다. 그래야 이주민들에 대한 이해도 넓히고 마음도 열고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나?
영화는 사람을 생각하게 만든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면을 영화가 경험하게 해준다. 영화는 쉽게 다가갈 수 있지 않나. 다만 요즘 영화와 방송들이 오락으로만 치닫고 있어 문제라고 생각한다. 오락영화만 만들어지면 안 된다. 영화나 미디어는 많은 부분을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 다양한 목소리가 많아야 좋다. 무조건 독립영화만 봐야한다는 게 아니라 독립영화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얘기다. 다양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고 좋은 목소리도 들을 수 있으며 그러면서 공감을 할 수 있다. <워낭소리>가 아니었으면 우리가 농촌의 할머니, 할아버지 삶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었겠나.


나를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간다

마붑 알엄은 연기를 위해 한국에 온 사람이 아니다. 우연한 기회로 영화에 입문했을 뿐이다. 십년 전 한국에 왔을 때부터 몇 년 동안 그는 3D업종에서 근무했다. 그 과정에서 이주노동자에 대한 편견과 불평등을 몸소 체험했고 이런 부당함을 개선하기 위한 일념 하나로 미디어 활동에 뛰어들었다. 마붑 알엄은 직함이 여러 가지다. 이주노동자방송의 미디어 활동가이고 이주노동자영화제 집행위원장이며 다큐멘터리 감독이다. 배우 활동을 통해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극영화 연출에도 욕심을 내고 있으며 조만간 책도 한 권 낼 예정이다. 마붑 알엄은 이주민의 인권을 개선하는 일이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생각이다. 변화를 기다리기 전에 변화를 만들겠다는 것, 먼저 다가가 손 내밀고 소통하겠다는 것이 그의 신념인 것이다. 

매체 일은 미디어 활동가로서 시작한 걸로 알고 있다.
이주노동자방송을 통해서 방송 일을 했다. 한국의 방송과 언론이 외국인을 바라보는 시선에 불만이 있어서 방송 일을 하게 됐다. 불만만 가지고는 바꿀 수가 없지 않나. 그런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가능하면 조선일보와는 인터뷰도 안 하려고 한다.

<반두비> 관련해서 조중동으로부터 인터뷰 요청은 없었나?
없었다.

요즘 좌파문화인을 적출한다고 정부나 보수단체들이 혈안이 됐는데 이주노동자방송이나 이주노동자영화제는 안전한가?
영향을 많이 받는다. 이주노동자방송에서 프로그램을 내보냈는데 지원금이 끊겼다. 이주노동자영화제도 지원을 하기로 했는데 안 하고. 그래서 개인후원 정도 빼면 예산이 없다.

예상대로 상황이 아주 안 좋다
많이 안 좋다. 이주노동자영화제도 예산이 거의 없다. 원래 우리가 행안부에서 지원금을 받았는데 이번에는 안 나온다. 영진위 역시 별다른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있고. 그래서 내가 집행위원장이라 돌아다니면서 얘기도 하고 후원회도 열고 있다.

안 그래도 이주노동자영화제 일정이 얼마 안 남았다.
7월 17일부터 시작해서 9월 13일까지 거의 두 달 동안 한다. 이번엔 서울을 포함한 8군데 지역순회상영까지 영화제 기간이 길다. 서울에서도 그렇지만 지방은 이주민들이 특히나 극장을 찾아가기 힘들지 않나. 영화제를 통해 같이 보는 기회를 만들고, 같이 보면서 이야기도 함께 하고. 이런 영화들은 함께 섞어서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올해가 벌써 4회째다. 2006년 1회 때에 비해 자리가 잡혔나?
프로그램이나 행사의 규모는 커졌다. 우리가 이번에 14개국에서 온 장편과 단편을 모두 합해 총 22편이다. 홈페이지(www.mwff.org)도 얼마 전에 오픈했고 <반두비>와 <로니를 찾아서>도 상영한다. 하지만 예산이나 경제적인 부분은 오히려 더 줄었다. 우리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영화제도 예산이 많이 줄어든 것 같다. 거꾸로 가고 있다. (웃음)  이렇게 돈이 없다보니까 자선파티를 열기도 하고 기사를 통해 응원해 주십사 부탁도 드린다.

자선파티 슬로건이 ‘짬뽕이 좋아!’다. 무슨 ‘짬뽕 더 먹기 운동’ 광고문구 같다. (웃음)
심오한 의미가 있다. (웃음) 짬뽕이 한국음식도 아니고 중국음식도 아닌데 두루 여러 사람이 좋아한다. 그렇게 한국 내 이주민 사회가 짬뽕처럼 섞여서 조화를 이뤘으면 하는 바램에서 지었다.

이주노동자영화제에서 상영되는 <반두비>의 등급은 어떻게 되나? 영화제니까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에 신경 안 써도 되지 않나?
공식적으로는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으로 가야되지 않을까 싶다. 안 그러면 문제가 생기니까.

전주영화제에서는 12세 관람가로 상영이 되지 않았나?
그렇다. 그래서 정한 건 없는데 우리 영화제도 마찬가지로 영화등급 신청을 한다. 그래서 결과 나오는 대로 하는 수밖에는 없다. 만약 따르지 않으면 문제의 소지가 있는데 우리가 싸울 힘이 없어서 결과를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원래 싸울 힘이 있으면 등급 신청 아예 안 하고 가는 게 맞는데 요즘 워낙 정국이 험해서. (웃음)

정국이 하수상하다보니 마붑 씨가 할 일이 더 많아진 것 같다.
사실 난 일 벌리지 않고 조용히 살려고 하는데 말이야. (웃음) 하다보니까 많이 하게 됐다. 다문화가정 아이들 수업도 하고, 관객과의 대화 있으면 부산에 내려가기도 하고. 물론 모든 걸 다 하려면 힘들지만 보고 싶은 사람, 만나고 싶은 사람이 생기면 꼭 가야된다고 생각한다. 나를 불러주니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나뿐만 아니라 주변에도 다가가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도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이주민들 중에서도 노래 잘하고 춤도 잘 추고 재능 있는 사람들이 많다. 여러 가지를 교류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은데 그러지 못해서 아쉽다. 그래서 우리가 그런 분들을 찾아내고 알리는 게 일이다. 연기도 중요하고 영화제도 중요하고 모든 일을 다 해야 될 것 같다. 요즘 하도 세상이 힘든 데 투 잡은 기본으로 해야 되지 않나. (웃음)

영화만 고집하지는 않겠다?
영화만 해야 한다는 기준은 없다. 다양한 것을 많이 경험하고 싶다. 연기도 이주민이 아니라 다양한 캐릭터를 맡고 싶다. 내가 다큐멘터리 일을 많이 했지만 앞으로 가능하면 극영화 연출도 하고 싶다. 지금 써놓은 시나리오도 있다. 책도 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데 잘 안 된다. 내 이주에 관한 이야긴데 2년 동안 쓰다가 말다가 잘 진행이 안됐는데 마무리해야할 것 같고. 너무 많은 걸 하느라 시간이 없고 집중 못하는 것도 있다. 이게 어떻게 보면 다 하나로 연결된 것 같다. 결국 이주와 관련하여 다양한 일들에 참여하고 싶다.

궁극적인 꿈은 뭔가?
하고 싶은 게 엄청 많다. (웃음) 그중에서도 하루 빨리 방글라데시에 대안학교를 세우고 싶다. 한국 내 미디어센터나 영상센터처럼 비슷하게 미디어나 기술적인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는 학교를 고향에 만들고 싶다. 물론 내가 계속 거기에 있는 건 아니지만 만들어놓고 한국에 있으면서 미디어에 관심 있는 사람 생기면 비행기 표 주면서 방글라데시로 보내고 말이다.  사진 허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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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일보
(2009.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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