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사>(L’imbalsamat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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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영화의 결말에 대한 결정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박제사>(2002)는 마테오 가로네의 필모그래프에서 전환점 같은 영화다. 네오리얼리즘의 부활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경계에서 실제적인 삶을 영화화했던 그가 <박제사>에 이르러 완전히 극영화의 세계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박제사>는 마테오 가로네가 이후 만든 <첫사랑>(2004)과 함께 사랑의 엽기성을 탐구한다. 사실 엽기성이라는 자극적인 표현을 썼지만 실제로는 빗나간 사랑의 풍경이라고 할만하다. 더 정확히는, 동물 박제가 주업인 페피노(에르네스토 마이어)가 인간의 아름다움까지 소유하려 들면서 벌어지는 비극을 다룬다. 

페피노가 그 아름다움에 넋이 나가는 대상은 발레리오(발레리오 포그리아 만질로)다. 나이 들고 추레한데다가 심지어 난쟁이이기까지 한 페피노에게 젊고 키도 크고 잘생긴 발레리오는 그야말로 완벽한 아름다움의 표상이다. 발레리오를 곁에 두고 지켜보고픈 페피노는 돈을 많이 주겠다며 함께 일할 것을 권유하고 둘은 붙어 다니는 사이로 발전한다.

마테오 가로네가 <박제사>와 같은 영화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그의 취향이 유별나서가 아니다. <박제사>를 발표하기 전까지 주로 다큐멘터리적인 영화 만들기에 몰두했던 가로네가 주목했던 현실의 풍경 중 하나가 바로 인간의 잔인함이었다. (<고모라>와 <첫사랑>에서도 가로네의 관심사는 줄곧 이어진다.) 영화가 시작되면 카메라는 공작새의 시점으로 페피노와 발레리오의 첫 만남을 바라본다. 그들은 공작새를 앞에 두고 박제 얘기를 나누며 서로의 인연을 확인한다. 아무리 동물이 인간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한다고 해도 박제 얘기를 거리낌 없이 나눈다는 것, 공작새 시점의 카메라는 인간의 잔인함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안 그래도 페피노는 박제 일 외에도 마피아를 위해 시체에 마약을 숨겨 운반하는 유통책으로 활동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페피노의 박제에 대한 욕망은 단순히 동물에게만 한정하지 않는다. 원하는 바가 생기면 인간까지도 박제할 기세인 것이다. 여기서부터 <첫사랑>은 관객의 예상에 부흥하는 듯 이야기를 전개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비틀어버리는 일종의 반전을 선보인다. 발레리오에게 미모의 여자 친구가 생기면서 페피노의 그를 향한 애정은 급기야 집착의 형태로 변모한다. 감독이 의도적으로 노출한 바대로 페피노의 배경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관객들은 앞으로 그가 발레리오를 박제하지 않을까, 어렵지 않게 앞으로의 이야기 전개를 예상하는 것이다.

정확한 이야기를 밝힐 수 없지만, 오히려 페피노가 위기에 빠지면서 상황은 예상과는 정반대로 진행된다. 결국 박제라는 것은 힘의 권력에 따른 약육강식의 논리에 수반됨을 영화는 보여준다. 그 대상이 동물이 됐듯, 인간이 됐듯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은 자연스러운 형태이지만 그것을 소유하려들 때 늘 문제는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현실은 늘 그런 식으로 운행한다는 것이 마테오 가로네가 최근 영화에서 주목하는 세상의 법칙이다. 하여 힘없는 자들은 갖은 애를 써도 원하는 바를 손에 넣지 못하고 그저 자신의 욕망을 확인하는 선에서 그치거나 심한 경우에는 죽음으로 세상과 안녕을 고하기도 한다. 

<박제사> 이후 일련의 마테오 가로네 작품에서는 현실의 차가운 비극 한편에서 희미하게 감지되는 미열의 동정심이 공통적으로 확인된다. 무엇보다 약자의 위치에 발을 디디고 세상을 조망하는 이유가 크다. 가로네는 데뷔작 <이민자들의 땅>(1996)에서부터 가난한 이민자, 나폴리 극빈층, 난쟁이 등 계급 피라미드의 최하층 사람들을 주로 다뤄왔다. 그것은 한편으로 세상의 비극을 더욱 강조하려는 가로네 감독의 노림수로 보인다. 감독이 동정을 보내든 관객이 그에 동조하든 세상은 늘 하층민들에게만 비수를 꼽기 때문이다. 난쟁이 페피노의 최후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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