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믹막: 티르라리고 사람들> 씨네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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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피에르 주네 감독이 <믹막: 티르라리고 사람들>(이하 ‘<믹막>’)의 아이디어를 얻은 과정이 흥미롭다. 그 자신이 파리에서 자주 가는 레스토랑이 있는데 단골로 오는 사람 중에 무기상이 있었다고 한다. 근데 무기상의 표정이 굉장히 밝은 것을 보고 주네는 호기심이 일었다고 한다. 자신들이 판 무기 때문에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데 그 원흉인 이들의 표정이 이토록 밝을 수가 있다니.

우리는 프랑스를 굉장히 로맨틱한 곳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밝은 이미지 뒤에는 추악한 모습이 숨겨져 있다. 2007년 사르코지 대통령 시절 카다비가 통치하는 리비아에 원전을 제공하는 협약을 맺었던 것. 실제로 <믹막>에는 두 명의 무기제조회사 사장 중 한 명이 사르코지와 함께 찍은 사진이 등장한다. 다시 말해, 이 영화는 사르코지에 대한 비판물이라고 할 수 있지만 다소 느슨한 형태다. 대신 무기제조로 세상을 황폐하게 만드는 무기제조상들과 온갖 고철을 가지고 예술품을 만들어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티르라리고 사람들 간의 대립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한다.

극 중 ‘티르라리고’는 고철판매업자들이 사는 동굴을 뜻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프랑스의 쓰레기 수거 단체의 이름이라고 한다. 이 영화가 <믹막>이라는 제목 외에 ‘티르라리고 사람들’이라는 부제를 굳이 붙여 쓰레기의 의미를 상기하는 것은 인명을 살상하는 무기와 버려진 고철 사이에 진짜 쓰레기는 무엇인지 묻고 있는 것이라 할 만 하다. 하여 <믹막>은 지뢰에 아버지를 잃고 자신은 갱스터들의 싸움에 말려들었다가 머리에 총알이 박힌 바질(대니 분)이 무기제조회사 사장을 상대로 한 복수극의 형태를 띄지만 결과적으로는 교훈극으로 마무리되는 것이다.

사실 이 영화가 군수업자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지만 관객의 흥미를 끄는 것은 이야기보다는 그 이야기를 다루는 연출에 있다. 장 피에르 주네는 CG와 디지털과 3D의 시대에 미셸 공드리와 함께 필름과 아날로그적 감성을 공유하는 연출자로 대표된다. 굳이 이런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버려진 고철로 유용한 물건을 만들어내는 티르라리고 사람들처럼 주네는 갖은 영화와 특정 장면을 오마주하고 패러디하며 재가공이라는 형태로 창작물을 만드는 연출을 선보인다. <믹막>을 보면서 어디선가 많이 본 설정과 영화들이 연상되는 것은 바로 그와 같은 이유로 자연스러운 결과다.

복수극의 이야기를 따라가지만 복수를 논의하고 실행하는 과정이 자세하게 묘사되는 까닭에 우선적으로 <믹막>은 ‘케이퍼 무비’의 모범례라고 할 수 있는 <미션 임파서블>이나 <오션스 일레븐>을 떠올리게 한다. (‘믹막 Micmac’은 프랑스어로 ‘음모’를 의미한다.) 또한 바질이 두 명의 무기제조회사 사장 사이를 오가며 이간질을 한다는 설정은 일찍이 하드보일드 소설의 창시자 대실 해밋의 기념비적인 작품 <붉은 수확>에서 원형을 제시한 후 구로사와 아키라의 <7인의 사무라이>, 세르지오 레오네의 <황야의 무법자>, 코언 형제의 <밀러스 크로싱>에서 변주된 사례가 있었을 정도다.

그 외에도 많은 작품들이 <믹막>에서 인용되지만 장 피에르 주네가 가장 구현하고 싶었던 것은 버스터 키튼의 슬랩스틱 코미디다. 버스터 키튼은 찰리 채플린과 함께 할리우드의 무성영화 시절 가장 위대한 코미디언으로 평가받는 배우다. 장 피에르 주네는 어린 시절 TV에서 방영하는 버스터 키튼의 영화를 보면서 언젠가 저런 스타일의 작품을 꼭 만들어보리라 결심을 했으니, <믹막>이 바로 그런 경우다. 스스로는 슬랙스틱으로 관객을 웃기면서 표정의 변화가 없어 ‘스톤 페이스’, 즉 돌 같은 얼굴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버스터 키튼처럼 <믹막>에서도 바질은 무표정으로 영화 내내 등장하는 것이다.

영화 초반 바질이 머리에 총알이 박혀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지는 설정 역시 무표정을 얻어내기 위한 설정으로 보인다. 사실 <믹막>의 바질로 처음 캐스팅됐던 인물은 <아멜리에>에서 구박받는 식료품점 청년을 연기했던 ‘자멜 데부즈’였다. 그런데 촬영을 3주 앞두고 영화의 투자에 문자가 생기면서 자멜 데부즈는 하차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러면서 바질 역을 대신 맡게 된 배우가 대니 분이다. 자멜 데부즈처럼 대니 분 역시 코미디언 출신으로, 주네가 바질 역에 이들을 염두에 뒀던 건 명백히 버스터 키튼의 현대적 재래를 가져오기 위해서였다.

주네는 더욱이 버스터 키튼의 이미지뿐 아니라 몸으로 부딪혀 마법을 만들어내는 연출까지 <믹막>에서 재현해 보인다. 극 중 인간대포를 쏘는 장면은 확연히 버스터 키튼에 대한 오마주다. 공중으로 쏘아 올려진 바질이 건초더미에 쳐박히는 장면은 실제로 대니 분이 온 몸을 던져 연기했다고 전해진다. <믹막>의 티르라리고 사람들 vs 무기제조회사 사장들 간의 대결 구도는 예술가 vs 자본가 또는 동네 상인 vs 대기업의 구도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래서 여기에 영화를 대입해보면 고전적인 필름 연출 vs 최첨단의 디지털 연출로 치환이 가능하다. 여기서 장 피에르 주네가 정서적으로 기울어지는 쪽은 필름이다. 결국 <믹막>은 무기제조회사에 맞서 세상을 아름답게 하려는 이들의 이야기인 것처럼 영화적으로도 과거의 필름이 주었던 고전적인 가치를 현대에 재현하고픈 주네의 영화에 대한 영화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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