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쟝센 2014] <그 밤의 술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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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와 설원은 10년 넘게 연인 관계를 유지했지만 지금은 헤어진 사이다. 그렇게 남남으로 지내던 중 둘은 친구의 결혼식에서 조우하게 된다. 겉으로는 아무런 감정도 없는 척 쿨하게 굴지만 현지가 내미는 청첩장에 설원은 그만 평정심을 잃고 만다. 카페에서 시간을 때우던 중 설원은 현지가 예비 남편과 혼수를 두고 말싸움을 벌이는 광경을 목격한다. 욱한 나머지 설원은 현지의 예비 남편을 폭행하게 되고 이에 현지는 고소하겠다며 격분한다.

영화는 현지와 설원의 현재에 집중하는 까닭에 과거 얼마나 사랑했는지에 대해서 따로 챕터를 마련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들이 서로를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설원이 무심코 내뱉는 대사를 통해 잘 드러난다. 가령, 커피를 마시는 현지를 향해 “이제 아메리카노도 마시네?” 혹은 흡연실에 들어가는 그녀를 보고 “지금 흡연실 들어가는 거야?”라는 설원의 말에서 이들 사이가 보통이 아님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설원의 대사가 주는 의도는 단순히 과거 이들 관계에 대한 정보 제공에만 있지 않다. 여전히 현지에 대한 감정을 완전히 털어내지 못한 설원에게는 그녀에게 느끼는 일종의 배신감이 대사의 뉘앙스에서 감지된다. 그런 설원의 대사와 행동이 외견상 지질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영화는 이를 유머나 조롱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생각이 없다. 대신 이해하겠다는 태도로 설원과의 거리를 유지한 채 지켜보는 쪽을 선택한다.

만약 이 영화가 관객의 마음을 건드리는 지점이 있다면 대부분 경험한 적 있는 사랑의 상실감 때문일 터다. 관계를 오래 전에 청산했을지라도 헤어진 연인의 결혼 소식이 들려온다면 누구라도 평정심을 유지하기는 힘든 법이다. 하물며 여전히 현지에 대한 감정을 정리하지 못한 설원이라면?

이 영화의 제목은 의미심장하게도 <그 밤의 술맛>이다. 술의 성분은 언제 어디서건 변하지 않지만 마시는 이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느냐에 따라 그 맛은 천차만별이다. 가까스로 현지를 떠나보내고 마음을 다잡으려는 설원은 ‘그 밤의 술맛’을 빌려 이 상황을 이겨내려 한다. 카메라가 비추는 그의 뒷모습에서 쓸쓸한 기운이 감지되지만 우리는 비온 뒤의 땅이 더 굳어진다는 삶의 진리를 잘 알고 있다. 설원에게도 곧 새로운 사랑이 찾아올 것이라는 사실을.

13회 미쟝센 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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