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베 미유키 원작의 영화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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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기사(‘충무로가 <백야행>의 흥행여부에 주목하는 이유는?’)에서 살짝 언급했지만 미야베 미유키는 자신의 소설을 영화로 만드는 것에 그리 관대한 편이 아니다. 영화화 허가에 있어서 그녀는 신중에 또 신중을 기하는 스타일로 유명하다. 1987년 <우리 이웃의 범죄>로 데뷔한 이래 적게는 1편, 많으면 6편, 매해 거르지 않고 왕성한 창작욕을 뽐내는 미야베 미유키는 데뷔 21년째인 2009년까지 50권이 넘는 소설을 발표했다. (국내에는 지금까지 총 24권이 번역, 출간됐다.) 하지만 영화화된 작품은 <크로스 파이어>(2000)와 <모방범>(2002),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브레이브 스토리>(2006)까지 단 세 편에 불과하다.

드라마로 제작된 작품이 모두 14편(2007년 기준)인 것을 감안할 때 이는 극히 적은 숫자다. 더군다나 1990년 <마술은 속삭인다>가 동명의 TV드라마로 제작된 것과 달리 영화는 그보다 10년 늦은 2000년이 돼서야 <크로스 파이어>가 동명의 작품으로 첫 선을 보였다. 그리고 2년 뒤에 <모방범>이, 또 그로부터 4년 뒤에 <브레이브 스토리>가 개봉했을 정도로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을 스크린에서 보는 일은 상당한 기다림을 필요로 한다.

‘무엇을 써도 터무니없는 걸작을 만들어내는 작가’라는 평을 듣는 미야베 미유키지만 유독 영화로 만들어진 작품이 좋은 평가를 받은 적은 없다. 특히 모리타 요시미츠 감독의 <모방범>은 미야베 미유키가 이후 자신의 작품의 영화화에 한동안 관심을 끊었을 만큼 최악의 만듦새를 보여줬다. 아직 보지 못한 이들이라면 행여나 호기심에서라도 보지 말 것을 간곡히 부탁드리는 영화 <모방범>은 소설을 스크린으로 옮긴 작품 중 가장 최악의 사례라 할만하다. 사상 유례가 없는 공개연속살인사건에 대한 일본 사회구조 전반의 반응을 현미경처럼 훑는 원작을 오독하는 것으로 모자라 코미디영화로 전락시킴으로써 미야베 미유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작품인 것이다. 

지난해 미야베 미유키의 도쿄 사무실(오사와 아리마사(<신주쿠상어>), 교고쿠 나츠히코(<망량의 상자>)와 함께 운영하는 사무실로, 각자의 성을 따서 ‘다이쿄쿠구’(大極宮)라고 부른다.)에서 그녀를 만나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인터뷰가 진행된 거실은 탁자를 한 가운데 두고 병풍처럼 두른 책꽂이가 인상적인 곳이었는데 영화 <모방범>에 대해 묻자 미야베 미유키는 답변 대신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책꽂이 하단 구석에 ‘짱 박혀’ 있던 문제의 <모방범> 비디오테이프였다. 영화가 어지간히 맘에 들지 않았던지 덧붙이는 말도 없이 어서 다른 질문으로 넘어갔으면 하는 눈치였다. 

대신 미야베 미유키는 봉준호 감독의 열혈 팬임을 자처하며 한국영화에 대한 애정을 과시했다. 실제로 봉준호 감독이 자신의 특정 작품을 영화화한다면 판권료를 받지 않겠다는 농담까지 했을 정도인데 (이와 관련한 에피소드는 조만간 좀 더 자세히 알려드릴 예정이다.) 아마 이 얘기를 한국의 영화사들이 들었다면 꽤나 부러워했을 대목이다. 국내에서 거듭 치솟고 있는 미야베 미유키의 인기에 비해 그녀 작품의 영화화 판권을 획득하기가 여간 쉬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잘 알려졌다시피 국내 영화사가 미야베 미유키 작품의 영화화 판권을 획득한 건 <화차>와 <스나크 사냥>, <스텝파더 스텝> 모두 세 편이다. 이들 작품 외에 <마술은 속삭인다> <레벨7> <모방범> <용은 잠들다> <이름없는 독> 등 에도 시대물을 제외한 그녀의 거의 모든 작품에 국내 영화사의 구애가 쇄도하는 것을 헤아려 생각해 볼 때 판권 획득이 쉽지 않았음은 미루어 짐작 가능하다. 워낙에 국내 영화사들끼리 경쟁이 치열해 판권에 대한 조건이 까다로울 뿐 아니라 국내에 팔린 일본소설의 영화 제작이 거듭 불발되자 투자자와 제작사, 감독의 이력을 꼼꼼히 검토하고 단계별 계약서까지 요구하는 등 판권 구매 과정이 날로 어려워진 까닭이다.

하여 국내 영화사들은 그녀의 환심을 사 판권을 얻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예컨대, <스나크 사냥>의 판권을 획득한 수필름(<키친><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은 정공법보다 변칙(?)으로 접근해 성과를 얻은 경우다. 통상 해외 소설의 판권 획득은 국내에 번역, 출간된 후에 이뤄지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수필름의 민진수 대표(민규동 감독의 친형)는 <스나크 사냥>의 국내 출간이 이뤄지기 전, 일본에서 구입한 책을 자체 번역해 먼저 읽은 후 미야베 미유키의 영화 판권 담당 에이전시와 직접 접촉을 시도했다. 이에 미야베 미유키는 수필름에 협상우선권을 주었고 협상이 이뤄지는 자리에 연출예정인 민규동 감독까지 대동한 후에야 (그렇다. 민규동 감독의 차기작은 <스나크 사냥>이다!) 판권을 얻을 수 있었다.

현재 민규동 감독은 <스나크 사냥>의 기본 설정은 유지하되 장르의 재미를 살리는데 중점을 두고 시나리오 작업에 매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벌써 6고를 훌쩍 뛰어넘었단다.) 또한 수필름은 이와는 별개로 국내 출간된 미야베 미유키의 또 다른 작품에 눈독을 들인 상황이다. (일본에서는 판권 확정 작품이 아닐 경우, 이를 공개하는 것을 금기시하고 있어 아쉽지만 제목을 밝히지 못함을 알려드린다.) 다만 판권 협상 과정에서 미야베 미유키 측으로부터 <스나크 사냥>의 영화화 결과를 본 후 판권을 넘기기로 합의했다고 전해지니, 아무래도 <모방범>을 비롯해 영화화에 큰 재미를 못 본 그녀로써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로써 영화의 완성도를 확인한 후 판권을 넘기기로 결정을 한 모양이다.

경우는 다르지만 미야베 미유키 역시 RPG(Role Playing Game)게임 <이코>를 <이코-안개의 성>으로 소설화하면서 굉장한 부담감을 겪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게임 <이코>의 팬들로부터 <이코-안개의 성>에 대한 혹평을 듣고는 굉장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는 것이다. 하물며 한일 양국으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을 영화화하는 감독과 영화사의 심정은 어떨까. 일찍이 판권 계약을 맺고 감독까지 결정한 <화차>와 <스나크 사냥>의 촬영 소식이 여태껏 요원한 상황은 이를 잘 대변한다. 다만 미야베 미유키 팬의 입장에서 한마디 하자면, 부디 완성도 높은 작품이 나와 영화 <모방범>으로 얻은 미미 여사(미야베 미유키의 애칭)의 한을 풀어줬으면, 그럼으로써 더 많은 미야베 미유키 소설 원작의 한국영화를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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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스트
(2009.11.18)

8 thoughts on “미야베 미유키 원작의 영화를 보고 싶다”

  1. 아…ico의 소설버전을 미야베 미유키씨가 썼군요. 소설화 했다가 욕먹었다는 이야긴 들었는데 누가 쓴지는 몰랐었는데. ico게임이 너무 완벽했지요. ㅎㅎ

    1. 셀프 피쉬님 잘 지내시죠, 아기도 예쁘게 크고 있죠 ^^; 전 게임을 안 해서 ico가 어떤 종류의 게임인지 모릅니다. 이야기 들어보니 굉장한 게임인가 보네요. ico-안개의 성이 그렇게 별로인가요? 전 그 소설을 안 읽어봐서요. ^^;

  2. 미야베 미유키 원작의 영화 보고싶어하는 사람 여기 또 있습니다. 저번 글에서 < 스나크 사냥>이 영화화된다는 소식을 보고 무척 기뻐했는데, 부디 개봉할 때까지 별 일 없이 진행되면 좋겠네요. 민규동 감독의 영화는 <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말고는 본게 없어서 어떻게 만들지 잘 모르겠지만, 다른 작품들도 부디 영화화될 수 있게 잘 만들어주시면 좋겠네요. 더불어 봉준호 감독님 부디 미미 여사님 작품좀 영화화를…저리 흔쾌히 주신대는데 관심좀 가져주세요 흑흑.

    1. 그러게요 ㅜㅜ 봉준호 감독님이 미미여사에 관심 가져주셨으면 좋겠는데… 근데 봉감독님은 미미 여사 책을 읽어본 적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한데요 -_- 아마도 봉준호 감독님이 만드는 미미 여사 원작 영화는 보기 힘들 듯 해요. 민규동 감독의 < 스나크 사냥>을 기대해야 하나요. 실은 미미 여사가 <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보고 판권 넘길 결정을 했다고 하던데 그럼 김태용 감독도 같이 붙어야 더 좋을 것 같은데 말이죠. ^^;

  3. 예^^ 잘 지내고 있습니다. ㅎㅎ
    ico란 게임이 뭐 스토리가 후덜덜한건 아니었어요. 그냥 이름모를 소년이 마녀에게 재물로 바쳐졌고 거기서 한 소녀를 만나 둘이서 탈출하는게 스토리의 전부거든요. 그런데 세상에 둘 만이 남겨진 듯한 고독하고 조용한 느낌의 게임 분위기와 음악, 너무나 가날프게 묘사된 소녀와 꼭 둘이 손을 잡고 다녀야 하는 시스템은 이 소녀를 지켜주고 싶다는 남성들의 기사도 정신을 아주 효과적으로 자극시켰죠. 특히 소녀와 손을 잡고 있으면 마치 소녀의 심장소리를 전해주듯 콩닥콩닥 패드가 진동을 하는게 대박이었어요. 이렇듯 스토리가 아닌 그 이외의 감성적인 부분들에서 게이머들을 충족시켜준 것이기 때문에 게임을 안해본 사람이면 모를까 소설로 만들어서 그 게이머들을 감동시키기란 뭐 미야베 미유키 할아버지가 써도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ㅎㅎ 그 패드의 진동에서 오던 감동의 손맛을 어떻게 종이 위에 인쇄된 기호 따위가 충족을 시켜주겠습니까….-_-;;

    1. 아, 게임을 위해서 만들어진 게임이군요. (표현이 좀 거시기하죠 ^^;) 미야베 미유키가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은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원작이 있는 작품을 다른 매체로 옮긴다는 건 정말 못할 짓인 거 같아요. -_- 그걸 성공적으로 이룬 사람들은 정말 대단한 거 같아요. ^^b

  4. 음~ 뒷북입니다만 미미 여사 작품 중 < 이유>도 일본에서 영화화되지 않았던가요? 그나저나 천하의 미야베 미유키도 이코 때문에 고생했다니, 허허. 역시 게임 이코의 ‘손맛’은 글로 표현하기 어려웠나 봅니다.

    1. 안녕하세요 미미미님 처음 뵙겠습니다. ^^ 제가 아는 바로는 미미 여사 작품 중에 영화화된 건 세 작품입니다. 가네코 슈스케 감독이 2000년에 만든 < 크로스 파이어> 모리타 요시미츠 감독의 < 모방범>, 그리고 2006년 치기라 고이치의 < 브레이브 스토리>입니다. 그 후 일본에서 또 어떤 작품이 영화화됐는지 모르겠는데요, 아마 네 번째 작품은 민규동 감독의 < 스나크 사냥>이지 않을까 합니다. 아, 변영주 감독의 < 화차>도 있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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