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Springtime of Mimi and Cheol-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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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청춘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일이 하늘에 별 따기(?) 같지만, 1970~80년대만 해도 흔할 정도로 청춘영화는 전성기를 구가했다. 관련 영화가 개봉하는 날이면 피카디리, 단성사, 서울극장 등이 몰려 있는 종로 일대에는 표를 사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내가 중학교 1학년이었던 1987년에는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1987, 이하 ‘<청춘 스케치>’)가 장안의 화제였다. 당대 최고의 배우이자 청춘스타였던 강수연과 박중훈이 각각 미미와 철수로 분하고 최고의 코미디언으로 주목받던 최양락이 함께 출연한다고 해서 개봉 전부터 영화 팬들의 기대감이 대단했다.

철수는 학교 대항 농구 대회를 구경하던 중 상대방 팀을 응원하던 미미를 보고는 첫눈에 반한다. 응원객인 주제에 선수들을 모아 놓고 왜 이렇게 경기를 못 하냐며 당돌하게 구는 모습이 매력적으로 비췄던 것이다. 미미를 쫓아 버스에 올라탄 철수는 많은 사람 앞에서 고백한 끝에 서로 호감이 가는 사이로 발전한다. 하지만 미미는 그 관계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는지 가문 좋은 의대생과 선을 봐 철수의 속을 뒤집어 놓는다.

대학 생활이 배경인 만큼 <청춘 스케치>는 젊은이들의 지지를 얻으며 서울에서만 26만 관객을 동원, 그해 한국영화 최고 흥행작에 등극했다. 극 중 미미와 철수의 대학생으로 사는 삶과 고민이 당대 청춘들의 공감대를 형성했다. 연출 데뷔작 <청 블루 스케치>(1985)에서부터 청춘의 삶에 관심을 보였던 이규형 감독은 두 번째 연출작 <청춘 스케치>에서는 대학 생활의 낭만을 코미디로, 철없는 대학생의 성장을 신파로 황금 분할해 이후 나올 청춘영화의 모범을 제시했다.

미미와 철수가 일반의 대학생을 묘사한다면 최 아랑드롱(최양락)은 코미디를, 보물섬(김세준)은 신파를 의미하는 기능적인 인물들일 터. 이와 같은 부분이 이전의 청춘영화가 내세웠던 공식이 강화된 지점이었다. <청춘 스케치>가 등장하기 이전, 이 장르는 최훈 감독의 ‘하이틴’ 시리즈와 석래명 감독의 ‘얄개’ 시리즈가 양분하고 있었다. 이들 시리즈가 큰 인기를 얻었던 이유는 <청춘 스케치>의 흥행 공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니, 그 공식을 <청춘 스케치>가 이어받은 것인데 고등학생, 대학생 할 것 없이 영화 속 청춘들은 별생각 없이 살다가도 어떤 계기로 성장을 이룬다.

그와 같은 이야기상의 공식을 세운 것이 ‘하이틴’과 ‘얄개’ 시리즈였다. 이규형 감독은 이를 대학생 버전으로 가져와 코미디와 신파를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기록적인 흥행을 이끌었다. 대학생은 아니었지만, 대학 입학 만이 지상 최대의 목표였던 나도 <청춘 스케치> 속 주인공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얼마나 웃고 울었던지. 철수의 생일을 맞아 최 아랑드롱이 총각 딱지를 떼주겠다며 생면부지의 여자에게 헌팅을 시도하는 대목에서는 이것이 대학생활의 낭만이구나, 넋 놓고 웃다가도 보물섬의 죽음 앞에서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숙연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대학생들이야 예나 지금이나 다가올 미래에 대한 막연함으로 불안했던 게 사실이지만, 이상(理想)의 형태에서만큼은 달라 보이는 것이 흥미롭다. 빨리 죽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철수에게 보물섬은 이런 얘기를 한다. “다른 친구들이 나보다 오래 산다고 꼭 행복한 건 아니야. 아무리 오래 살아도 이상이나 가치나 없는 사람이 수두룩하잖아.” 그런 보물섬은 죽음을 앞두고 형편이 넉넉지 않아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하는 이들에게 자신의 재능을 기부한다. 그리고 미미와 철수에게는 사랑의 가치를 전하며 둘을 이어주고 떠난다.

그런 결말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대학 입학이 삶의 전부가 아니구나, 배워야 할 더 큰 가치가 있구나, 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청춘영화가 의미가 있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이유다. <청춘 스케치> 이후로 이규형 감독은 <어른들은 몰라요>(1988) <굿모닝! 대통령>(1989) <난 깜짝 놀랄 짓을 할 거야>(1990) 등 자기 복제 작품들로 영화계에서 지분을 점점 잃어갔다. 그에 반해 오히려 석래명 감독이 <아스팔트 위의 동키호테>(1988)를 위시한 ‘동키호테’ 시리즈로 <청춘 스케치> 이후 청춘영화의 흐름을 주도했다.

그리고 내 기억으로는 청춘영화의 맥은 거기서 끊겨 버렸다. 지난해 <족구왕>(2014)이 깜짝 흥행에 성공했지만, 거의 이벤트성에 가까울 만큼 일시적이었다. 소위 ‘천만’으로 대변되는 ‘대박’ 영화에만 경도된 메이저 영화사들은 전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영화 제작에만 올인한 상태고 작은 규모의 영화들은 온전한 상영 기회를 보장받지 못해 고전 중에 있다. 이는 또 다른 의미에서 청춘영화가, 무엇보다 청춘이 홀대받고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런 사회가, 영화계가 건강할 리 없다.

여전히 우리의 청춘들은 힘든 여건 속에서도 그들만의 사연을 만들어가며 고군분투 중에 있다. 한국 영화계는 창작의 더듬이를 좀 더 예민하게 곤두세워 이들의 삶과 고민에 눈과 귀를 기울여 청춘영화를 만들 필요가 있다. 지금의 청춘을 대변할 <청춘 스케치>가 절실하다. 2015년의 미미와 철수가 보고 싶다.
 

kmdb
(2015.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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