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의 미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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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영화미래사전은 새로운 십년의 첫 해를 맞아 급변하는 한국 영화계의 주요한 이슈 10개를 선정, 앞으로의 진행상황을 예측해보고 그 맥락에 대한 해설을 담는데 주력했다. 특히 고도로 산업화된 한국 영화의 현실을 감안, 최신의 경향을 적극 반영해 미래를 내다보는데 주력했다. 아무쪼록 본 사전이 한국영화가 나아갈 바에 유익한 지침이 되길 바란다.

여전히 한국영화 일색? 참여정부 시절 스크린쿼터 일수가 현행 126일에서 73일로 반 토막 났을 때 한국영화의 미래를 낙관한 이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2006년 7월 1일 스크린쿼터 축소가 시행된 이래로 한국영화의 시장 점유율은 꾸준히 40~50% 대를 유지하며 할리우드 영화 공세에 나름의 선방을 보여 왔다(고 평가받는다). 문제는 이와 같은 한국영화의 선전에 스크린쿼터 폐지에 대한 의견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더군다나 한미동맹을 국가의 이익에 우선하는 현 정부의 행태에서 보듯 지금과 같은 스크린쿼터의 유지는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만에 하나 스크린쿼터가 폐지될 경우, 한국영화의 내리막길은 불 보듯 뻔하다. 2006년 60.6%의 점유율을 기록했던 한국영화가 스크린쿼터 축소와 함께 매년 하락을 거듭하며 50%에 머물고 있는 것을 상기한다면 한국영화의 미래는 그리 밝지 않다. 

스마트폰으로 상영영화를? 스마트폰과 태블릿PC의 출시는 영화 감상 패턴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2000년대 중반 “10년 내 DVD는 사라지고 컴퓨터에 저장해보는 시대가 다가올 것”이라던 빌 게이츠의 예언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이제 사람들은 번거롭게 DVD를 플레이어에 삽입해 영화를 보는 대신 즉석에서 다운 버튼 한 번으로 감상한다. 이는 영화 배급에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특히 메이저 영화에 밀려 상영관조차 확보하기 힘든 작은 영화 위주로 스마트폰과 태블릿PC를 통한 개봉이 가시화될 전망이다. 몇 년 전 스티븐 소더버그는 <버블>(2006)을 발표하면서 케이블TV와 DVD 동시 개봉을 통해 새로운 배급 형태를 보여줬다. 호응이 따르지 않아 참신한 시도에 그쳤던 소더버그의 배급 경로 개척은 더 이상 꿈이 아니다. 개봉영화 앱(App)을 누르고 소정의 가격만 치루면 스마트폰과 태블릿PC로 개봉영화를 보는 일이 멀지 않은 것이다.
  
장르영화 강국, Sci-Fi도 나올까? 세계 영화 시장에서 한국영화는 장르의 강국으로 통한다. 단, 스릴러와 몇 편의 공포영화에 한해서다. 특히 한국영화는 유독 Sci-Fi 영화에서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Sci-Fi에 대해 거부감을 보이는 한국 관객의 성향, 제대로 된 Sci-Fi를 만들기에 빈약한 감독들의 상상력, 그리고 높은 제작비의 한계 등이 주요한 이유로 꼽힌다. 그럼 언급한 이유가 충족되면 한국의 Sci-Fi를 볼 수 있을까? 대답은 ‘아니요’다. 관객의 성향은 바뀔 수 있고 감독들의 상상력은 발전할 수 있는 측면이 있지만 제작비 문제는 해결되기 쉽지 않다. 지금 한국 영화산업에서 대규모의 제작비 조달이 가능한 건 검증된 장르에 한해서다. 그러니까 시장에서 성공한 사례가 없는 장르는 시도 자체가 불가능한 구조다. 한국영화가 산업화됐다지만 산업은 돈이 되는 사업에만 투자하는 법이다.

서울에도 시네마테크가? 영화의 도서관이라 불리는 시네마테크는 공적 지원이 없으면 운영 자체가 불가능한 비영리 단체다. 파리의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뉴욕의 ‘필름포럼’ 등 세계적인 시네마테크는 지자체의 지원과 기업의 후원 속에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와 달리, 서울 유일의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는 정부와 시의 지원이 뚝 끊긴 상태에서 어렵게 운영되고 있는 실정이다. 오히려 영화인과 관객들의 자발적인 지원 속에서 서울아트시네마는 희망을 찾고 있다. 수익성을 공공성에 우선하는 현 정부의 근시안적인 문화정책 속에서 민간 주도 시네마테크 운영의 가능성을 확인한 것. 서울 시민이 주인이 되는 서울 유일의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의 미래가 그리 어둡지만은 않다. 

한국영화도 CG가 배우를 대체? 한국 영화산업은 철저하리만치 할리우드를 복습해왔다. 비근한 예로, <아바타>가 3D열풍을 몰고 오자 정부가 발 벗고 나서 3D지원육성책을 발표했다. 한국영화도 CG가 배우를 대체하는 시대가 머지않은 것이다. 하지만 철저히 이벤트성으로 그치고 말 공산이 크다. 그것도 조악한 화질의 부정적인 여론만 남긴 채 말이다. 아닌 게 아니라, 저가의 CG 제작이 관례화된 한국영화계에서 수백억 원이 호가하는 제작비며 기술력이 완비되지 않은 상황에서의 3D영화 제작은 시도는 가능하겠지만 제대로 된 영화의 꼴을 갖추기엔 영화산업의 규모와 성격 상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배우의 외모가 흥행의 바로미터로 작용하는 우리네 실정에서 강동원, 원빈 같은 이들의 외모를 CG로 대체한다고? 영화 관람 후 인터넷에 악플로 화풀이하는 관객들의 반발이 눈에 선하다. 

한국영화 주도의 포스트 한류 가능? <쉬리>를 필두로, <공동경비구역JSA> <엽기적인 그녀> 등 한국영화가 아시아 한류를 주도한 적이 있다. 이를 계기로 꾸준히 아시아시장을 공략하고 있지만 2000년대 초반만큼 성과를 얻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는 한국영화의 수준이 떨어졌기 때문이 아니다. TV만 켜면 한류 스타의 드라마와 가요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상황에서 극장으로까지 관객을 끌어 모으기에는 애당초 한계를 갖고 있다. 입장료가 2만 원에 육박하는 일본에서 한때 한국영화 붐이 일었지만 지금은 마니아층 위주로 소비되고 있는 것이 좋은 예다. 대신 미국, 프랑스, 영국과 같은 서양의 한국영화 최대 소비국뿐만 아니라 터키, 슬로베니아, 아르헨티나 등 영화의 제3국에서도 꾸준히 소비가 늘어나고 있다. 아시아에 한정하지 않는다면 조용하지만 폭넓게 전 세계적으로 한류의 바람을 이어갈 수 있다. 

스태프 처우 개선 합리화? 영화산업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지만 소수에 한정된 얘기다. 한국영화가 욱일승천의 기세로 산업의 파이를 키우는 동안 대부분의 스태프들은 법정 최소 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돈을 받으며, 혹은 상습적인 임금체불 속에서 현장을 지켜왔다. 다행히 스태프 처우 합리화에 대한 공감대가 충무로에 퍼지면서 개선을 위한 논의가 활발히 펼쳐지기도 했다. 하지만 급격히 줄어든 한국영화의 제작 편수 앞에서 영화 인력들이 TV로, 뮤지컬로 대거 빠져나가면서 스태프의 영화 열정을 볼모로 한 착취 구조로 회귀한 듯한 모양새다. 더욱이 제작비를 둘러싼 현장 구조가 여전히 폐쇄성을 띠는 까닭에 스태프 처우 개선책은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 영화계가 우선적으로 투명한 제작비 집행에 대한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면 스태프의 열악한 환경 개선은 요원해 보인다.  

할리우드에 진출한 한국배우의 운명은? 한국배우의 할리우드 진출은 더 이상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유창한 영어로 대사를 읊고, 호쾌하게 검을 휘두르며, 액션스타의 가능성을 비치는 광경은 익숙하다. 아니 이제 좀 식상할 지경이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되듯 한국의 연기파 배우들도 할리우드만 가면 액션배우가 된다. 아시아배우의 운명이 그렇다. 그네들이 쿵푸를, 사무라이 이미지를 원하는 까닭이다. 고무적인 것은 미세하게나마 변화의 틈새가 보인다는 거다. 아시아 출신 배우, 감독, 스태프의 유입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고 미국 내 아시아 이민자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할리우드 역시 그에 맞춰 변화를 시도 중이다. 하정우는 베라 파미가와 섹스를 했고, 장동건은 케이트 보스워스와 키스를 했다. 비록 한국 출신 감독이 만든 할리우드 영화라는 단서가 붙지만 그렇게 변화는 모색되는 법이다. 

제2의 박찬욱? 제2의 이창동? 한국영화 르네상스는 이창동, 박찬욱, 김기덕, 봉준호 등 작가주의 감독들에 의해 주도됐다. 1990년도 후반과 2000년대 초반에 집중적으로 등장했으니, 한국영화는 벌써 10년째 이들로 세계시장에서 연명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까 문제는 그 다음 명단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이들을 이을 명단을 작성하기 쉽지 않다는데 더 큰 문제가 있다. 앞서 언급한 감독들은 한국영화가 산업화로 들어서기 전 상상력과 개성을 최우선으로 보호해주는 환경에서 작가로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제작사 주도로 환경이 변하면서 감독의 능력은 철저히 흥행수치로 평가받기에 이르렀다. 흥행영화의 공식에 맞춰 신작들이 제작되는 상황에서 감독의 개성은 ‘흥행’ 이후의 일이 되고야 말았다. 흥행감독이 대접받음에 따라 작가주의 감독이 설자리는 빠르게 없어지는 중이다. 

영화잡지의 미래는? 지금 한국의 영화잡지는 몰락 일보직전이다. 판매가격을 인하하고, 가십 위주로 기사 내용의 변경을 꾀해도 독자들은 부러 영화잡지를 찾지 않는다. 아이패드에 한 가닥 희망을 걸고 있다지만 과연 공짜 기사보기에 익숙한 독자들이 앱을 통해 돈을 치르고 영화잡지를 구독할지는 미지수다. 다만 영화잡지는 사라질지언정 영화기사는 신문과 잡지를 구성하는 한 꼭지로 남아 건재하게 독자들의 관심을 끌어 모을 것이다. 그래서 독자들은 영화 기사를 찾기 위해 신문 혹은 잡지의 브랜드를 따지는 대신 기자의 네임밸류를 따라갈 가능성이 높다. 지금도 영화 관련 글들을 각종 매체에 기고하는 이들은 기자라는 직함 대신 ‘영화전문기자’ ‘영화저널리스트’ ‘영화칼럼리스트’ 등 다양한 칭호로 불리며 활발히 활동 중이다. 바야흐로, 영화잡지의 시대는 가고, 영화기자의 시대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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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ENA
2011년 1월호

2 thoughts on “한국영화의 미래는?”

  1. 영화잡지의 시대는 가고 영화기자의 시대가 온다는 아이러니. 우리는 이제 인기 잡지의 콜을 기다리는 대리운전수의 운명이 되는 건가요? 개인이 앱이 되어 거대 매체와 맞서야 하는 슬픈 세상.

    1. 예, 정말 대리운전사의 처지네요. 불러주면 바로 달려가고, 소식 없으면 불안해지고. 영화잡지는 지금으로써는 별 다른 소식이 없으니 대리운전 에이전트 생기기를 기다려야 하나요 ^^; 말쓰님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뉴욕에서 맞는 새해는 여기와는 좀 다르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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