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나잇 인 파리>와 <별이 빛나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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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디 알렌 감독의 <미드나잇 인 파리 Midnight in Paris>(2011)는 할리우드의 성공한 시나리오 작가이자 이제 막 장편소설을 탈고한 길 펜더(오웬 윌슨)가 1920년대의 파리로 시간여행하는 이야기다. 파리의 화려함만 찾는 약혼녀 이네즈(레이첼 맥아덤스)에 실망한 길은 나 홀로 낭만을 느끼겠다며 무작정 길을 걷는다. 그러던 차, 클래식 푸조가 길의 앞에 나타나고 이에 탑승하자마자 타입슬립하게 되는 것이다.

길이 ‘황금시대 Golden Age’라고 일컫는 1920년대의 파리는 예술이 낭만으로 신화화된 시기다. 하여 현재를 살고 있는 길이 1920년대의 파리에서 만나게 되는 예술가들은 작가 어네스트 헤밍웨이와 스콧 피츠제럴드, 화가 파블로 피카소와 살바도르 달리, 영화감독 루이스 부뉴엘, 사진작가 만 레이 등 그 면면이 화려하기 이를 데 없다. 할리우드의 장삿속에 싫증나 순수 문학을 하고 싶었던 길에게 ‘진짜’ 예술가를 만날 수 있는 시간여행은 현실의 결핍을 채울 수 있는 좋은 기회처럼 보인다.

<미드나잇 인 파리>의 포스터는 파리의 센 강변 위에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The Starry Night>(1889)의 배경을 합성, 영화의 의도를 재치 있게 은유한다. 현재와 과거의 공존, 현실과 예술의 교차, 그리고 이를 유유자적 관통하는 길의 모습이 <미드나잇 인 파리>의 주제를 압축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주제는? 그에 앞서 1920년대가 주요한 시간적 배경으로 등장한다면서 19세기 후반에 활동했던, 심지어 <미드나잇 인 파리>에 등장하지도 않는 반 고흐의 그림을 유독 포스터에만 활용한 것은 왜일까? 

지금이야 워낙 큰 유명세를 누리고 있지만 고흐는 살아생전 단 한 점의 그림만 팔았을  정도로 대중의 관심 자체를 받지 못했던 불행한 화가였다. 고흐의 상황이 얼마나 최악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일화도 존재한다. 아를에서 예술가들만의 낙원을 건설하겠다며  꿈에 부풀어 있던 고흐가 스스로 왼쪽 귀를 자른 사건이었다. 당시 고흐는 폴 고갱과 함께 생활하고 있었는데 성격 차이로 자주 부딪힌 것은 물론 미학과 관련한 문제도 복잡하게 얽히면서 관계가 좋지 못했다. 결국 떠나겠다는 고갱에게 면도칼로 위협하던 고흐는 급기야 끔찍한 일을 저지른 것이다.

항간에 고흐의 정신 불안을 견디다 못한 고갱이 펜싱 칼로 귀를 잘랐다는 설도 있지만 사실 여부를 떠나 고흐가 처했던 외로움과 절망감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다. 고흐의 창작열은 바로 이와 같은 현실의 결핍에서 비롯된다. 예컨대, 고흐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별이 빛나는 밤>은 고갱과 결별 뒤 우울증 치료차 생 레미의 요양원에 머물 당시 강박적으로 그린 것이었다. (이에 대해 테오의 미망인이었던 요한나 반 고흐 본저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이렇게 회상했다. “그곳에서 그는 <씨 뿌리는 사람> <해바라기> <별이 빛나는 밤> 등을 그릴 수 있었다. 당시 그는 지칠 줄 모르는 창작열로 불타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 그림이 보는 이에게 불러일으키는 감성, 즉 요동치는 밤하늘의 역동성과 그 속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별의 황홀함과 달리 고흐는 자신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현실을 잊기 위한 방편으로 무섭게 그림을 그려나갔다. 실제로 <별이 빛나는 밤>에는 고흐의 ‘광기’를 짐작할 수 있는 시도들이 발견된다. 평온해 보이는 마을풍경과 달리 밤하늘엔 별빛과 달빛이 ‘폭발’하고, 서로를 휘감은 구름이 ‘소용돌이’치며, 수직으로 높이 뻗어있는 사이프러스 나무는 신경질적으로 하늘의 영역을 ‘침범’한 듯한 인상을 준다. 지중해의 빛과 열기를 축복했던 <해바라기> <씨 뿌리는 사람> 등 반 고흐의 또 다른 걸작과 비교해도 <별이 빛나는 밤>은 두드러지게 불길한 기운을 풍긴다.

<미드나잇 인 파리>의 포스터는 <별이 빛나는 밤>이 보여주는 하늘과 땅의 극명한 대조의 구도를 그대로 가져다 쓴다. 특별히 하늘 배경만 인용함으로써 낭만이 웬 말이냐며 길을 향해 쏘아붙일 기세를 노골적으로 취한다. 안 그래도 1920년대로 간 길이 만나는 예술가들은 하나 같이 불평, 불만을 입에 달고 산다. 헤밍웨이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충분히 사랑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당시 피카소의 애인이었던 아드리아나(마리옹 코띠아르)에게 추파를 던지고, 폴 고갱은 “자신들의 시대는 공허하다”며 예술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는 세태를 개탄한다.

<미드나잇 인 파리>가 보여주는 바에 따르면 1920년대의 예술가들은 정작 그들의 시대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다. 오히려 고갱이 황금시대라고 부르는 시기는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가 활약했던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시대다. 고갱은 결코 자신의 시대를 신뢰하지 않았다. 그럴 만도 하다. 고흐와 결별 후 관계가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그의 작품에 대한 관심은 결코 끊은 적이 없다. 1890년 7월 27일 고흐가 권총으로 자신의 가슴을 쏴 자살한 후에는 <팔걸이의자에 놓인 해바라기>(1901)를 그림으로써 친구에 대한 경의를 표했을 정도다.

고갱과 달리 대중은 고흐가 죽은 후에야 비로소 관심을 보였다. 그의 사후 2년 뒤 회고전이 열렸고, 파란만장한 삶을 소재로 한 소설이 1913년에 출간됐으며, 1973년에야 암스테르담에 반 고흐 박물관이 세워졌다. 그러니 고갱에게 길의 주장은 얼마나 공허했을까. 1920년대야말로 황금시대라며 열변을 토하는 길에게 아드리아나는 “당신이 여기 살면 여기가 현실이에요. 그럼 당신은 또 다른 세계를 동경하게 되겠죠.”라고 얘기한다. 그러면서 아드리아나는 1890년를 ‘벨 에포크 La Belle Epoque’, 즉 ‘좋은 시대’라고 지칭하니 반 고흐가 이를 들었으면 당장이라도 무덤에서 뛰쳐나왔을 일이다. 

지나간 시대를 신화화하는 건 결국 현실의 결핍이다. 극 중에 등장하지도, 이름이 언급되지도 않는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을 <미드나잇 인 파리>의 포스터에 주요한 배경으로 설정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일 터다. 낮의 센 강변을 거니는 길이 어두워진 거리의 끝에서 맞닥뜨리게 될 현실은 낭만으로 포장된 해당 시대의 결핍일 것이다. 그리고 예술가를 꿈꾸는 길은 결핍을 메우는 것이 예술의 본질이라는 사실도 깨닫게 될 것이다. 고흐는 동생 테오가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두면서 “고통은 영원하다”는 말을 남겼다. 그렇게 반 고흐의 작품은 영원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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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호

4 thoughts on “<미드나잇 인 파리>와 <별이 빛나는 밤>”

    1. 저는 반 고흐 책은 잘 모르겠어요 ^^; 그러고보니까 고흐 관련한 책은 읽어본 게 없네요. 혹시 보시고 괜찮은 거 있으면 저 추천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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