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산일기>(The Journals of Mu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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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산일기>라는 영화가 화제다. 탈북자의 남한 생활을 다룬 이 영화는 네덜란드의 로테르담, 모로코의 마라케쉬 등 해외 영화제에서 주요 상을 수상하며 개봉 전부터 2011년의 발견으로 평가 받을 정도다. ‘탈북자’는 최근 한국 영화의 중요한 키워드다. 장훈의 <의형제>, 김동현의 <처음 만난 사람들>, 김태균의 <크로싱> 등에서 탈북자의 삶은 주요하게 다뤄졌는데 박정범 감독의 <무산일기>는 좀 더 현실에 밀착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끄는 것이다.

일당 2,000원 짜리 전단 돌리기와 벽보 붙이기로 근근이 생활을 이어가는 승철(박정범)은 탈북자라는 이유로 제대로 된 직업을 구하기가 힘들다. 게다가 동네 깡패들은 벽보를 붙이지 말라며 잔인한 폭력을 서슴지 않고 남한 내 유일한 탈북자 친구인 경철(진용욱)은 잔꾀 부리지 않고 우직하게 하루하루를 버티는 승철이 미련하기만 하다. 그가 마음을 붙이는 곳은 교회가 유일한데 마음에 두고 있는 숙영(강은진)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노래방에 취직한 승철에게 교회에서는 모른 척 행동해 줄 것을 강제한다.

<무산일기>가 끝나면 화면에는 ‘고(故) 전승철 군에게 이 영화를 바칩니다’라는 자막이 뜬다. 살아 생전의 전승철과 친구로 지내며 남한 내 탈북자의 현실을 목격했던 박정범 감독은 2008년에 이미 단편 <125 전승철>을 통해 그들의 극빈층 삶을 영화화 한 적이 있다. 여기서 ‘125’는 탈북자를 의미하는 주민등록증 끝의 세 자리 숫자를 말한다. <무산일기>는 <125 전승철>을 확장한 경우라고 할 만한데 이 영화에는 125의 사전적 의미를 넘어 지금은 무산계급으로 전락한 탈북자의 비극적 초상이 담겨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남한 사회의 실상이 가감 없이 드러난다는 점에서 <무산일기>의 진가가 발휘된다.

승철은 남한 사회에 편입한 타자인 동시에 자본주의적 삶에 적응하려 애쓰는 목격자다. 그의 이중적인 정체성은 영화의 카메라 운용 면에서도 잘 드러난다. 승철이 대상화 되는 장면의 경우, 숙영을 욕망하지만 교회의 창 밖에서 몰래 지켜볼 수밖에 없는 외부인이다. 반면 뒤통수에 밀착한 카메라가 승철의 시점으로 바라보는 풍경은 네온 사인으로 현란한 유흥가이거나 한때 생활 터전이었지만 지금은 폐허가 되어버린 철거촌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시 말해, 승철이 발을 디딘 이곳 서울은 나이키로 대변되는 자본주의 상품으로 인격을 무력화 하고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약자를 철저히 짓밟는 엄혹한 경쟁 사회다.

결국 승철 역시 자본주의 논리를 체득할 수밖에 없는데 그 과정은 충격에 가깝다. 자신을 괴롭히는 동네 깡패에게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논리로 응징하고 그를 이용해 먹으려는 경철에게 똑같은 방식으로 뒤통수를 치는 모습에는 우리네 삶의 경쟁 논리가 그대로 겹쳐진다. 살아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변화를 감내하는 것, 익숙한 풍경이지만 <무산일기>가 무시무시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떳떳하지 못하기 때문에 숨기고 싶은 우리네 욕망을 단호할 정도로 정직하게 드러내는 까닭이다. 그래서 이 영화에는 극적 장치나 첨가물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그저 현실을 비추는 것만으로도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안고 있는 비극이 보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과연 박정범 감독의 <무산일기>는 물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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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저널
(201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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