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은 가득히>(Plein Soleil)


<태양은 가득히>, <리플리> 이 두 작품은 모두 1955년에 발표된 패트리샤 하이스미스(Patricia Highsmith)의 소설「The Talented Mr. Ripley」를 원작으로 삼고 있다. 2000년에 개봉된 <리플리>는 1960년에 만들어진 <태양은 가득히>보다 40년이 지난 이후 발표되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리메이크 작품이라는 다소 안일한 칭호를 얻고 있지만 원작을 나름대로 해석한 두 감독의 상이한 접근법에 따라 영화는 각각 독립적인 작품이 되었다(르네 끌레망과 앤소니 밍겔라 감독은 각색에도 참여하였다).


먼저 <태양은 가득히>부터 보도록 하자. 르네 끌레망 감독은 주연배우인 톰 리플리 역의 알랭 들롱의 매력을 100분 발휘하는 쪽에서 톰의 범죄행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2시간 여에 달하는 상영시간은 극의 분위기가 전환되는 살인이후, 톰이 정교하게 짜여진 계획에 따라 부호의 아들인 필립 그린리프가 되어 가는 과정, 그의 재산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과정 그리고 범죄의 시작과 끝을 하나의 일관된 서스펜스의 흐름에 담아 서술하고 있다.

이에 반해 앤소니 밍겔라 감독의 <리플리>는 톰이 디키에게서 느끼는 동성애를 다룬 전반부와 디키를 죽인 후 펼쳐지는 사건들을 담은 후반부로 나누어진다. 그러다 보니 <리플리>는 <태양은 가득히>와는 달리 시간은 길어졌으며 등장인물은 더 많아 졌고 복잡한 이야기가 되었다. <태양은 가득히>가 간결한 맛이 매력이라면 <리플리>는 풍성하다고 해야 할까.


같은 원작의 톰 리플리이지만 이렇게 다른 입장에서 서술되다보니 전혀 다른 인물이 되었다. 필립 혹은 디키를 살해 한 후 수사망을 피해나가는 알랭 들롱의 톰과 맷 데이먼의 톰을 비교해보면 이 점은 확연히 구별된다.

<태양은 가득히>의 톰은 소유욕이 강하고, 매우 치밀하며 차가운 성격의 소유자다. 필립과 마르쥬의 사랑행위에 질투심을 느껴 귀걸이를 이용해 둘의 사이를 벌어지게 하는 장면은 톰의 소유에 대한 강한 욕구와 이에 대응하는 잔인한 면모를 보여준다. 게다가 완벽한 필립 그린리프가 되기 위해 여권을 위조하고, 수없는 반복을 통해 필립의 사인을 연습하는 모습에서는 치밀하며 악마적인 모습이 감지된다. 그런 의미에서 각진 조각상의 외모와 날카로운 눈매를 가지고 있는 알랭 들롱은 톰의 모습을 통해 영화에 강한 설득력을 불어넣는다.

<리플리>의 톰 리플리? 그는 감정이 매우 풍부할 뿐 아니라 예술적인 안목도 지니고 있는 인물이다. 무엇보다 매사가 매우 즉흥적인 사람이다. 톰이 디키를 만나게 된 것도 우연에 따른 찰나의 반응에 의한 결과물이다. 디키의 아버지가 프린스턴 대학교의 마의를 입은 톰을 디키의 친구로 알고 다가서자 이에 톰은 순간적으로 그렇다고 대답을 했기 때문이다. 살인 역시 그를 매몰차게 대하는 디키에게 욱하는 성질이 가만있지 못해 갑작스레 저지른 일이다. 그 후는 어떠한가 그에게 계획이란 없다. 그저 닥치는 위기의 상황을 무마하기 위해 순간순간 거짓말을 둘러댈 뿐이다.

톰의 성격이 어디로 튈지 모르게 작용하다 보니 <리플리>는 본의 아니게 설명이 친절한 영화가 되었다. 톰의 동성애를 표현하기 위해서라도 세세한 설명이 덧붙여져야 했다. 특히 톰의 동성애적 성향을 구체화하기 위해 사용된 몇몇 소품들-톰이 항상 매고 다니는 가방, 디키에게 처음 접근할 때 입었던 노란 수영복, 유난히 하얀 피부 등-과 디키를 향한 행동거지들은 <리플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영화로 만들어주었다. 원작 「The Talented Mr. Ripley」은 물론 <태양은 가득히>에도 배제되어 있는 부분인 디키의 부모가 톰에게 디키를 데려와 달라고 부탁하는 뉴욕에서의 장면은 <리플리>의 설명적 진술성향에 한 몫 한다. 클럽에서의 재즈장면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확실히 동성애는 <리플리>를 <태양은 가득히>와 확연히 구별되는 지점에 놓이게 하며 원작의 오리지널러티와도 격리시킨다. 또한 원작과 <태양은 가득히>의 톰과 필립 그린리프는 어렸을 적부터 알고 있던 사이인데 반해 <리플리>의 톰과 디키는 아버지의 부탁을 받기 이전에는 생면부지의 관계였다. 그렇다면 <태양은 가득히>가 원작소설 「The Talented Mr. Ripley」에 충실하다고 볼 수 있을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그렇다고 말할 수 있지만 결말부분은 두 영화 모두 원작과는 다른 모습을 취하고 있다. 원작이 리플리의 완전범죄로 해피엔딩을 유도한다면 <태양은 가득히>는 이와 반대로 톰의 살인전모가 밝혀지는 비극이 되고, <리플리>는 또 다른 욕망을 위해 사랑을 희생하며 제2의 범죄를 예고한다.


원작과는 다른 결말부에 대해 르네 끌레망 감독은 누벨바그의 부정적인 평가 대부분이 그를 향하고 있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태양은 가득히>를 ‘젊은 영화’로 보이게끔 만들었다고 한다. 그중 하나가 원작과는 판이한 결말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하는 것 보다 비극적으로 끝맺음하는 것이 더욱 젊다는 판단이었다고 전한다.


재능 있는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영화는 그 이유만으로 까다로운(?) 원작소설의 팬으로부터 원성을 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태양은 가득히>와 <리플리> 두 영화는 모두 흥미 있으며 나름대로의 독특한 개성을 지니고 있지만 그 역시 하이스미스 팬들의 볼멘 지적을 피하기 힘들었다.

<태양은 가득히>의 경우는 분명치 못한 국적관계가 원인이 되었다. 원작소설과 영화는 모두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톰과 필립 두 미국인 친구와 프랑스 여자친구 마르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모두 불어를 쓴다는 사실은 리얼리티 측면에서 불만을 샀다. 이 부분 역시 감독의 말에 따르면 ‘젊은 영화’를 지향하기 위한 설정이었다고 한다. <리플리>는 이보다 더 단순한 문제로 비난을 받게 된 경우이다. 여권사진을 예로 들며 아무리 톰이 디키 분장을 하여도 그 둘이 동일인이 아니라는 사실쯤은 누가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원작이 있는 영화는 그래서 힘든 법이다.


(2001. 8. 27. <무비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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