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스페이스 오딧세이>(2001:A Space Odyssey)




논쟁


2001년이 밝자 영화계의 화두는 온통 고(故) 스탠리 큐부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 2001: A Space Odyssey>에 모아졌다. 이 영화에 관한 논쟁은 올해에만 두 번 화제가 되었는데, 그 첫 번째 논쟁은 아시다시피 영화 속의 2001년과 현실의 비교였다. 혹자는 현실의 2001년은 달에 우주기지를 건설하지 못 하였으며, 우주여행이 실현되지도 않았고, 고도의 지능을 가진 컴퓨터가 등장하지 않은 사실 등을 내세워 큐부릭의 예언이 틀렸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비록 우주 여행의 목적은 아닐지라도 무인 우주선이 태양계의 여러 행성들을 탐사하였으며, 지능을 갖춘 컴퓨터 대신 인터넷의 실용화라는 점에서 영화와 같은 모습은 아니지만 다른 형태의 발전모습을 들어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묘사가 결코 틀리지 않았다며 옹호론을 펼쳤다.


사실 위의 견해들을 논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것은 단순히 화젯거리에 목말라 있는 언론의 습성에 따른 특정영화와 특정감독 그리고 특정시기가 만들어낸 가십(gossip)성 기사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진정 논쟁이라고 불릴만한 의견대립은 큐부릭이 스필버그에게 넘겨준 <A.I.>에 이르러 촉발되었다. 인간이 되고 싶어하는 꼬마로봇의 이야기를 담은 <A.I.>의 결말부가 너무 따뜻하다는 것이, 그리고 큐부릭이었다면 영화의 결말은 스필버그와는 정반대였을 것이라는 추측이 새 논쟁의 골자였다.


스필버그가 흔히 동화적 감수성에 의한 따뜻한 인간애를 대표한다면 큐부릭은 차가운 냉소주의에 바탕을 둔 비관주의로 상징된다. 무엇보다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암울한 미래상은 <A.I.>의 결말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에게 큐부릭의 감성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를 제공 하였다.

단서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각본은 큐부릭과 함께 아서 C. 클락이 맡았다. 특히 이 영화는 아서 C. 클락의 단편 <파수병>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완성된 각본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는 인간과 우주의 관계, 인간의 진화와 같은 철학적인 물음과 신인류의 탄생이라는 난해한 결말로 인해 형이상학적인 영화로 평가받고 있다.그래서 많은 평론가들은 큐부릭이 미래상에 대한 질문만을 던져 놓았을 뿐이지 그 물음에 대한 해답은 고의로 누락시켰다고 말한다. 이는 다시 말해 결과물에 대한 해석은 영화를 보는 관객과 평론가의 몫이지 영화자체에 해답이 있다는 뜻이 아니다. 한가지 확실한 사실은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가 인류의 미래에 대해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오히려 비관적인 쪽에 더 가까이 다가서 있다. 그럼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한단 말인가? 여기 영화를 쉽게(그나마) 이해할 수 있는 단서가 한가지 있다. 바로 이 영화가 제작된 1968년이라는 시간이다.

이미 잘 알려진 역사적 사실이지만 1968년을 전후해 미(美) 정부는 베트남전의 파병을 결정하여 미국사(史)의 비극을 초래하였다. 하지만 그 후 어떤 의도였는지 미국은 달 탐사에 대한 우주계획을 발표하였고, 닐 암스트롱은 달의 표면을 밟은 세계 최초의 인류로 기록되었다. 이 일은 혼란스러운 미국의 입신에 일순이나마 희망의 기운을 충만 시킨 사건이었다. 총을 앞세워 살상을 감행한 ‘파괴’로서의 도구와 미지의 문명에 들어선 ‘탐구’로서의 도구는 이렇듯 희비의 순간을 가능케 하는 이중성을 드러내었다(도구는 인류에게 생존의 편리함을 제공하지만 언제나 더 큰 희생을 강요하였다). 문제는 희망으로 포장된 미국의 우주탐사가 인간의 순수한 호기심이라기 보다는 소련과의 경쟁에서 얻어진 정치적인 의도에서 비롯된 결과물이란 점이다. 즉, 1968년은 허위와 가식의 시기였다. 그럼 영화를 살펴보자.


묵시록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는 ‘인류의 서광 The Dawn of Man’, ‘목성탐사 18개월 후 Jupiter Mission 18 Months Later’, ‘막간 Entr’acte’, ‘목성 그리고 미지의 저편 Jupiter And Beyond the Infinite’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에 해당하는 ‘인류의 서광’에서는 도구가 어떤 식으로 발전되어 왔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태초의 인류(유인원이 아니다)가 뼈를 사용해 살상을 한 후 그것을 하늘로 던지자 우주선으로 변하는 장면은 앞서 언급한 ‘파괴’와 ‘탐구’로서의 도구의 이중성을 극명히 보여준다. 그러나 인류의 미래에 대한 이 영화의 가장 부정적인 부분인 ‘목성탐사 18개월 후’에서는 인공지능을 갖춘 컴퓨터 HAL 9000이 인간을 살상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파괴용으로 처음 사용 된 도구가 도리어 인간에게 부메랑처럼 되돌아와 공격을 하는 것이다. 인류는 진화하고 있지만 도구의 사용방식은 그대로인 셈이다. 그래서 신 인류의 탄생은 희망을 뜻하기보다는 계속되는 비극의 윤회(輪廻)이다. 고로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는 ‘파괴’와 ‘탐구’의 도구에 비추어보는 허위와 가식에 대한 묵시록(默示錄)이다.

최고의 SF

이렇듯 2001년에 펼쳐진 몇몇 논쟁에도 불구하고 모든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일치된 견해를 보이는 부분은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는 여전히 최고의 SF영화라는 점이다. 영화가 나온 지 정확히 33년이 흘렀지만 1968년 이후에 만들어진 모든 SF영화는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우산 아래에서만 활발한 움직임을 보일 뿐이다. SF전문가들 역시 큐부릭의 영화를 두고 우주를 가장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으로 극찬하며 이를 능가할 SF는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도 그럴 것이 큐부릭의 완벽주의는 NASA의 전폭적인 협조를 이끌어 냈고, 이에 NASA는 우주에 대한 자료 및 탐사보고서는 물론 가상우주공간 체험 관에서의 촬영도 허락해 주었다. 그래서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는 지금 보아도 1968년에 만들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2001. 8. 25. <무비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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