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페어 투 리멤버>(An Affair to Remember)


1957년의 <어페어 투 리멤버>와 1994년의 <러브 어페어>는 모두 1939년에 만들어진 레오 맥커리(Leo McCarey) 감독의 <Love Affair>를 원작으로 삼은 리메이크 작품입니다. 두 작품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각각 미래를 약속한 배우자가 있는 두 남녀가 우연한 기회에 사랑에 빠지게 되어 경제적인 조건이 갖추어진 후에 만나자고 약속합니다. 특히 엠파이어 빌딩에서의 만남이라는 낭만적인 설정은 영화의 가장 중요한 전환점으로써 남녀의 경쾌한 사랑놀음에서 일순 운명적인 사랑과의 재회로 이어져 눈물샘을 폭파(?)시킵니다.


원작을 제외하고 구지 리메이크 된 두 작품을 비교하는 이유는 원작 <Love Affair>가 국내에 출시가 되지 않은 탓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Sleepless in Seattle>이 끼친 영향력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어페어 투 리멤버>를 이해하는 사람과 이해하지 못 하는 사람 두 부류가 있다고 주장하는 노라 애프런(Nora Ephron)이 다시 끌어들인 ‘엠파이어 빌딩에서의 재회’ 모티브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을 본 많은 이들에 의해 <어페어 투 리멤버>의 엄청난 비디오 대여 유행을 불러일으켰을 뿐 아니라 1년 후에는 <러브 어페어>의 개봉을 불러왔습니다. 원작을 제쳐두고 <어페어 투 리멤버>가 인기를 모은 것은 순전히 많은 이들의 추억에 남아있는 대표적인 고전 배우 케리 그랜트(Cary Grant)와 데보라 커(Deborah Kerr)의 공입니다.


세계적인 바람둥이 니키 페란테로 등장한 케리 그랜트는 실제 여성관객들을 유혹할 만큼 거부감 없는 연기로, 테리 맥케이역의 데보라 커는 통통 튀는 발랄한 연기로 <어페어 투 리멤버>를 경쾌하게 만듭니다. 이에 반해 <러브 어페어>의 워렌 비티와 아네트 베닝은 그들에 비해 좀더 차분하고 낭만적입니다. 실제로 여성편력이 강한 워렌 비티가 분한 마이크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연기에 대입된 탓인지 배우의 모습으로써 매력적이긴 해도 연기에는 별 다른 특징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아네트 베닝 역시 자신의 중후한 이미지를 그대로 끌어들일 뿐입니다. 그래서 <러브 어페어>는 발랄한 맛은 없는 대신 따뜻한 온기가 풍깁니다.


두 영화의 연출의도에서도 차이점은 확연히 드러납니다. 자신의 작품 <Love Affair>를 칼라로 다시 리메이크한 <어페어 투 리멤버>의 레오 맥커리 감독은 결말부의 감동을 더욱 극대화시킬 요량으로 극 중반까지 희극적인 요소를 매우 강조합니다. 칸막이가 쳐진 선 내 카페에서 등을 맞대고 니키와 테리가 티격태격하는 모습에 박장대소하는 카페손님들, 배가 뉴욕에 정박하기 전 멀찍이 떨어져있는 니키와 테리를 마치 입을 맞추기라도 한 듯 주변사람들이 쳐다보는 모습은 재미있는 무대극을 연상시킵니다. 지금으로 치자면 마치 시트콤을 보는 느낌입니다. 게다가 종종 등장하는 노래부르는 장면은 뮤지컬적인 느낌마저 들게 합니다.

<러브 어페어>는 이와 또 틀립니다. 비행기의 불시착 장면은 이 영화의 특징을 단적으로 드러냅니다. 예상치 않게 찾아온 불시착은 그 자체로 굉장히 위험합니다. 이러한 장면은 관객에게 긴장감을 선사합니다. 그런데 <러브 어페어>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 장면에서 흐르는 “Life Is So Peculiar”는 오히려 낭만의 감정을 부추깁니다.

뒤에 나오는 선상 위에서의 마이크와 테리의 춤 장면도 <어페어 투 리멤버>의 그것에 비해 더욱 낭만적입니다. <어페어 투 리멤버>가 주로 세트 촬영이었기 때문에 비어있는 듯한 느낌과 메마른 느낌을 준다면 <러브 어페어>는 세팅, 의상, 조명을 뜻하는 미장센(mise-en-scene)의 진보 덕에 꽉 찬 분위기가 연출됩니다. 마이크의 할머니를 찾아간 곳에서 마이크와 테리가 초원 위에 서 있는 모습은 마치 한 편의 아름다운 그림을 보는 것 같습니다.


<어페어 투 리멤버>와 <러브 어페어>의 기본적인 이야기 구성은 흡사합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두 영화의 시간차에 따른 시대상의 반영입니다. 57년의 니키와 테리가 6개월 후 재회를 약속한 반면 94년의 마이크와 테리는 이보다 빠른 3개월 후 입니다. 갈수록 인스턴트 화 되어 가는 90년대의 사랑방식을 보여주는 좋은 예입니다. 그런 점에서 ‘재회’라는 두 영화의 설정은 50년대의 <어페어 투 리멤버>의 감성에 더 어울립니다. 파파라치도 빼 놓을 수 없습니다. <어페어 투 리멤버>의 선상 전속 사진사와는 달리 <러브 어페어>의 파파라치는 비중(?) 있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파파라치는 90년대를 상기하는 특징적인 존재입니다. 많은 배우들이 그들로 인해 고통을 받았고 또한 고통받고 있습니다. 선상 전속 사진사가 니키와 테리의 밀회 장면을 찍어 한 몫 챙기는 것에 반해 워렌 비티가 제작한 <러브 어페어>에서 멍청하게 그려지며 골탕먹는 것은 당연한 귀결입니다.


간혹 <러브 어페어>만을 보신 분들은 이야기의 설명이 누락되어있다고 불만을 토로합니다. 마이크의 할머니가 죽은 사실, 마이크와 페리가 각자의 배우자와 헤어진 사실 등은 실제로 설명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는 연출력의 미숙이라기 보다는 글렌 고든 캐론(Glenn Gordon Caron)감독의 고의적인 생략입니다. 원작을 본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고리부분을 남겨두어 상관성을 나타냅니다. 리메이크 영화만이 갖는 특징입니다.


물론 결말부분은 전작과 동일합니다. 당연합니다. 그 상황이야말로 <Love Affair>가 2번이나 리메이크가 된 결정적인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그 장면을 변경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진부하다는 비판도 듣지만 글쎄, 이만큼 감동적이며 뛰어난 로맨스는 아직껏 보지 못 하였습니다.


<러브 어페어>는 극중 마이크 갬브릴과 테리 맥케이의 결합처럼 바람둥이 워렌 비티와 아네트 베닝의 열애, 그리고 곧 이어진 결혼소식으로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영화가 현실이 된 것입니다. 호사가들은 <러브 어페어>의 그 후 이야기를 예상하며 마이크 갬브릴이 제 성격을 못 버리고 다른 여성을 만나 테리를 떠난다고 했습니다. 그럴까요? 워렌 비티와 아네트 베닝은 현재도 헐리웃의 소문난 잉꼬부부로 남아있습니다.


(2001. 8. 26. <무비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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